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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남도

영암 819번지방도 도갑사~도갑산 상견성암

by 구석구석 2007.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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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나들목→강진 방향 2번 국도→왕인박사 유적지 방향으로 빠져 819번 지방도로→도갑사 이정표. 또는 광주에서 13번 국도 타고 영암 방향 진행→819번 지방도로→도갑사 진입로. 

 

 

 

 

 

도갑사 해탈문/김연숙

 

도갑사로 오르는 길은 아름드리 벚나무가 가득하다. 봄날 월출산과 어우러지는 벚꽃에는 인간의 삶과 같은 찰나의 매혹이 묻어 있다. 대웅보전 앞 5층 석탑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 남쪽 도갑봉을 등지고 주지봉을 바라보는 넓은 산자락에 자리 잡은 도갑사는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맑은 공기가 흐르고 있다. 

 

정겨운 돌계단을 딛고 올라가 국보 제50호인 해탈문을 지나갔다. 해탈문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어 왠지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도갑사 경내에 주춧돌을 한데 모아둔 곳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 1977년에 참배객들의 부주의로 대웅보전이 불타는 비운을 겪었다 하더니 그 흔적들인지 모르겠다.  

 

 도갑사는 조계종 22교구의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전남 해남)의 말사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로 원래는 도갑사가 본사이고, 대흥사가 말사일 정도로 컸다. 그 규모가 9백66칸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많은 건물이 불에 탔다. 


 작은 통나무배 같이 생긴 석조(전남유형문화재 제150호)는 조선 숙종 8년(1682)에 화강암으로 만든 것으로 길쭉하고 네모난 돌 안을 파내 물을 담아서 쓰던 돌그릇이다. 길이가 5m 정도에 달하는 석조의 크기로 도갑사가 큰 절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물맛 또한 참으로 달고 맛있다. 월출산 산행을 다녀온 등산객들도 거기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갔다.

 

도갑사 미륵전에는 미륵은 없고 석가를 모셔 놓았다. 몸체와 광배(光背)가 하나의 돌로 조각되어 마치 바위에 불상을 직접 새긴 마애불 같은 느낌을 주는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으로 고려 시대의 화강암 불상이다. 무위사 벽화들과 마찬가지로 석조여래좌상도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나마 꽃무늬가 예쁜 미륵전 문짝 사진을 찍으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이 모셔져 있는 미륵전 /김연옥

 미륵전에서 내려와 도선·수미비각으로 가서 도선국사와 도갑사를 크게 중창한 수미선사를 추모하는 도선,수미비(보물 제1395호)를 살펴보았다. 영암에서 태어난 도선국사는 15세 때 불가에 출가한 뒤 중국에 가서 풍수지리를 공부하고 돌아와 문수사 터에 도갑사를 세운 분이다.

 

비각 창살 때문에 도선·수미비를 가까이에서 볼 수 없었고 사진도 찍기 어려웠지만, 연꽃잎이 아래로 흘러내리다 끝이 또르르 말려 있는 모습 등 조각이 참으로 정교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조선 인조 14년(1636)부터 효종 4년(1653)까지 17년이나 공을 들여 세운 비라고 한다. 더욱이 여의주를 입에 문 채 비석을 받치고 있는 돌거북의 거대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큰 절에 가면 이상스레 부도밭에 발길이 닿는다. 마음에 스치는 세월의 바람을 느끼면서 깊은 영혼의 울림을 듣고 싶은 것일까.  

/ 오마이뉴스 2007 김연옥

 
 

대웅전 뒤편으로 음력 14일 달이 떠오른다. 사위는 고요하고 월출산 구정봉에서 내려오는 한줄기 바람만이 대숲을 흔들며 '영암 아리랑'을 연주한다. 뜨락에는 검무(劍舞).바라춤.승무.선비춤 등 우리 춤사위 한마당이 펼쳐진다. 피리 독주가 은은하게 울려퍼지자 달빛도 숨죽이고 관람객 머리 위로 살며시 내려와 앉는다.

음력으로 매월 보름 전야에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 대웅전 앞마당에서는 '달맞이공연'이 펼쳐진다. 이 행사는 나선화(53.이화여대 박물관)교수가 지난해 추석 때 처음 기획했었다.

