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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인천·섬

옹진군 굴업도 연평산

by 구석구석 2022.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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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끝단에 외롭게 엎드린 섬 굴업도(掘業島). 지도를 보니 옹진군의 맹주 덕적도에서도 서쪽으로 한참 떨어진 곳에 자리한 섬이다. 인천항을 기준으로 남서쪽 60km 해상의 이 절해고도는 전체 넓이가 1.72㎢(약 52만 평)에 불과하다. 행정구역상 주소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굴업리. 덕적군도의 리(里) 단위 섬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은 곳이다. 현재 굴업도에는 10가구, 20여 명의 주민이 민박을 치며 살고 있다.

굴업도란 지명이 어째 낯설지 않다 했더니, 이곳은 1990년대 핵폐기장 후보지로 선정돼 큰 홍역을 치렀던 바로 그 섬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곳이 골프장 건설 논란에 휩싸여 시끄럽다. 이 작은 섬이 왜 다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해를 넘기기 전에 굴업도를 직접 돌아보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

‘선단여’ 보이는 큰말해변 정취 뛰어나

쾌속선 덕분에 시간이 많이 단축됐어도 여전히 굴업도 가는 길은 불편하다. 성수기에는 운항 횟수가 늘어나지만, 평소에는 하루에 한 번 덕적도에서 굴업도를 오가는 배가 유일한 교통편. 하지만 뱃길은 도로와 달라 시간 예측이 어렵다. 바람이 심하고 파도가 높아지면 배편이 끊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섬은 여전히 몸과 마음에서 먼 곳이다.

굴업도는 주변의 섬과 단순히 비교해도 상당히 작다. 덕적도나 선갑도의 덩치와 높이에 비하면 가냘프다 싶을 정도로 빈약하다. 조금 떨어진 바다에서 보면 섬 전체가 한눈에 들 정도로 아담하다. 하지만 굴업도의 진가는 가까이 다가가서 찬찬히 뜯어본 이들만이 확인할 수 있다.

선단여

배가 닿을 즈음 굴업도 선착장에 트럭 한 대가 나와 있었다. 전화 통화를 한 굴업리 서인수 이장의 차다. 몇 해 전 섬에 들여온 이 차량은 관광객과 민박 손님을 마을까지 실어 나르는 역할을 맡고 있다. 포장도로가 1.5km도 안 되는 작은 섬이지만 마을과 선착장이 제법 멀기 때문이다. 짐이 적다면 천천히 걸어서 가도 큰말까지 20분이면 충분하다. 선착장 부근의 오솔길을 타고 넘으면 5분 정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산길을 따라 고개를 넘으니 굴업도 유일의 마을 큰말에 닿는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속의 마을은 바람을 피하기 좋은 위치에 자리 잡았다. 물도 풍부해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온 곳이다. 신석기시대 거주 흔적인 패총이 발견됐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마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어가 많이 잡혀 100여 척의 어선이 몰려들어 파시를 형성했고, 6·25 동란 때는 미군 켈로부대가 이 섬에 주둔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민박과 농사를 주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주민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이장 집에 짐을 풀고 해변으로 나갔다. 자그마한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길을 따라 잠시 발길을 옮기니 시원하게 광활한 모래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큰말해수욕장이라고 불리는 해변이다. 남쪽을 향해 반원형으로 팔을 벌린 널찍한 모래사장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멀리 바다 한가운데 한문으로 ‘山’을 써 놓은 듯한 모습의 선단여가 보인다. 충격적일 정도로 완벽한 조형미를 갖춘 바다 위의 암봉이다. 그 뒤로 백아도와 지도, 울도 등 덕적군도의 여러 섬이 겹쳐지며 둘러섰다.

