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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남도

담양 지실마을 계당매 가사문학관 소쇄원 독수정원림

by 구석구석 2007.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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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지실마을 계당매(溪堂梅)
가사문학의 본 고장인 담양군 남면에 지실마을이 있다. 마을은 장원봉과 성산 기슭에 위치했다. 가사문학관과 식영정 등이 있는 이 마을은 조선시대 선비의 집산지였다. 또 별뫼(성산) 주변의 절경을 찬미한 식영정 18경과 성산별곡을 낳은 곳이기도 하다.


마을에는 송강의 넷째 아들이 살던 계당(개천 위에 지은 집이라 해 붙은 이름이다) 터가 있다. 그가 심고 가꾸었다는 홍매화와 백매화, 두 그루가 지금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실마을 정희용 이장에 따르면 아직 꽃은 피지 않은 상태. 그는 3월 셋째 주에 매화가 꽃을 피워 약 1주일간 갈 것으로 예상했다.  

 

명옥헌에서 광주호를 타고 돌면 지실마을에 있는 정자 식영정과 환벽당, 그리고 가사문학관 등이 나온다. 우선 식영정 오르는 길엔 큰 소나무들이 손을 내민다. '그림자를 끊는다'는 '식영정(息影亭)'은 명종 15년(1560)에 서하당 김성원이 스승이자 장인인 임억령을 위하여 지었다는 정자이다.

 
식영정에서 보는 광주호와 성산별곡시비/오마이뉴스

식영정 옆에는 검정 대리석으로 세운 '성산별곡'이라는 시비가 있는데, 이 성산별곡은 송강 정철이 이곳 식영정에서 지은 가사이다. 지실마을 뒷산인 별뫼에 떠 있는 별들의 아름다움과 자연에 묻혀 사는 서하당 식영정 주인의 산중 생활을 찬미하고 있는 시다.

 

식영정 주위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즐비한데, 그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광주호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잔물결에 튀기는 해 질 녘 햇살은 소나무 사이를 뚫고 식영정 기둥에까지 어른거리며 그리움을 쏟아낸다.

 

식영정 옆에 있는 '가사문학관'은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가사문학 관련 유산의 전승과 보전, 현대적 계승, 발전을 위하여 1995년부터 건립을 추진하여 2000년 10월에 완공하였다. 송순의 면앙집과 정철의 송강집 및 친필 유물 등 귀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규방가사, 백광홍의 관서별곡, 허난설헌의 규원가 등 많은 가사문학에 대한 자료와 임억령, 양산보, 김인후, 김성원, 고경명 등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사문학관 내에는 가야금 병창을 바탕으로 한 느린 가락의 노래가 들려오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가사자료를 관리하는 박명선씨는 이 노래가 명앙정와 속미인곡에 전남대 최재률 교수와 서해대 김삼곤 겸임교수가 새로 곡을 붙인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누정과 원림 나들이에 앞서 꼭 들러야 할 곳이 바로 가사문학관으로 조선 중기 국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가사문학의 진수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이 1층 입구 오른쪽에 자리한 영상관. 이곳에서는 시가문화권 일대의 풍광과 사연을 영상으로 담은 '한국 시가문학의 현장을 찾아서'를 상영하고 있는데 주변에 산재한 문화유적에 대한 종합안내 역할을 해주므로 초보여행객들은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전시관에는 송강 정철의 친필을 비롯해 송순, 임억령 등 조선 중기 선비들의 유물, 유품을 비롯 현판, 교지와 족보, 관련 문집 등 1천300여 점의 귀중한 자료가 선보이고 있다.

 

전시실 외에 세미나실, 향토사료관, 문화사랑방 등 다양한 공간이 있으며 갤러리인 지실산방과 전통찻집, 관람객이 쉴 수 있는 정자도 갖추고 있다. 

ㆍ사이버 가사문학관 http://www.damyang.go.kr
ㆍ관람시간 : 하절기 09:30~18:30 , 동절기 09:30~17:30, 매주 월요일 휴관
ㆍ관람료 : 어른 1,000원, 청소년 700, 어린이 500원
ㆍ주차료 : 자가용 1,000원, 버스 2,000원

 

전문 해설가에게 도움을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전시장내 가사문학 해설 전문가(안내 도우미)에게 부탁하자. 담양군의 인증시험을 거쳐 가사문학관에 상주하고 있는 해설도우미는 이 일대 유적지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해준다. 이들 가운데는 일본인 여성 가토유미씨가 있다. 그녀는 "평소 가사문학에 관심이 많아 유적지를 돌아보곤 했는데 직접 전시장 안내까지 맡게 돼 너무 기쁘다"는 중년 주부이다.

