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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경주 경주읍성

by 구석구석 2008.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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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년고도 경주 도심 시가지를 거닐면 고려, 조선시대 유적들이 남아 있다. 경주시 동부동과 북부동 일대가 지금은 경주역과 인접한 시가지이지만, 가까운 곳에 고려시대에 쌓은 경주 읍성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길게 늘어선 성벽과 석축이 도로변으로 보인다.

 

 

경주읍성은 현재 복원 정비되면서 주변 민가들도 하나둘씩 정비되고 있다.

 

고려 현종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동경통지>에 고려 우왕 4년(1378) 때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읍성은 조선 전기에 다시 짓고,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10년(1632)에 동·서·북문을 만들면서 다시 지었다고 한다.

 

규모에 대해서는 동국여지승람에는 경주 읍성은 1.2km의 둘레에, 높이가 3미터, 80개의 우물을 갖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성문은 동쪽은 향일문, 서쪽은 망미문, 남쪽은 징례문, 북쪽은 공진문이었다.  

 

 

예전 동쪽의 성벽 모습이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신종은 남문인 징례문에 걸려있어 매일 시각을 알려주었다. 임진왜란(1592) 때는 경주 읍성 탈환 작전에 박의장이 이장손이 발명한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여 큰 성과를 거둔 역사의 현장이 바로 이 곳이다.

 

 

예전의 남문모습

 

도시 계획으로 경주시가 확장되면서 성이 대부분 헐리고 현재는 동쪽 성벽 약 90m 정도만이 옛 모습대로 남아있다. 1800년경 조선 정조 때 제작된 경주부 지도를 참고로 2004년 완성된 경주읍성 복원도는 강과 북천으로 둘러싸인 조선시대 당시 경주읍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복원계획으로 철거된 민가장소

경주 읍성은 성덕대왕신종과 임진왜란 당시 비격진천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문화재로 현재 경주시에서는 20012년까지 주변 성곽 및 동문과 북문을 복원할 예정이며, 곳곳에 복원을 하려는 흔적이 엿보인다.

 

길 이름도 읍성을 중심으로 동문안 북문안 길 등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읍성 안에는 아직도 갖가지 유적들이 주변에 남아 있다. 경주 경찰서 맞은 편에는 동경의 객사라는 뜻의 동경관이 남아 있는데, 이곳은, 고려시대 때부터, 외국의 손님이나 서울의 관리가 오면 머물렀던 곳이다.

 

동전을 주조하던 곳으로 추정는 주전지로 이 일대가 집경전터이다.

인근 경주 여자중학교 교정에도 집경전 구기라고 적힌 비가 남아 있는데, 요즘 방송에 나오는 정조대왕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주변 계림초등학교 가는 길 북문안 4길에는 네모난 돌을 마치 터널처럼 만든 곳이 있는데, 조선시대 동전을 만들었던 곳으로 전해지는 주전지다.

 

현재 경주문화원 자리도 아마 인근이 동헌 즉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문화원 내에는 각종 주춧돌과 초석 등 많은 석재들이 남아있고,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다. 또한 대릉원 후문 맞은편 도로변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법장사는 경주 동헌(東軒)을 그대로 옮겨져 지금까지 사찰로 사용되고 있다고도 한다.

 

천년고도 경주에는 신라시대 문화재도 많지만 고려, 조선 문화재도 있으나 상대적으로 관리가 다소 소홀해 아쉬웠으나 차츰 복원의 손길이 미치고 있어 신라를 넘어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모두 끌어안아 역사문화도시 경주로 발전 나길 거듭 기대해 본다. 

ⓒ 2008 OhmyNews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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