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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북도

익산 금마면-신용리 용은정사 미륵산성 무왕길 원불교상사원

by 구석구석 2011.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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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산이 품고 있는 용은정사

 

 

 

3월9일 일요일에 익산 중앙총부를 순례하고 좌산상사님을 배알하러 현재 임시 주석하고 계시는 용은정사(상사원)를 찾아 간다. 용은정사는 시내에서 30여분걸리는 듯하다. 부대후문 못미쳐서 좌측으로 빠지는 농로길을 따라 직진하면 붉은벽돌 건물이 보인다. 군부대뒷편의 구룡마을에 자리잡고 있는데 부대담장너머로 장갑차가 보이고 베레모를 쓴 군인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기갑부대같기도 하다.

 

용은정사전경, 마당 잔듸밭이 상당히 넓다

 

용은정사가는 길은 기존의 농로를 시멘트 포장한 대형버스가 지나기에도 버거운 좁은 소로길로 신용리 구룡마을 끝자락 2천여평의 대지에 1백여평의 2층 붉은벽돌 건물로 양지바른 평지에 냇가를 끼고 있으며 윤신택 대호법이 이 터를 매입, 리모델링하였으며 삼동원에 주석하시다 현재 이곳에 머물고 계신다. 

 

용은정사(龍隱精舍)는 좌산상사가 직접 명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천교당근황을 설명하는 성산이성규교도회장(좌), 논산훈련소 군종센터건립과 종법사 취임후 내려주신 법문에 대한 숨겨진 설명을 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이시는 좌산상사(우)  특히 암으로 투병중인 박순광님의 빠른 완쾌를 말씀하셨다.

 

건물외관을 보면 건축한지 오래되지 않아 전체적으로 풋풋한 느낌이 드는 곳으로 대산김대거종사는 영묘원, 좌산이광정종사는 삼동원에서 퇴임후 주석하였으나 원불교에서는 별도의 상사원을 건축할 예정에 있는데 지리상으로 총부와 가까운 중도훈련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상사원으로 쓰이고 있는 이곳은 단아한 건물에 넓은 정원을 갖고 있으며 오른쪽으로 간단한 운동을 할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전체를 둘러보고 나서 멀찍히 바라보니 요양원같은 느낌이 든다. 현재 상사님이 건강이 안좋으시다고 하는데 하루빨리 건강이 회복되시길.....

구룡마을에서는 저농약의 사과를 재배한다고 하시며 껍질채 먹어도 되니 가는 길에 하나씩 갖고 가라고 교도모두에게 하나씩 선물로 주셨다.

 

 

 

 입구쪽에서 바라본 용은정사전경

 

종법사에 취임후에 여러사람이 글을 써달라고 해서 입구표석에 있는 '맑고 밝고 훈훈하게'라는 법문을 내 주셨는데 나도 처음에 이글을 접하고 멋은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겉으로 말은 못했는데 여러사람들이 글씨를 못쓴다고 했다며 그 당시에는 글쓰는데 유념하지 않아서 그랬지만 요즘에 글씨 연습을 하신다고 하시며 유념으로 일을 하면 다 잘된다시고 유무념책자도 모두에게 나누어 주신다.

 

2017년 폭설이 내리고 가본 상사원

좌산상사님배알하고 저녁으로 잔치국수를 두그릇먹고, 군고구마도 먹고,,,,,

기억에 남을 신년하례일듯합니다.

 

 

 

 

 

 

 

 

 

 

 

 

 

신용리 산 124-1 지방기념물 12호(지정일: 1973.06.23) 미륵산성(彌勒山城)

 

 

미륵산성은 미륵산 정상부와 골짜기를 감싸는 포곡식(包谷式) 석성이라는 특징이 있다.

 

성의 둘레는 1,822m로 10개소의 치(雉)와 동문지와 남문지에 옹성이 남아 있다. 동문지의 발굴조사에서는 4차에 걸쳐 개축된 것이 확인되었는데, 백제 이후에 창건되어 최종적으로는 조선시대에 개축된 것으로 판단된다.


미륵산성은 금마면 소재지에서 약 3㎞ 지점에 솟은 표고430m의 미륵산에 있다. 이 산성은 고조선의 준왕이 남하하여 이 곳에 도읍을 정하고 쌓았다 하여 기준성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은 이 산성이 미륵산에 있기 때문에 미륵산성이라고 호칭한다.미륵산은 남방에 만경강을 거느리고 있고 북방에는 금강이 흐르는 익산평야의 주산을 이루고 있으며 동으로는 천호산 줄기를 두르고 운장산 등 노령산맥과 연결된다.