자료 - 광주광역시청 문화관광 

 

 

호수 생태원
광주호 주변에 5만6천여평의 부지에 자연관찰원, 자연학습장, 잔디휴식광장, 수변 습지 등 테마별 단지로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광주시내에서 약 3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시원한 느낌을 받는 공원으로, 추운 날씨가 아니 라면 꽃이나 동· 식물들의 생태자료를 직접 볼 수 있다.

진달래, 개나리, 자산홍, 장미, 철쭉, 수국 등 형형색색의 야생화 17만 본이 심어진 테마별 꽃단지와 부엽식물원, 수변부 관찰 테크, 암석원, 그리고 때죽나무, 모과나무, 벽도동, 단풍나무 등 3000여 그루의 나무 등이 볼만하다. 늪지에서 각종 새들이 실제로 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메타세콰어이 양편 가로수 사이로 목재계단을 조성하였다.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창평IC로 나와 고서면까지 간 뒤 고서사거리에서 가사문학관 이정표를 따라 가면 된다. 가사문학관이 있는 마을이 지실마을이다. 마을 안쪽에 계당 터가 있고, 그 주변에 매화나무가 있다. 담양군 남면사무소 061-380-3784

 

송강유적지 문화마을로 변신

가사문학의 산실인 전남 담양 송강 정철(1536∼1593) 유적지가 후손의 토지신탁으로 생태문화마을로 다시 태어난다. 23일 자연환경국민신탁에 따르면 송강의 16대 후손인 정구선(70) 홍혜미 씨(64) 부부는 담양군 남면 지곡리 지실마을 4만 m²를 국민신탁에 내놓기로 했다.

정 씨 부부가 신탁할 재산은 6·25전쟁 때 소실된 송강의 고택과 송강의 4남인 홍명이 1616년 지은 ‘계당()’, 식당과 임야 등 20억 원 상당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당이 있는 만수동 계곡은 송강이 만년에 머물며 ‘만수명산로()’로 부르던 옛길로 경관이 수려하다.

정 씨 부부는 지난해 계당에 보관 중인 고문서 등 4100여 점을 전남대 등에 맡긴 데 이어 문중 재산을 신탁했다. 정 씨는 “400년 넘게 간직한 문화유산이 훼손되고 주변에 투기꾼이 들어오는 현실이 안타까워 개인이 아닌 공유재산으로 온전하게 보존하고 싶었다”며 “가사문학 테마마을을 조성해 모든 사람이 머물고 두루 둘러보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신탁은 정 씨의 뜻에 따라 소실된 고택을 복원해 가칭 ‘송강 문학의 집’으로 꾸미고 자연경관이 뛰어난 임야를 보존해 생태문화마을로 만들기로 했다. 동아일보 2009.3 정승호
 

 

후원이 궁원(宮園)의 으뜸이라면 소쇄원은 우리나라 제일의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먼 산에서 출발한 계류(溪流)가 모든 성질이 죽어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산기슭, 비탈진 곳에 자리잡았다.

 

 

사계절 푸르른 대나무숲이 먼저 반기는 소쇄원은 조선 중기 양산보에 의해 건축된 민간 정원이다.

 

 한국 최고의 별서정원 소쇄원 / 월간조선

 

그 명성이 하도 자자해 대궐처럼 큰 규모에 온갖 귀한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1,400여평 남짓한 공간에 대봉대와 광풍각, 제월당의 단 세 채의 건물이 있을 뿐이며, 동쪽으로 긴 담장이 걸쳐진 소박한 원림이다. 그러나 소쇄원이 반세기 조금 못 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과 어우러진 과학에 가까운 건축기법 때문일 것이다. 물론 소쇄원을 조성한 양산보와 그를 중심으로한 조선 중기 선비들의 나라와 시대에 대한 고뇌와 그 속에서 탄생한 가사문학의 흔적만으로도 소쇄원 자체는 상당한 존재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건축미에 빠져보자면 소쇄원은 대나무, 매화, 동백, 오동, 배롱, 측백, 산수유 등의 조경수목으로 빼곡이 둘러싸인듯 자연 속에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 조경물로는 너럭바위, 우물, 탑암과 두 개의 연못이 있어 자연스러움을 더했다. 황토흙을 이겨 내고 간간히 돌맹이를 박아 놓은 담장은 소박함을 강조시키는 듯하다. 

