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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추천 테마여행

전통시장 장터

by 구석구석 2022.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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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찾아가던 시골 장터의 모습을 우리는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장터 한 모퉁이에 매여 있던 황소의 커다란 눈망울, 끝도 없이 이어지던 흥정의 목소리, 그리고 장터 바닥에 아무렇게나 쪼그리고 앉아 단숨에 비워내던 한 사발의 장터국밥까지…,

장터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이었다. 따라서 장날은 자연스레 인근 마을 사람들의 축제날이 되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장터에 나가게 되고, 장터에서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과 어울려 막걸리 사발을 기울였다. 장날을 통해서 혼사가 이뤄지고, 또 장터에서 모의가 이뤄지고, 사건들이 일어났다. 일제 강점기 때는 일제에 대항해서 독립만세를 부른 군중집회의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옛말에 "이웃집 영감이 나락섬 지고 장에 가면 거름더미라도 지고 장에 가고 싶어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장(場)은 오랜 옛날부터 우리네 삶에 있어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네 전통적인 삶의 양식과 5일마다 열리는 닷새장은 어울림 자체가 민중적이듯 그 역사 또한 매우 깊다. 기록에 의하면 490년(신라 소지왕 12년)에 처음 개설된 경사시(京師市)를 장터의 효시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조선 시대에 이르러 경시(京市)와 향시(鄕市)로 구분이 되면서 형태를 갖춘 본격적인 장터가 형성 되었다고 하는 주장이 다소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해 주듯이 1808년(조선 순조 8년)에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이라는 책에는 당시 전국에 있던 향시의 숫자를 "경기도 102개소, 충청도 157개소, 강원도 68개소, 황해도 82개소, 전라도 214개소, 경상도 276개소, 평안도 134개소, 함경도 28개소"라고 기록해 놓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볼 때 비교적 농산물의 생산량이 많은 전라도와 경상도 지방에서 활발한 시장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편, 5일장은 읍내를 중심으로 하는 30리(약 12km) 이내에 읍장(邑場)이 1일과 6일에 서고, 이로부터 다시 30리 떨어진 곳에 3일과 8일장, 그리고 2일과 7일장, 4일과 9일장이 섰으며, 읍내에서 가장 먼 곳에서는 5일과 10일에 장이 섰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장날 만큼은 변하지 않고 잘 지켜졌으며, 큰 달의 마지막날, 즉 31일은 '무싯날' 또는 '무쇠날'이라 하여 장이 서지 않았다. 이 날이 장꾼들의 유일한 휴일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5일장은 곡물전을 비롯해서 가축전, 채소전, 어물전, 건어물전, 옹기전, 옷전, 과일전, 잡화전 등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다. 지방에 따라, 또는 장이 서는 시기에 따라 다소 그 규모는 차이가 나지만, 내륙 지방의 장터는 대체적으로 어물전이 붐비고, 바닷가에서 가까운 장터일수록 곡물전과 채소전이 성시를 이룬다. 그런가 하면 각 장터마다의 독특한 특산물이 한 두개씩은 꼭 있어서, 그 특산물을 사기 위해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면, 경기도의 강화장은 인삼과 화문석이 유명하고, 강원도의 정선장은 토종꿀과 칠보석이 유명하며, 전라남도의 영암장은 참빗이 유명하다. 그리고 경상남도의 밀양장은 깻잎과 도자기가 유명하고, 충청북도의 괴산장은 고추와 버섯이 유명하며, 전라북도의 무풍장은 호두와 고랭지 채소의 명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울러 이 같은 특산물 중에는 영암의 참빗이나 밀양의 도자기처럼 일년 내내 제작이 가능한 것도 있지만, 무풍의 호두라든가 괴산의 고추처럼 출하되는 시기를 맞추지 않으면 구경조차 못하는 것도 있다.

어김없이 닷새마다 찾아오는 장날에는 그 지방 고유의 특산물 외에 떡장수, 술장수, 엿장수 등 먹거리를 파는 장사꾼들이 많이 나왔다. 그리고 이제는 그 모습을 찾아보기조차 어렵게 되어 버렸지만 장터에는 사람들의 흥을 돋우는 연희패들이 있었다. 이 떠돌이 연희패들이 장터에서 부르던 노래가 바로 장타령이다. 특히 장이 크게 열리던 곳에서는 장꾼들이 연희패들을 동원하여 장터를 더욱 흥청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뭔가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을 장터로 많이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재래식 5일장은 조선 시대 때 활발한 행상활동을 벌였던 보부상(褓負商)과 깊은 관련이 있다. 보부상이란 보상과 부상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보상 (봇짐장수)은 상품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니거나 등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장사를 했고, 때문에 속칭 '봇짐 장수'라고 불렀다. 이에 반하여 부상(등짐장수)은 상품을 지게에 지고 다니면서 장사를 했다.

