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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남도

창녕 영산-구계리 법화암 영취산

by 구석구석 2009.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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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면은 창녕군의 중동부에 위치하며, 북동쪽에는 밀양시 무안면을 경계로 북서쪽에는 계성면, 동쪽은 부곡면, 남으로는 도천면과 접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별도로 현청이 있었던 영산은 애향심과 긍지가 높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던 날 경상남도에서 만세운동이 가장 처음으로 시작했다고 믿고 있다.

여기에 영산쇠머리대기와 줄다리기가 영산 사람들의 긍지를 더하고 있다. 영산면에서도 9개의 내와 골짜기가 있어 구계라 불리는 마을의 영취산 중턱에 자리한 법화암은 옛 보림사 등 9개의 절이 있었다고 한다.

 

 

영산면 구계리 산 37 법화암 055-536-2403 

 

들머리의 벚꽃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영산 I.C를 빠져 나와 영산 면소재지에서 구계리 방향으로 직진하면 된다. 구계리까지는 법화암의 이정표가 없으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9호로 지정된 구계리 석조여래좌상 이정표를 따라 구계리까지 가면 된다.

 

 

 구계리는 삼재구난(三災九難)이 없는 곳이라 하여 6.25 동란 때에는 피난지가 되기도 한 곳이다. 구계리는 함박산과 영취산 사이에 있는데, 영산면 소재지로 빠져나와 계속하여 직진을 하게 되면, 구계리가 나온다. 구계리에서 높이 솟은 암봉이 눈에 들어오는데, 암봉을 바라보며 산길을 돌고 돌아 오르면 바위산 아래 법화암이 고요히 숨 쉬고 있다. 창녕 영취산(靈鷲山) 기암절벽 아래에 법화암이 산수화처럼 걸려있다. 창녕군 영산면의 영취산은 원래 영축산(靈鷲山)이었다. 

 

 

인도의 승려인 지공(指孔)스님이 중국을 거처 고려시대 말엽 영산 보림사(寶林寺)에서 법화경을 강독할 때 영축산 산세를 보고 천축국(天竺國, 인도의 옛 이름)의 영취산과 그 모습이 닮았다 하여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영취산 상봉의 고깔봉 기슭에는 신라 경명왕 7년에 창건되었다는 보림사가 있었다.

 

신라인들은 영산 구계리 영취산에 연화세계를 펼치기 위해 총림 보림사를 고깔봉 기슭에 짓고, 절벽에는 고봉암, 고령암, 법화암을 지었다. 여기에 서림암, 적조암, 죽림암, 석천암, 대흥암를 각각 지어 영취산에 아홉 절을 배치하여 연화세계를 펼치고자 했다.  

 

하지만, 수백 명을 넘었다는 가람은 폐사지로 변하여 절터의 주춧돌은 땅에 묻혀 버리고, 보림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다층석탑은 법화암에, 삼층석탑은 영산초등학교 화단에서 세월의 무게를 버티고 서 있을 뿐, 보람사지에는 부도만이 천년세월을 그 자리를 지키며 서 있다.

 

영취산 보림사의 대가람은 모든 것이 인연 따라 흘려갈 뿐 어느 것 하나 멈추어 있는 것이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도를 찾아 헤매었던 보림사 수도승의 독송소리는 천년세월과 함께 허공에 사라지고 인연이 아직 끝나지 않은 법화암이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길을 덮고 있는 울창한 숲 속을 지나 대나무 숲이 끝나는 곳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면 칡덩굴이 내려와 있는 곳의 법화암에 다다르면 한가로이 새들이 길손을 반갑게 맞아준다.

 

암자 뒤편의 기암괴석들이 만들어 내는 바위병풍은 길손들에게 또 다른 비경을 선물한다.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고요함 속에서 들리는 풍경소리가 더 청정하게 느껴지는 법화암은 삶에 지친 중생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 준다. 법화암은 지나가는 길손에게는 그저 스쳐가는 인연이지만 부처님과 인연한 이들에게는 법당의 문을 여 밀고 들어가 두 손 모아 삼배의 예를 올리면 잠시나마 마음의 때를 씻는 안식처와도 같은 곳이 되어 준다.

 

영취산은 산행 중반부터 시작해 하산길 중반까지 줄기차게 이어진 바윗길을 헤쳐가는 코스다.

 

영취산의 진달래

암릉에서 좌우로 펼쳐진 조망을 만끽하고 등산로 곳곳에 솟은 기암괴석들의 오묘한 자태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암릉이지만 크게 위험한 구간이 없고 미끄러운 바위가 아니어서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다. 또한 산행 후 인근의 부곡온천에서 온천욕으로 산행후 피로를 풀 수도 있다.

영취산의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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