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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경주 35번국도-포석정 지마왕릉 윤을골 늠비봉5층석탑

by 구석구석 2008.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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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을 일주하려는 사람은 먼저 포석마을로 가야 한다. 이곳에는 큰 주차장이 있어 차를 세우기가 좋다. 차에서 내리면 동쪽으로 문이 있고 그 안에 포석정이 있다.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이라는 이름의 석조구조물이 보인다. 유상곡수연은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 구불구불 돌게 하면서 벌이는 잔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구불구불 만든 석조물이 전복 모양이라는 것이다. 아하, 그래서 포석이라는 이름이 붙었구나. 

 

 

전복모양의 포석정/이상기

지금부터 약 1100년 전인 927년(경애왕 4) 11월, 경애왕은 이곳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다 참혹한 일을 당하고 말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2, ‘경애왕’조에 따르면 경애왕은 후백제 왕인 견훤의 공격을 받아 이곳 포석정에서 궁궐로 피신하였으나 잡혀 자살하고 만다. 이 포석정 연회는 신라가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포석정 전경/이상기

 

일주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지마왕릉

포석정을 나와 일주도로 오른편으로 조금 들어가면 지마왕릉(祗摩王陵)이 나온다. 지마왕릉은 원형봉토분만 있는 아주 단순한 형태이다. 신라 초기만 하더라도 왕릉에 석재를 전혀 쓰지 않아 아주 편안한 느낌이다. 이곳 지마왕릉에 보니 누가 능돌이를 했는지 봉분 주위로 둥글게 잔디를 밟은 흔적이 보인다.

   

지마왕릉은 밑둘레가 38m, 높이가 3.4m로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원형봉토분이다. 지마왕은 신라 제6대 왕으로 5대 파사왕의 아들이다. 당시 신라는 백제와는 사신을 교환하는 우호적인 관계였고, 이웃하고 있는 가야와는 갈등 관계에 있었다. 그리고 왜(倭)와도 갈등관계에 있었고 북쪽에서는 말갈이 쳐들어와 대외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입장에 있었던 것 같다. 내적으로도 흉년, 홍수, 화재 등 어려운 일이 많아 전체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낸 왕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신라는 아직 변방의 작은 나라에 불과해 독자적으로 살아가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윤을골 마애삼존불이 가지는 종교성

지마왕릉에서 나와 다시 남산 일주도로를 따라 남산 전망대인 금오정 방향으로 향한다. 이 길은 포장되지 않은 상태이고 차량 출입이 금지되어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우리 일행 여섯 명은 배실골, 가늘골, 부엉골로 갈라지는 길을 지나 계속 일주도로를 따라 간다. 20여분을 올라가니 왼쪽에 윤을곡 마애불좌상이라는 안내 표지가 나온다. 이곳에 보니 포석정까지 거리가 900m이다.

 

윤을골을 이곳 사람들은 유느리골이라 부른다. 그 의미가 궁금해 이곳 사람들에게 뜻을 물어봐도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한다. 왼쪽으로 이삼 분 오르자 세분의 부처가 새겨진 바위가 나타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것을 삼신바위 또는 마애삼체불이라고 부른다. 삼신바위는 ㄱ자형의 바위로, 왼쪽에 두 분 오른쪽에 한 분의 부처가 새겨져 있다. 이 바위는 높이가 3m, 너비가 6m쯤 된다.

 

윤을골 마애삼존불/이상기

 

남향하고 있는 두 분의 앉은 부처는 석가여래와 약사여래이다. 두 겹 연꽃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왼쪽의 부처는 약그릇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오른쪽 부처는 오른 손을 위로 들어 설법하는 모습이어서 석가여래로 보고 있다. 전체적으로 얼굴이 크고, 석가여래의 육계에는 상투 모양이 보인다. 귀가 상대적으로 길게 표현되었고, 옷주름 역시 비교적 굵고 선명하게 조각되어 종교적인 경건성을 부각시켰다.

 

불상 왼쪽에, 그러나 보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석가여래 오른쪽에 ‘태화을묘9년(太和乙卯九年: 835년)’이라는 명문이 있다고 하는데 확인이 어렵다. 이 명문이 사실이라면 이 부처들은 지금부터 약 12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 된다. 그래서인지 얼굴부분이 상당히 마모되어 있다.

 

서향하고 있는 또 다른 부처님은 앞의 두 부처님보다는 조금 작아 높이가 108㎝이다. 얼굴 표정이 조금 더 부드럽고 조각이 조금 단순하다. 옷주름도 간단하게 표현했고, 연꽃대좌도 간단히 한 줄로 표현하여 역시 예술성보다는 종교성을 강조했다. 또 신광과 두광 두 군데 광배에 각각 두 기 모두 네 기의 화불을 표현하고 있어 더욱 경건한 느낌을 준다. 이 부처 역시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로 볼 수 있다.