산성은 주 능선을 서북곽으로 하고 최고봉인 정상을 기점으로 하여 북쪽에 있는 또 하나의 산봉우리를 향하고 있는 성 줄기는 다시 동쪽으로 꺾어서 능선을 따라 내려가고, 남쪽은 역시 정상에서 동남으로 향하여 뻗은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북으로 꺾이면서 수구를 향하여 내려간다.

성의 평면은 동서 장축의 평면직선거리는 약 680m에 이르고 남북 최대 폭은 약 370m이다.남변의 길이는 약 566m 이고, 북변은 588m, 서변은 386m의 사면길이를 표시하고 수구가 있는 동쪽 변은 동문까지 139m 이다.성문은 동쪽변 중앙에 동문이 있고, 남쪽 변 중앙에 남문이 있으며 서쪽 모서리에 서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벽의 구조를 보면 외벽은 약 30∼50㎝ 길이에 높이 20㎝ 내외의 할석을 면을 맞추어 평적하였는데 거의 수직을 이루고 있다. 높이는 약 4m 내외이며 지형에 따라 성루는 폭이 4m 내외이고 내측은 약 1m 내외의 석축을 수직으로 쌓은 곳도 있고 또는 석계장으로 단면 폭을 줄이며 석축한 곳도 있다.

또한 산 사면을 깎아 외벽만 석축하고 폭 8m내외의 회랑도나 건물지를 설치한 곳도 있다. 남쪽변의 주봉 아래에는 외벽과 내벽을 쌓고 안쪽으로는 공호를 설치하였다. 성문에는 옹성을 설치하여 방어에 용이하게 하였다.

 

이 산성은 정비계획의 일환으로 동문지 및 주변 유구조사를 통해 성곽의 구조와 규모, 축조시기를 밝히고자 1990년과 1992년의 2차에 걸쳐 발굴을 실시한 바 있다.성곽은 석축의 포곡식 산성으로 조사 결과 말각방형의 옹성과 여러 차례 개보수 된 동문지가 확인되었다.육안으로 확인되었던 10개소 정도의 치중 2개소의 치 조사도 병행되었다.

기준이 쌓았다는 설이 있으나 성의 형태나 출토유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백제시대의 유물이 거의 출토되지 않음에 따라 백제시대까지 시기를 올려 볼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지형적 이점으로 인해 여러 차례 개축되었으며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일부 복원을 위한 성벽 석축 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고려사절요』태조 19년조에 "고려 초에 전주를 근거로 할거하였던 후백제의 신검이 부왕 견훤을 쫓았을 때 고려 태조가 이를 토정하여 마성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그 마성이 바로 이 미륵산성이다.

-ⓒ 마운틴월드


 

무왕길 / 왕궁리~‘추노’ 촬영지 구룡마을 대나무숲까지 13.2㎞

 

 


 

 

무왕길은 무왕이 익산으로 천도하며 남긴 왕궁 터와 그가 태어난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 등을 추적해 길로 연결한 것이다. 익산시에서 역사유적지 탐방형태의 새 걷기 코스로 ‘무왕길’을 조성했지만 사실은 무왕의 옛길인 셈이다. 길은 익산의 모든 유적을 하나하나씩 연결한다. 역사 유적 탐방코스로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길이다.

익산은 도시 곳곳이 경주 못지않은 유적지다. 그 유적지를 길로 연결했다. 가는 곳마다 국보와 보물, 사적지로 지정된 문화재들이다. 한마디로 감탄스럽다. 익산시는 이 역사유적지구를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고, 문화재청에서도 남한산성과 더불어 세계유산 우선 등재지역으로 지정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도시로는 경주에 이어 두 번째가 된다.

사적 408호로 지정된 왕궁리 유적지가 유적전시관 바로 옆에 있다. 유적전시관에서 불과 100여m 거리에 왕궁 터가 있다. 왕궁 터엔 고대에 있었던 다양한 건물의 형태를 복토로 표시하고 있다. 그 중에 우뚝 솟은 탑 하나가 눈에 띈다. 국보 제289호인 왕궁리 오층석탑이다.

 

▲ 남한 최대의 대나무 군락지로 알려진 익산 구룡마을 대나무숲에서 일행들이 대나무숲을 바라보며 무왕길 마지막 코스를 걷고 있다. 이곳은 드라마 ‘추노’ 촬영지이기도 하다.

