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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경주 월성지구-반월성 계림 첨성대 안압지

by 구석구석 2007.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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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문화유산 월성지구

 대릉원 앞은 넓은 잔디위에 왕릉들이 잘 다듬어져 있고 그 뒤로 원시의 숲이 펼쳐져 있다. 반월성과 계림 숲이다. 이곳은 신라를 세우고 다스린 왕들과 신라인들이 잠들어 있는 신성구역이라고 할 수 있다.
계림 숲과 함께 오랜 시간의 흐름을 반추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 반월성이다. 반월성은 반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은 궁성으로 남쪽으로 남천을 끼고 쌓아올린 성이다. 숲이 무성하여 미국의 센트럴파크를 연상케 하는 자연공원처럼 느껴진다.

계림과 반월성
이곳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자리라고 하며 이 때문인지 신라왕조가 태어나고 멸망할 때까지 천년동안 영고성쇠를 이어간 곳이다. 반월성의 숲을 지나다 보면 석빙고도 만날 수 있다. 반월성의 동쪽으로는 안압지가 있다. 궁의 정원이라 할 수 있는 풍류와 휴식공간이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신라역사의 중심 무대가 된 곳이 신라의 발원지인 계림 숲, 왕들이 살았던 반월성, 그리고 휴식과 놀이 공간인 안압지, 죽은 자들이 묻힌 대릉원 지역으로 하나의 커다란 일체의 공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반월성의 석빙고

 

신라 왕궁 통로 `월정교' 곧 복원

신라 왕궁인 월성을 연결하는 통로였던 경북 경주 월정교(月精橋 사적 제457호)의 기본설계가 마무리돼 연말이나 내년 초 복원공사가 시작될 전망이다. 13일 경주시에 따르면 월정교 복원을 위한 기본설계가 최근 끝나 이달 말 개최되는 문화재위원회에서 기본 모형이 최종 확정된다.

 


이에 따라 경주시는 내달부터 실시설계에 들어가 늦어도 내년 초에는 본격적으로 복원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기본설계에 따르면 월정교는 선형(船形) 교각에다 상판은 목조로 구성되고 다리 양쪽은 누각 형태로 복원될 예정이다. 또 발굴조사에서 기와, 연함이 출토됨에 따라 다리 지붕이 기와로 덮여 비를 맞지 않고 통행이 가능하도록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월정교는 길이 63m, 너비 12m, 높이 5m 규모로 건축비 150억원이 투입돼 2009년까지 복원된다. 통일신라 최전성기인 경덕왕 19년(서기 760년)에 건설된 대규모 다리인 월정교는 왕궁인 월성에서 남단으로 연결하는 통로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충렬왕 6년(1280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월정교 / 경주시청



경주시 관계자는 “기본설계에서 다리 양쪽의 누각이 단층과 2층 두가지 안이 나왔는데 왕궁 통로의 위용, 궁궐 방어기능 등을 감안할 때 문화재위원회에서 2층쪽으로 결론날 것 같다”면서 “기본설계가 마무리됐지만 실시설계와 복원공사 중에도 지속적인 연구와 고증이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7.8

 

반월성의 서쪽 끝 남천가에 자리 잡은 집이 ‘최 부자집’이다. 최 부자집은 조선시대의 유교 유산으로 느껴진다. 바로 옆에 경주 향교가 있어서 이러한 느낌이 더 드는지도 모른다. 이 집은 주인의 이름이나 당호를 따서 부르는 것이 아니고 부자집이 이름이다. 왜 ‘부자집’이 집의 이름이 되었을까?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소위 가진 자의 못 가진 자를 위한 기부라고 할 수 있는 ‘노블리스오블리제’를 실천한 것에 대한 예칭이 아닐까?

경주최부자집/오마이뉴스 정윤섭이곳 최 부자집이 가문을 일으킨 것은 3백여 년에 지나지 않지만 이 부근은 고가들이 즐비해 옛 신라 때부터 귀족과 부호들이 살았던 곳으로 보고 있다. 김유신 장군의 집도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고 한다. 김유신 장군이 말을 타고 다니던 경주, 그리고 최 부자집,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최부자집 마당에 있는 연화문석조/오마이뉴스 정윤섭신라 고도의 전통 탓인지 최 부자집에서는 여느 고가에서는 보기 어려운 유물들이 정원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연꽃무늬의 석조를 비롯하여 민가의 격을 뛰어넘는 유물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 고도 신라의 궁성 곁에 산 덕이라 생각한다.