보부상은 주로 장터를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지방의 크고 작은 장터는 모두 이들 보부상에 의해 유지되었다. 그러기에 보부상은 하루만에 왕복할 수 있는 거리를 기준으로 형성되어 잇는 향시망(鄕市網)을 오가며 물건들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아울러 이들은 서로 단결력을 강화하고 스스로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장문법(杖問法)이라 불리는 자치규율법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위반 했을 때는 제명처분을 비롯한 각종 엄중한 처벌이 내려졌으며, 일단 제명된 사람은 다시 보부상으로 활동할 수 없도록 추방을 시키기도 했다. 장문법에 의한 대표적인 벌목에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은 자 매 50대, 말을 공손히 하지 않은 자 매 50대, 환자를 돌보지 않은 자 매 25대, 매점매석 등과 같은 상행위 문란자 매 30대, 어른을 능멸한 자 매 25대, 그리고 사람이 죽었는데 문상을 하지 않은 자 매 25대와 벌전 5전 등이 있었다.

그러나 혹독할 정도로 엄격한 장문법과 함께 전국을 무대로 폭넓은 활동을 펼치던 보부상 조직도 1910년대에 이르러 일본 관청에 의해 강제로 장터에서 축출되면서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가 끝나면서 잠시 보부상 조직이 재건되는 듯 했으나, 곧이어 6.25전쟁이 발발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곳곳에 상설시장이 들어서게 되면서 설 곳을 잃은 보부상들은 결국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그후 세월이 흐르면서 교통이 발달하고, 전국의 주요 도시에 대형 쇼핑센터들이 들어서면서 보부상들의 활동무대였던 5일 장터 역시 하나 둘 폐쇄되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재래식 5일 장터는 대략 400여 군데. 그 중에서도 전남 강진장(4일·9일장), 전북 순창장(1일·6일장), 전남 보성장(2일·7일장),경남 창녕장(3일·8일장),경북 예천장(2일·7일장), 충북 진천장(5일·10일장) 등을 비롯한 50여 군데의 장터는 비교적 재래식 장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데다 지금도 장날이면 주변의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꽤 성시를 이룬다.

와우트래블 송일봉의평범한여행

 

경기도 양주 가래비장(매 4일, 9일)

양주에서 가장 오래된 장이다. 1940년대 지금의 광적호관 옆 공터로 이전했으며, 경기도 일원에서는 손꼽히는 장마당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 400마리 이상 거래되는 전문 우시장이었다. 인근 도락산과 불곡산, 호명산에서 시골 아낙네들이 채취하는 산나물과 자연산 버섯, 채소, 참빗 등과 무쇠솥, 강아지 거위, 오리, 토끼 등 동물까지 살 수 있다. 특히 타 지역에서는 보기드문 싸리비와 지게소쿠리, 삼태기, 광주리 등도 종종 눈에 띈다.

 

산청 덕산 장날(4·9일)

덕산장이 서는 날은 기억하기 참 쉽다. 4·9일 서는 5일장이니까.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 자리한 덕산시장(덕산공설시장)은 그야말로 지리산에서 나는 산나물과 약초가 5일마다 이곳에 총집결한다. 당연히 외지 관광객을 비롯 중간 상인들이 4일과 9일만 되면 군침을 흘리게 마련. 지난 9일 덕산 5일장에서 만난 심막달(70·삼장면 덕교리) 할머니는 이곳의 터줏대감인 양 노점 한복판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고사리, 영지버섯, 우산나물, 둥굴레, 다래순, 더덕, 느릅나무, 해동피, 구지뽕’ 등등 지리산에서 채취한 갖가지 나물과 약초에 신기한 듯 눈이 휘둥레진다. 국민 건강을 책임질 보약이 이곳에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덕산시장(1958년 개설)은 48년의 역사를 지녔다. 지난 98년 재건축하면서 현대화를 기해 상인 점포 52곳과 40여명의 노점상들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 방문객이 하루 300여명으로 그리 많지 않은 아담한 장터지만 산나물(5월)과 송이(9월), 곶감(12월과 1·2월) 철에는 외지 관광객이 입소문 타고 몰려든다고 한다.

 

조선시대 전국 5대 시장의 하나였던 김천 재래시장

 1949년 시로 승격된 김천은 재래시장 역사 또한 깊다. 5일과 10일 매월 여섯 번 서는 장날이면 전국 각처에서 장사꾼들이 모여들고 시골사람들까지 특별한 볼일이 없어도 구경 삼아 장에 나와 장날이면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김천의 장은 감호시장을 중심으로 1880년대부터 1930년까지 50년간이 특히 전성기였다. 김천장이 특히 유명했던 것은 우시장이 있었기 때문으로 감천 백사장에 말뚝만 박아놓은 우시장엔 길이 잘든 소, 송아지를 잘 낳는 소들이 수백 마리 나왔다. 소는 농사 일 외에도 농사 밑천을 마련해주는 돈줄 역할을 해서 어느 농가 없이 소 한 마리 없는 농가가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우시장은 잘될 수 밖에 없었다. 돈이 급하면 한 가족처럼 여기던 소를 낮추었다.