큰말 해변은 간조 때 길이 500m에 폭 200m 가량의 넓은 모래밭을 자랑한다. 이곳의 백사장은 분말처럼 고운 하얀 모래로 여름철 해수욕과 모래찜질을 즐기는 데 그만이다. 해변에는 소나무 숲 사이에 조성된 야영장과 화장실, 개수대, 샤워실 등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백사장 왼쪽으로 툭 튀어나온 토끼섬은 물때가 맞으면 걸어서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이 섬에는 바닷물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해식와(海蝕窪)가 대규모로 발달돼 있어 간조 때 전체가 드러난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지형으로 올해 2월 조사를 마치고 문화재청이 섬 일대에 대해 천연기념물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코끼리바위

‘개머리’까지 낭만적인 억새밭의 연속

큰말 해변의 백사장 서쪽 끝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섬 서쪽의 개머리까지 이어지는 억새 능선을 걷기 위해서다. 천천히 가도 두 시간이면 왕복할 수 있는 거리. 일몰 시각에 맞추기 위해 느긋하게 움직였다. 산길 초입에 특별한 이정표는 없었다. 해변 끝의 돌이 드러난 곳에 쌓아둔 돌무더기가 있는 곳에서 위쪽의 숲으로 산길이 이어졌다.

이곳의 돌들은 콘크리트를 버무려 놓은 듯한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굴업도가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섬이기 때문이다. 해변의 갯바위를 형성한 검붉은 바위는 푸석푸석해 보여도 강도가 대단하다. 묘한 모양으로 금이 간 바위를 밟고 숲으로 들어갔다. 짙은 나무 그림자 사이를 뚫고 오르니 갑자기 넓은 초지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굴업도 동쪽 섬의 연평산에 오르고 있다. 바위지대에서 보는 섬 북쪽 해안의 기암절벽이 인상적이다.

굴업도를 제대로 보려면 산에 올라야 한다. 바다나 해변에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억새가 군락을 이룬 광활한 능선을 걸으며 세찬 바람을 그대로 맞았다. 사실 바람 피할 곳이 거의 없는 광활한 능선이다. 높은 곳에 오르니 주변 섬의 조망이 더욱 정교해졌다. 선단여 주변으로 펼쳐진 섬들의 파노라마가 인상적이다. 이곳이 바다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정도로 현란하고 아름답다.

바다를 보며 걷는 길은 자칫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처음에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인상적인 풍경도 계속 보면 식상하는 탓이다. 하지만 굴업도 등줄기 트레킹은 그럴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봉우리를 넘으며 다리품을 파는 사이 풍광이 변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억새밭과 남쪽 섬들의 올망졸망한 조망에 눈을 빼앗긴다. 하지만 잠시 뒤 모습을 드러내는 북쪽의 광활한 바다는 가슴을 시원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야생화된 염소나 사슴의 출몰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다. 두 번째 봉우리를 넘어서면 일몰이 펼치는 빛의 향연이 시작된다. 거기에 바람의 군무까지 한 수 거들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큰말 해변에서 개머리절벽 끝까지 이러한 팔색조의 변화무쌍한 풍광이 꼬리를 문다. 마을에서 서쪽 섬 끝까지 다녀오는 데 2시간 정도 걸린다.

개머리능선

연평산은 북쪽 해안 해식단애의 전망대

굴업도는 두 개의 섬이 하나로 연결된 듯한 형태를 하고 있다. 마을이 있는 서섬과 부속섬인 동섬이 떨어져 있는데 이를 목기미라는 해변이 연결하고 있다. ‘연육사빈(聯陸沙濱)’이라고도 불리는 이 백사장은 지형도에 굴업도 해수욕장이라 표기된 곳이다. 배가 닿는 선착장에서 정면에 보이는 넓은 백사장이 바로 목기미 해변이다.

목기미는 바람이 넘나드는 병목 지형인 데다 편의시설도 전무해 해수욕을 즐기는 데는 적합지 않다. 하지만 심한 바람과 조수간만의 차는 사구(砂丘) 발달에 좋은 환경이다. 때문에 목기미 일대에는 크고 작은 모래밭이 형성되어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곳은 지금도 해수면이 높아지는 사리 때면 잠깐 동안 물에 잠겨 사라지는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1919년 태풍과 큰 해일로 목기미 해변 일부가 사라졌다고 한다. 자연 그대로의 살아 움직이는 지형인 것이다.