  ⓒ 2008 OhmyNews 이상기

 

마애삼존불에서 길은 오른쪽으로 휘어진다. 이 길을 따라 10여 분 오르면 길바닥에 납작한 돌이 박혀 있고 그 오른쪽으로 마애여래좌상 160m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이곳에서 산으로 길을 들어 능선을 따라 오르면 부흥사가 나오고 능선을 조금 벗어나면 언덕 아래 중간 크기의 바위에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마애여래좌상/이상기

이 길이 아마 옛날 부엉골로 내려가는 지름길이었던 것 같다. 마애여래좌상은 남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부엉골에서 보면 북쪽이 된다. 그런데 이 마애여래좌상은 석재가 좋지 않아서인지 얼굴 윤곽의 상당 부분이 손상되었다. 누런색의 돌가루가 떨어지는 것을 보니 석재가 그리 강하지 않은 모양이다.

 

얼굴 외의 선각 부분은 그래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처음 만들 때는 종교적인 면에서나 예술적인 면에서 꽤 우수한 작품이었을 텐데 조금씩 훼손되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몸의 비례나 연꽃 좌대, 옷주름 등이 아주 안정적인데 부처님 상호를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종교적인 경건성을 찾기 어렵다. 또 이 마애불에는 안내판이 없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그 역사와 유래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부흥사(復興寺). 절 이름도 그렇고 당우로 보아도 최근에 생긴 절이다. 이 절은 남향을 하고 있는데 부엉골 건너 늠비봉을 안산으로 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위쪽에 대웅전이 있고 아래쪽에 요사채가 있는 형태이다. 요사채 옆에는 노란색과 흰색의 국화가 피어 있다. 겨울인데도 국화꽃이 피어 있는 게 조금은 이상하다.

 

부흥사대웅전/이상기 

이곳에서 부엉골 골짜기를 건너 늠비봉으로 오르면 오층석탑이 나타난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올라가기 때문인지 5층석탑의 검은 실루엣이 푸른 하늘과 대비되어 아주 인상적이다. 이곳에는 원래 4기의 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5층석탑 하나만이 복원되어 있다.

 

 

늠비봉 5층석탑/이상기

 이 5층석탑은 자연석 위에 일층의 기단을 세우고 5층의 탑을 조성하였는데, 전체적으로 목탑 양식이라고 한다. 글쎄 전문가가 아닌 내가 보아도 신라탑보다는 백제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우선 탑의 체감비율이 상당히 낮고 옥개석의 모양도 신라탑과는 다르게 보인다. 그렇다면 이 늠비봉 5층석탑이 역사가 가장 오래된 탑일까? 그것은 앞으로 남은 3기의 탑을 복원하면서 주변을 제대로 발굴하여 결론을 내릴 일이다. 

 

그리고 이 탑이 최근에 복원된 것이어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특히 기단부가 지나치게 넓게 만들어져 날렵해 보이기는 하나 위의 탑신부와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복원을 하면서 행정 당국에서 신경을 써야 할 문제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따라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 이것을 만든 선조와 이것을 보게 될 후손에 대한 예의이다.

 

 

이곳 늠비봉과 5층석탑은 남산8경 중 하나이다. 이곳이 남산8경이 된 것은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경주시청 홈페이지는 늠비봉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 거기에 단아하게 하늘을 이고 오층탑이 섰다. 별 치장도 없고 큰 몸짓도 없이 그 모습 그대로다. 소담한 봉우리에 단아한 탑 하나. 바위산을 하층기단 으로 삼고 불쑥 솟은 오층탑. 그 주위로 산 능선이 나비처럼 날개를 펼치고 있다. 포석계곡의 중앙을 지키면서 부엉더미와 황금대, 냉골 암봉, 금오봉, 해목령 등에 둘러싸여 서라벌을 굽어보는 위치가 가히 절경이다.”

 

늠비봉 5층석탑을 보고 능선을 따라 전망대인 금오정(金鰲亭)으로 오른다. 가는 길에 보니 대나무 군락이 보이고 길 위에는 낙엽이 뒹굴고 있다. 한 100m쯤 올랐을까? 금오정이 보인다. 첫눈에도 콘크리트로 만든 현대적인 작품이다. 땅바닥과 공간을 띄운 1층의 기단 위에 12개의 기둥을 세우고, 가운데 지붕 꼭대기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기둥을 세워 무게를 지탱하도록 했다.

 

 

금오정 전망대

전망대보다는 능선의 바위 위에서 보는 건너편 상사바위와 경주 시내 전망이 훨씬 더 좋다.

ⓒ 2008 OhmyNews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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