당시 국제교류재단은 세계 각국의 박물관 큐레이터를 초청해 워크숍을 개최했다. 나교수는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영암으로 불렀고 도갑사 주지 범각 스님의 양해를 얻어 추석 전날 한시간짜리 국악 이벤트를 마련했다.

주제는 '법성계(法性界)의 북소리'. 대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국악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법고(法鼓)로 시작해 승무(僧舞)로 끝마쳤다. 그리고 큰 인기를 얻자 매달 도갑사 앞마당에서 남도의 춤, 가야금과 대금 연주, 판소리, 사물놀이 등 주제를 달리해 행사를 이어왔다. 지난달 27일에는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활동하는 푸른버들 민예원 무용단과 사물놀이패가 공연을 했다. 

/ 자료 - 중앙일보

 

하늘이 숨긴암자 상견성암(上見性庵)

산은 절을 품고 절은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산자락에 안긴 도갑사의 12암자 중 동암과 함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상견성암은 '영암의 기'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기암을 병풍처럼 두른 암자는 가파른 절벽 위에 풍경처럼 매달렸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과 약수 맛이 기막힌 선승들의 수도처다.

 

견성암은 원래 상·중·하견성암 등 3개의 암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상견성암만 남아 있다. 도갑사는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했으니 암자의 연륜도 어림잡아 1000년을 훌쩍 넘는다.

 

노적봉 아래에 터를 잡은 암자는 가는 길이 만만찮다. 도갑사에서 50여분 걸리는 산길은 그리 험하지는 않지만 외지인이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도갑사 뒤편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만들어 놓은 자연관찰로를 거쳐 간다. 가는 길에는 정자 아래 용수폭포와 부도전, 도선국사비를 만난다. 계곡에는 버들치와 갈겨니가 살고 산중습지도 볼 수 있다.

 

여기서 몇 걸음 지나 왼쪽 대숲으로 향하는 길이 암자로 통한다. 험준한 돌산에 이만한 규모의 대숲이 있다는 게 신비롭다. 산죽(山竹) 아래에는 야생 차나무가 자란다. 한 점 바람에 사각거리는 댓잎 위로 이리저리 부서지는 초봄 햇살이 부산하다.

 

월출산 중턱 노적봉 아래서 세상에 등을 돌린 채 숨어 있는 암자 상견성암. 이 암자에서 근대한국불교의 선지식으로 꼽히는 청화스님이 홀로 3년 동안 묵언 수행을 했다.

산길은 동백나무와 단풍나무가 우거진 숲길로 이어진다. 땅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린 조릿대도 밭을 이루고 붉가시나무도 보인다. 5월에 꽃을 피우는 붉가시나무는 월출산이 북방한계선이다. 산새소리에 박자를 맞춰 흐르는 계류는 얼음처럼 차갑다.

 

이마에 흐른 땀이 옷깃을 적실 즈음 대나무숲 사이로 시야가 툭 터진다. 대나무 담장 너머로 기와집 한 채가 기암을 등지고 오롯이 앉아있다. 상견성암이다. 암자 입구에는 중견성암 자리를 표시라도 하듯 그 옛날 스님들이 사용했던 맷돌이 이끼를 두른 채 그대로 남아있다.

 

월출산의 내로라하는 봉우리와 기암에 둘러싸인 암자는 마치 천혜의 요새 같다. 암자 바로 앞에는 '천봉용수 만령쟁호(千峰龍秀 萬嶺爭虎)'란 글을 두른 바위가 수문장처럼 우뚝 서 있다. '천개의 봉우리는 빼어남을 자랑하는 용과 같고 만개의 계곡은 호랑이들이 서로 다투는 듯하다'는 뜻이란다.

 

암자는 예부터 구참스님들의 수행처로 사용됐다. 암자는 도선국사와 초의선사는 물론 장좌불와(長坐不臥)와 하루 한 끼 식사 등 목숨을 건 수행과 무소유를 실천한 청화(靑華) 스님이 3년간 묵언수행한 곳으로 유명하다. 또 청화스님의 제자인 대원스님이 범종스님에 앞서 이곳에서 4년간 수행했다.

 

도갑사에서 발행한 책자에는 상견성암을 두고 '비경, 그리고 신비, 신선의 자리'라고 쓰여 있다. '하늘이 숨겨 놓은 암자'라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닌 듯싶다. 

/ 스포츠칸 2010.3 윤대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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