굴업도 최고봉인 덕물산(138.5m)이 있는 동쪽 섬은 현재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다. 1980년대까지 7가구가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허물어진 건물의 일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덕적도를 향해 팔을 벌리듯 바다를 향해 돌출한 지형의 동섬은 화산지대 특유의 해안절벽이 잘 발달해 있다. 특히 목기미 해변 북쪽의 해안을 따라 기묘한 형상의 해식애가 길게 이어진다. 이 해안에 바람과 파도가 만든 예술품 코끼리바위가 위치하고 있다. 

연평산에서 안개에 가려진 덕물산조망

해식지형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은 동섬 북쪽의 연평산(128.4m)이다. 굴업도에는 유람선은커녕 어선조차 없어 해안을 관찰하려면 산을 오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연평산으로 가려면 목기미 해변을 따라 동쪽 섬으로 건너간다. 백사장에 줄지어 서 있는 전봇대를 따라가면 건물의 폐허가 보인다. 여기저기 남아 있는 이 건물들 사이로 난 소로를 따라 능선에 오르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연평산으로 가려면 능선상의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오른쪽 샛길은 덕물산 방면으로 특별한 이정표는 없다. 길은 비교적 뚜렷한 편으로 갈림길이 거의 없고 시야가 좋아 어렵지 않게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억새가 군락을 이룬 언덕을 지나 소사나무 숲을 지나면 바위지대가 도드라진 연평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다. 하얗게 드러난 암반지대를 치고 오르면 아찔한 바위벽이 앞을 막아선다.

정상으로 오르는 산길은 바위 사이의 골에 숨어 있다. 잠시 급경사의 암벽을 통과해 오르면 자그마한 돌탑과 삼각점이 박혀 있는 연평산 정상에 선다. 몇 사람이 간신히 서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지만 굴업도에서 조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남쪽으로 내려다보이는 목기미 북쪽 해변의 기암절벽이 특히 장관이다. 야트막한 만(灣)을 감싸 안은 해식절벽이 펼치는 기묘한 풍경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걸어가기 어려운 지형인 데다 수심도 얕아 어선도 접근하기 힘든 천혜의 비경지대다. 카약을 타고 유유자적 탐사하며 돌아다니기 안성맞춤인 지역이다.

굴업도의 남쪽 해안을 조망하려면 덕물산에 오르는 것이 좋다. 전체가 바윗덩어리인 덕물산 꼭대기에 올라서면 시원스레 펼쳐진 굴업도 남쪽 해안과 작은 섬들이 발아래 펼쳐진다. 아기자기한 지형은 볼 수 없지만 시원스런 전망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그만인 곳이다. 목기미 해변에서 두 산 정상까지 다녀오는 데 각각 2시간 정도 소요된다.

/ 월간산 2010.2월

 

◈ 마음대로 갈 수 없어 더 가고 싶은 굴업도

굴업도에는 덕적도까지 배를 타고 가서 다시 연결 배편을 이용해야 들어갈 수 있다. 덕적도와 굴업도에 하루에 한 편 161석짜리 여객선을 운항한다. 50석은 현지 주민에게 주어지고 111석은 인터넷에서 판매한다.

개인이 주말에 배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고 그래서 ‘한국의 갈라파고스섬’이라는 이름이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이용한 배편> 
▶인천 연안부두 출항(08:30)→덕적도 도착(10시 30분, 6,600원)→ 덕적도 출항(11:20)→ 굴업도 도착(13:30, 1만4,700원)
▶굴업도 출항(12:20)→덕적도 도착(14:20, 6,600원)→ 덕적도 출항(15:30)→ 인천 연안부두 도착(17:30, 쾌속선 1만9,550원)


◈ 6곳밖에 없는 민박집에서 느끼는 정취

굴업도에는 여섯 집이 민박 영업을 하고 있다. 캠핑을 하지 않는 관광객은 섬의 민박집에서 숙식하면 된다. 

한 집만 빼고 나머지는 음식도 제공하는데 식사비는 한 끼에 8,000원이다. 우리는 깨끗한 집에서 깔끔하고 맛있는 음식을 누렸다. 이장님댁(010-9076-5982)이었다.

/ 한국아파트신문 2021.9 윤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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