 

담장은 경계의 선이랄 수 없는 것이 오곡문이라 새겨진 담장 밑을 살펴보면 넓적한 바위가 담을 이고 그 아래는 터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북쪽 산기슭에서 흘러내린 물길이 인공 건축물에 막히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내주기 위함이다. 담장 안으로 들어온 계곡물은 광풍각 앞을 지나 연못을 채우고 지나가도록 되어 있다. 물길이 흐르는 길은 이끼 낀 반쪽짜리 나무 통으로 미학의 극치를 보여준다. 

  

 소쇄원 제월당과 광풍각을 나누는 담장/오마이뉴스2008 김정봉

 

우암 송시열이 쓴 현판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제월당은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소박한 제월당은 얼핏 보기엔 정자 같으나 1칸들이 방이나 사방이 트인 마루에서 집주인이 독서를 즐겨하던 거처다.

 

큰 돌을 여러 겹 쌓아 단을 높인 곳에 제월당을 짓고 그 앞에는 너른 마당을 두었다. 여인의 치맛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듯 지붕 끝은 하늘을 향한 팔작지붕으로 마치 제월당이 밤 하늘의 달을 향해 가슴을 활짝 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상쾌한 바람소리를 품은 光風閣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집이다. 광풍각에는 영조 31년(1755) 당시 소쇄원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남아 있다. 월간조선

 

▲ 비 온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광풍각

제월당 앞, 아랫부분에 자리한 광풍각은 ‘비 온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사랑방이다. 사랑방은 주로 객을 위한 자리로 역시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지었다. 중앙 1칸은 온돌방인데 문이 3분합의 들어열개문으로 양쪽으로 여는 일반적인 문이 아닌 하늘을 향해 들어올리는 방식이다. 때문에 문을 열면 바로 마루처럼 사방이 트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광풍각에 앉아 있거나 드러누워 있길 즐기는데 마침 한줄기 햇살에 눈이 부셔 감을 적에 바람이 살랑인다면 광풍각의 참의미를 알게 된다.

 

 

▲ 기다리는 손님을 주인이 봉황처럼 모시는 곳-대봉대

소쇄원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정자로 사방 1칸이다. ‘기다리는 손님을 주인이 봉황처럼 모시는 곳’이라해서 대봉대라 불리는데 지붕은 초가지붕으로 소박한 것을 보면 보이는 외향보다 맞이하는 마음과 내향이 더욱 정성스럽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또 한편으로 대봉대는 ‘봉황을 기다리는 대’라는 의견도 있다. 나라가 태평한 세월에만 나타난다는 상상속의 새, 봉황은 성군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대봉대 맞은편에 심어진 오동나무와 대나무가 이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또 대나무 열매인 죽실만 먹는 다는 속설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의 이유야 어떻든 간에 소쇄원 정경을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둘러볼 수 있다는 대봉대에 앉아 있노라면 시대의 시름이나 일상의 권태는 다 잊혀지는 듯 하다.

 

Travel Tip

담양은 민간정원 소쇄원부터 시작해 명옥헌, 식영정, 면양정, 송강정 등 자연과 어우러진 정자들을 통해 조선시대의 풍류와 가사문학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이나 죽녹원, 가마골 생태공원 등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면서도 풍치가 빼어나 나그네의 발길을 바람결에 이끈다. 먹을 거리도 다양해 대통밥, 떡갈비, 창평국밥 등을 맛보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다. 담양군청에서는 군의 곳곳에 소재한 관광명소를 찾아가기 쉽도록 매주 토요일 버스투어를, 일요일에는 대나무웰빙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좀 더 개별적이면서도 편안한 여행을 원하는 관광객을 위해서는 택시투어도 마련해 기호에 따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여행미디어 2007. 8

 

 

 

 

소쇄원 / 한국관광공사

 

 

독수정 원림 (獨守亭)

 

서은 전신민(瑞隱 全新民)은 고려 말 공민왕 때 병부상서를 역임했고,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 72현과 함께 두 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담양에 은거하면서 정자를 지었다. 현재의 독수정 건물은 1891년(고종 28년)에 재건된 것이며, 1915년에는 기와지붕으로 바꾸고 1972년 중수했다. 정자 주변의 원림이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전신민은 계류가 흐르는 남쪽 언덕 위에 정자를 짓고 후원에는 소나무를 심고 앞엔 대나무를 심어 수절했다. 독수정의 방향이 북향인 까닭은 아침마다 송도(松都)가 있는 북쪽을 향하여 곡배(哭拜)하기 위함이다. 조경적인 측면에서는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산수 원림 기법을 이 지방에 도입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독수정이란 명칭은 이백(李白)의 시에 나오는 ‘夷齊是何人 獨守西山餓’에서 따온 것으로 은사의 절개를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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