최 부자집은 여러 가지 트레이드마크를 만들어 놓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경주의 전통술이 된 경주법주다. 경주법주는 숙종 때 궁중에서 음식을 관장하던 최국선이 고향으로 내려와 최 부자집에 전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 부자집 앞에 경주법주를 만드는 고가가 있어 이러한 전통의 맥을 알 수 있다.
 

최부자집옆에 귀신을 �는다는 엄나무가 있다/오마이뉴스 정윤섭

 

최 부자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요석궁’이라는 큰 간판이 들어서 있다. 이 요석궁은 전통한정식을 하는 음식점을 알리는 간판이다. 요석궁은 신라 태종 무열왕 때 과부였던 공주가 살고 있던 궁(宮)의 이름으로 경주부의 향교 남쪽인 지금의 최 부자집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무열왕은 당시 원효가 비범한 사람임을 알고 이 궁으로 데리고 와 원효와 공주의 인연을 맺어 주었는데 이들 사이에 태어난 인물이 설총이다. 설총은 유학을 깊이 연구한 학자로 중국 문자에 토를 다는 방법으로 이두를 집대성하여 우리글을 발전시킨 큰 공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마음을 사로잡은 첨성대 야경 

첨성대로 향하면 주위에는 고분군들이 은은한 조명을 비추며 야경을 밝히고 있다. 첨성대로 가면 낮과는 달리 조명된 느낌은 다소 다르다. 꼭 밤에만 보아야 할 조명시설로 첨성대는 더욱 빛을 발한다.

 

환상적인 야경은 이제 관광명소로 알려진 지 오래인지 연인들과 가족 단위로 함께 하는 이들이 많았다. 동양에서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로 알려진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신라의 과학 기술과 천문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석조물이다.

 

  

성스러운 숲 '계림'이 숲의 경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다 아름답지만 특히 가을에 누렇게 단풍이 들었을 때 더욱 아름답다.

 

 계림(鷄林)은 첨성대(瞻星臺)와 월성(月城) - 또는 신월성(新月城) - 사이에 있는 숲으로서 왕버들,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의 고목(古木)이 울창하게 서 있으며, 신라왕성(新羅王姓)인 김씨(金氏)의 시조(始祖) 김알지(金閼智)의 탄강전설(誕降傳說)과 관계 깊은 숲이다.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숲이다. 원래 신라를 건국할 때부터 있던 숲으로, 시림이라고 하던 것을 알지가 태어난 뒤로 계림이라 하였다.  

 

계림 숲에서는 가을이 아닌 여름에도 잎사귀가 누래 진다는 것이다. 신라 말의 학자 최치원은 신라의 국운(國運)이 이미 끝났음을 알고 고려의 왕건에게 상서(上書)하였다. 그 글 중에 「곡령청송(鵠嶺靑松) 계림황엽(鷄林黃葉)」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것은 곡령 즉 송악의 고려는 청송과 같이 성하고, 계림 즉 신라는 이미 황엽으로 시들었다는 뜻이다. 그 후부터 계림의 숲은 항상 황엽으로 물들었다고 한다.

 

▲계림의 옛이름이 처음을 나타내는 시림(始林)인 것만 봐도 계림이 차지하는 위상을 엿볼 수 있다. 
kr.blog.yahoo.com/jckuean1

 

▲kr.blog.yahoo.com/okchan515

 

▲오릉과 숲 kr.blog.yahoo.com/okchan515

 

▲kr.blog.yahoo.com/okchan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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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blog.yahoo.com/okchan515 임해전의 정원연못 '안압지'주위에는 높고 낮은 산을 만들고 못 안에는 세 개의 섬을 꾸몄는데, 물위에는 언제나 부평초가 떠있어 바람이 불면 풀무더기들이 구름처럼 떠다니기에 그 정경을 가리켜 "압지부평"이라 한 것이다. 단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연꽃은 대게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활짝 피어있기 때문에 시간을 맞춰가지 않으면 아름다움을 연꽃들을 볼 수가 없다.  

▲안압지 연꽃

 

연못. 논 등에 나는 마름이라는 다년생 풀이 있다. 뿌리는 진흙속에 박는데 뿌리 속에 하얀 육질부(肉質部)가 있어 아이들이 즐겨 먹고, 열매를 가루로 만들어 다식(茶食)을 만들거나 죽을 쑤어 먹기도 한다. 이상한 것은 이 안압지에 있는 마름만은 뿌리를 땅에 내리지 않고 물 속에 떠 있다는 것이다.