감호시장은 김천의 대표적인 시장으로 농사지은 농산물을 다른 필요로 하는 물품과 교환하기 위해 별다른 시설 없이 감호동의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날짜에 모여 물품을 교환한 1870년대 장시(향시)에서 시작했다.
188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가 전성기였는데 내륙지방임에도 수산물이 많이 거래됐으며 축산물 특히 소가 많이 거래됐는데 소가죽은 전국 최대였다고 한다.

1922년 감천제방이 쌓아지기 전까지 시장 대부분은 백사장이었고 경부선 철교 부근은 삼각주를 이루어 높은 지대가 형성돼 이곳을 ‘용우머리’라 일컬었으며 김천시장의 중심지였다.

1928년 조선 전국 5대 시장 거래규모가 대구서문시장이 295만5천원으로 가장 많고 평양이 150만원으로 그 다음 많으며 김천은 130만원으로 세 번째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다음이 개성 115만원, 강경 95만원이었다고 하니 더 말해 뭣하랴.



소싸움 축제, 청도반시 시장

청도시장은 15C~16C중엽에 개시되어 유천시장과 마금시장 등으로 형성되다가 교통의 요충지인 청도천변의 주구산 앞에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대구, 밀양, 부산의 대도시 상권에 흡수되어 차츰 쇠퇴의 기로에 직면하고 있는 실정이고 농협의 연쇄점, 대형 슈퍼마켓 등에 상권을 빼앗겨 농산물과 특산물, 잡화 등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현재는189개정도의 점포가 있고 4, 9, 14…날에 장이 선다고 한다. 청도군내에도 청도시장을 비롯하여 유호시장, 화양시장, 풍각시장, 이서시장, 동곡시장, 온막시장 등이 있지만 지금은 겨우 몇 개만 시장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화순읍 5일장

"광주ㆍ장흥ㆍ보성서도 장보러 온답니다"
가족적 분위기 '情넘치는 장터'

화순읍장은 상인들의 끈끈한 동료애를 자랑한다. 장날이면 인근주민들은 여느 장터처럼 단골집에 모여 그동안 안부를 묻고 옛 추억을 나눈다. 장을 중심으로 생활이 이뤄진다.

화순읍장은 정이 넘치는 장으로도 유명하다. 물건 포장재가 시골스러울 뿐 백화점이나 마트보다 훨씬 많은 양을 담아주는 상인의 손길에 넉넉함이 느껴진다. 화순읍 5일 시장은 점포 97개가 조성돼 있고 시장 내 노점상을 포함, 340여 명의 상인들이 종사하고 있다.

광주 도심에서 가까운데다 값싸고 품질 좋은 싱싱한 농산물이 풍부해 광주 시민들로 늘 북새통을 이룬다. 쌀, 찹쌀, 콩 등 곡류와 시금치, 미나리 등 채소류 및 생필품이 많다. 장터 중간 중간마다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온갖 생필품을 파는 '만물상회'들이 진을 치고 있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채소전, 생활ㆍ잡화전, 어물전, 미곡전 등이 차례로 들어서 있다.

채소전과 생활ㆍ잡화전은 장옥이 비교적 현대화 됐지만 미곡전은 나무 기둥에 슬레이트 지붕으로 이뤄져 마치 오래된 영화 세트장을 연상케 했다. 비올 때를 대비해 지난해 실시한 바닥 공사와는 어색한 조화를 이뤘다.

 전남일보 나이수기자

 

발안장(민속5일장)

생태·환경·관광 테마형 장터 계획
왁자지껄 나들이…발걸음 가득 기대

수원에서 43번 국도를 타고 봉담, 발안IC쪽으로 가다보면 향남신도시가 들어서는 발안사거리에 이른다. 이곳에서 발안초등학교와 화성중앙병원을 등지고 우회전해 들어가면 예스러운 시골장터의 모습을 간직한 5일장을 만나게 된다. 끝자리 5와 0인 날이면 어김없이 서는 '발안 민속5일장'이다.

발안 민속5일장 구역은 10여년 전부터 노점상인들이 ‘민속시장 상인회’를 조직해 자율적인 운영을 하고 있는데, 저마다 고정좌판이 정해진 듯 새벽부터 자리다툼을 벌이는 꼴불견은 찾아볼 수 없다.

발안시장은 발안천, 제암리 3·1운동 유적지와 연계한 생태·환경·관광 테마형 장터로의 변화를 계획하고 있어 외지인의 유입이 기대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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