 

국보 오층석탑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다시 또 국보 제123호인 사리장엄구를 비롯 금동제 사리함과 금강경판 등이 출토됐다. 물론 전부 유적전시관에 전시돼 있다.

유적전시관과 왕궁 터 주변엔 벚나무가 담장을 대신하고 있다. 4월에 활짝 핀 벚꽃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정표도 잘 정비돼 있다. 전시관 앞 도로를 따라 30m쯤 가면 왼쪽 방향으로 ‘고도리 석불입상’이 있다. 보물 제46호다. 이렇듯 사적지에서 국보로, 다시 보물로 출발한 지 불과 30분도 지나지 않아 소중한 문화재를 계속 지나친다. 석불입상은 200m 거리를 두고 2구의 석불이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석불입상에서 ‘서동생가터 0.5㎞’란 이정표가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다. 하천을 따라 조금 걷다 횡단보도를 건너 도로 뒤로 올라서면 널찍한 공터가 나온다. 낙엽을 살짝 걷으면 기와조각들이 언뜻언뜻 보인다.

바로 옆에는 ‘마룡지’로 불리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다. ‘마룡지와 서동생가터’란 안내판에 마룡지에 대한 유래가 설명되어 있다.

익산은 세계문화유산 우선 등재지역

무왕(서동)의 탄생지와 생가 터를 지나 어려서 사용하던 우물터 용샘으로 가는 길은 전형적인 시골 마을길이다. 거름 냄새가 나고 한가한 분위기가 거리 곳곳에 서려 있다.


무왕의 탄생과 얽힌 장소는 이곳 주변에 널려 있다. 마룡지와 생가터, 용샘(龍井), 그리고 오금산 등이다. 오금산은 무왕이 어릴 적 서동이란 이름으로 선화공주를 유혹해서 데리고 가다 다섯 개의 금을 얻었다는 산이다. 용과 금, 전부 왕과 관련된 용어들이다.

용샘 옆에 있는 용정마을을 지나 오금산에 오르면 사적 제92호인 익산토성이 있다. 보기 드문 토성이다. 남한의 산성은 대부분 석성이지만 거의 원형대로 보존된 몇 안 되는 토성이다.

익산토성에서 산길을 걸어 다다르는 다음 유적지는 미륵사지. 미륵사는 무왕이 창건한 동양 최대의 사찰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절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절터만 남아 옛날의 영화를 대변하고 있다. 미륵사지는 사적 제150호다. 미륵사지에 있는 미륵사지 10층석탑은 국보 제11호, 그 옆에 있는 당간지주는 보물 제236호다.

이젠 마지막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익산토성을 들러 드라마 ‘추노’를 촬영한 구룡마을 대나무숲에 이르면 된다.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무왕길에는 놓칠 수 없는 유적과 문화재, 명소들로 가득 차 있다. 숱한 길을 가봤어도 다른 길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이 진하게 다가올 것이다.

익산토성 동문에서는 양쪽의 홈이 있는 바위가 성문을 여닫은 흔적을 말해 준다. 성문 앞으로 옹성을 축성,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다. 다시 위로 올려다보니 경사가 45도 이상은 족히 될 것 같다.

이젠 한적한 등산로로 내려와 구룡마을 대나무숲으로 간다. 한반도 최대 대나무숲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3대 5일장의 하나였던 강경장을 통해 전국으로 팔려간 대나무다. 이곳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대나무를 팔았기에 ‘생금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전체 면적이 담양 죽녹원보다 훨씬 더 크다.

무왕길은 백제 역사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길이다. 지나온 길에 사적지만 3곳이며 국보, 보물 등이 숱하다. 정말 눈이 사치를 하는 길이다. 한마디로 감동적이다. 이 길은 아직 명확히 고증되지 않은 무왕의 역사를 되새기며 또한 한반도의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좋은 체험장이 될 것이다.

 

익산의 별미는 서동이 어릴 때 생계유지를 위해 팔았던 마를 맛보는 것도 괜찮다. 문광부 선정 전국 100대 음식점에 꼽힌 본향퓨전한정식(858-1588 또는 011-681-8688)을 우선 꼽을 만하다. 미륵사지 주변엔 두부요리집이 많다. 그 중 두부카페(833-1088)는 두부로만 만든 각종 요리를 맛깔스럽게 선보이는 집으로 유명하다.

미륵산순두부(836-8919)도 나름 괜찮은 집으로 꼽힌다. 왕궁리에서 출발하려면 그 주변엔 숙박시설이 별로 없다. 2~3㎞쯤 떨어진 곳이 왕궁온천모텔(291-5000)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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