 

▲안압지 kr.blog.yahoo.com/ahrdls03070

 

사적 제18호인 안압지는 임해전(雁鴨池)지라고도 하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이 많이 나타나는데 군신(君臣)이 모여 잔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연꽃단지 kr.blog.yahoo.com/hl5jlb

 

▲개량 코스모스단지 kr.blog.yahoo.com/hl5jlb 문무왕 14년(674) 기록에 보면 "궁내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고 화초와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 하였고 문무왕 19년(679) 기록에 "동궁을 창건하였다"고 하였다. 경순왕 5년(931)에는 고려 태조를 위해 잔치를 베푸는 곳도 바로 임해전이다.

 

▲안압지 유입부

 

▲안압지모형 kr.blog.yahoo.com/ahrdls03070

 

안압지 서쪽의 건물지는 신라 동궁의 건물터임이 발굴조사 결과 밝혀졌고, 안압지와 동궁지의 발굴조사는 1973년부터 1975년까지 3년에 걸쳐서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하였다.

 

▲kr.blog.yahoo.com/ssahn2003

 

그 결과 안압지의 모습이 거의 확인되었고, 각종 와전류와 신라의 생활용기, 불상, 건축부재, 목선, 산양, 사슴, 말, 돼지 등의 동물 뼈 등이 출토되었다. 예전에는 중간에 일제시대에 세운 호림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현재는 황성공원으로 옮겨져 활궁터로 활용되고 있다.

 

 

 

안압지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 붙여진 이름으로 원래 이름은 월지(달못)이다. 임해전은 동궁속에 있는 건물이며 잔치하는 건물로 추정된다.

 

▲kr.blog.yahoo.com/ssahn2003

 

▲kr.blog.yahoo.com/ksy12282002

 

안압지 최고의 볼거리 '주말 상설 공연'

이곳에서는 매주 특색있는 테마의 야외 공연으로 주말 나들이 족들을 유혹하고 있다.

안압지에서는 매주 토요일 저녁 7시부터 다양한 테마를 가진 야외 공연을 선보이게 되는데 안압지의 커다란 잔디밭에 야외무대가 오전부터 준비되어 진다.

오후 시간에 들어서면 1000석의 플라스틱 의자가 잔디밭에 줄을 맞추어 준비되어 있는데, 이곳이 채워질까 하는 의심도 잠시, 공연시간이 되면 언제인지도 모르게 준비된 1000석의 좌석은 가득 메워져 있다.

 

▲kr.blog.yahoo.com/ksy12282002

 

오후 5시경엔 가수들이 공연 전에 미리 와서 리허설을 하게 되는데 일명 '직찍'을 좋아하는 요즘 세대들에겐 리허설 또한 하나의 흥밋거리로 여겨진다.

저녁 7시가 되면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는데 인상적인 것 중에 하나는 공연 시작 전 공연프로그램의 소개를 한국어를 포함한 일본어, 중국어, 영어 4개국어로 통역을 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러할 것이 사실 공연을 관람하는 관광객 중에는 외국인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는 날씨관계로 폐지되었다가 봄철에 다시 열린다.

 

▲kr.blog.yahoo.com/ksy12282002

 

▲kr.blog.yahoo.com/ksy12282002

 

  

 자료 - 오마이뉴스 정윤섭 / 신라문화원

 

 

신라 궁중 연못 안압지 물 맑아졌다

 

 

매년 갈수기나 가뭄 때 수량 부족으로 수질이 악화돼 녹조현상을 보였던 통일신라시대 궁중 연못인 경북 경주 안압지(사적 제18호)가 맑아졌다.

경주시에 따르면 안압지의 수질 개선을 위해 물빼기 작업을 시작해 2주 동안 2만8천t을 배수하고 바닥의 각종 쓰레기 등 8t의 퇴적물을 수거했다.

이어 바닥을 드러낸 안압지를 10일 정도 건조시킨 뒤 최근 설치한 양수장에서 모두 2만8천t의 물을 다시 공급해 안압지가 맑은 연못으로 다시 태어났다.

안압지에는 그동안 주변 수로를 통해 물이 공급됐으나 수량 부족으로 수질악화가 매년 되풀이 되자 경주시는 안정적으로 물을 채우기 위해 올해 상반기 1억원을 들여 남천에 집수정과 펌프 등을 갖춘 양수장을 설치했다.

양수장에서는 앞으로 매일 1천400t의 물을 안압지에 보내게 된다.

안압지는 삼국통일 직후인 문무왕 14년(674년)에 조성된 신라시대 연못으로 동서 길이 200m, 남북 180m, 총 둘레 1천m 규모로 평소 수심 2m에 저수량이 3만t에 이른다.

경주시 관계자는 “안압지의 녹조방지를 위해 미생물 발효법, 수생식물 식재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으나 효과가 적어 이번에 대대적인 청소를 했다”면서 “양수장에서 물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게 돼 앞으로는 맑은 안압지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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