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경상북도

안동 태장리 천등산 봉정사 학봉종택 개목사

by 구석구석 2022. 9. 12.
728x90

봉정사는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901 천등산(天燈山: 575m) 남쪽에 있다. 서후면은 동쪽으로는 송야천을 경계로 안동 시내와 구별되고, 서북쪽으로는 있는 학가산을 경계로 예천군과 나누어진다. 태장리는 태무지의 한자식 표현으로 고려 공민왕 때 왕실에서 이곳에 태를 묻으면서 그런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길을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 명옥대(鳴玉臺)라는 정자가 하나 나온다. 명옥대란 물이 옥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누대라는 뜻이다. 이곳에서는 천등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작은 줄기를 이뤄 흐르다가 바위 아래로 작은 폭포를 이루며 떨어진다. 이 폭포 옆 평탄한 공간에 사방이 탁 트인 누각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이것이 명옥대이다.

명옥대는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16세 때 이곳 봉정사를 찾아 공부하며 놀던 곳이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낙수대(落水臺)였다. 퇴계 선생은 50년이 지난 1665년(현종 6) 이곳을 다시 찾아 그 이름을 명옥대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명옥대란 이름은 육사형(陸士衡)이 쓴 "폭포수 튀는 물이 옥구슬 소리 같다(飛泉漱鳴玉)"라는 시 구절(句節)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정자 안에 있는 현판뿐만 아니라 <退溪先生文集>4권 시 '명옥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안동지방에서는 제일 큰 절이라는 봉정사는 고요가 감돌고 있었다. 먼저 단청이 되어 있지 않아 고풍스러움과 소박한 정감을 주는 만세루를 살펴보았다. 절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만세루는 건축양식이 특이하여 앞쪽에서 바라볼 때는 2층이었으나 뒤쪽에서는 단층이었다.

만세루와 노송

2층 누각은 단청이 되어 있지 않은 고색창연한 모습이어서 정다운 정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올라가는 길 왼편에는 세월의 무게를 지탱하기 힘들어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듯한 노송 한그루가 2층 누각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었다.

안동지방에서는 제일 큰 절이라는 봉정사는 고요가 감돌고 있었다. 먼저 단청이 되어 있지 않아 고풍스러움과 소박한 정감을 주는 만세루를 살펴보았다. 절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만세루는 건축양식이 특이하여 앞쪽에서 바라볼 때는 2층이었으나 뒤쪽에서는 단층이었다.

728x90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어디선가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와 독경소리가 조용조용 울려 퍼진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따라가 보니 마당에 3층 석탑이 세워져 있는 극락전 안이었다. 신라시대의 건축물인 극락전은 국보 15호로 지정된 문화재이고, 3층 석탑은 고려시대에 세워진 탑이었다.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대덕이 창건하였다. 지금은 천등산이라 불리는 원래의 산 이름은 대망산이라 했는데 능인 대사가 젊었을 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어여쁜 여인이 수행을 방해하고자 유혹을 하였으나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여인이 바로 선녀였다. 선녀는 능인대덕의 수행에 감복하여 굴 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그래서  굴 이름을 천등굴이라 불렀고 산 이름도 천등산이라고 바꿔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능인대사가 종이로 학을 접어서 도력으로 날렸다. 그리고 그 종이학이 떨어진 곳에 절을 지으라고 했는데 봉정사가 세워진 전설이다. 절 이름은 대사가 날린 종이학을 봉황에 비유하여 봉황이 내려앉았다는 뜻으로 봉정사라 했다는 것이다.

봉정사는 오랜 역사를 지켜오면서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는데 현재 국보 제15호인 극락전을 비롯하여 보물 55호인 대웅전, 화엄강당은 보물 제448호, 고금당은 보물 제449호, 그리고 극락전 앞의 삼층석탑은 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산암가는 길

영산암가는 길

정적에 싸여 있는 경내를 돌아보고 고금당 앞마당에 서니 오른 쪽 언덕 위에도 몇 채의 건물이 바라보인다. 영산암이었다. 언덕 위에 따로 떨어져 있는 영산암은 암자라기보다는 부잣집 안채처럼 아늑한 분위기였다.

“이 봉정사와 영산암에서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라는 영화를 촬영했지요, 분위기나 풍경이 남달라서 그랬을 것입니다.” “전에 영국여왕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도 이곳에 들렸다고 하던데.”
사찰을 모두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는 가을햇살이 따스하다. 영화촬영도 영국여왕의 방문도 결코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봉정사에는 영산암외에 지조암(知照菴)이라는 부속 암자가 하나 더 있다. 왼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지조암으로 향한다. 지조(知照), 비춤을 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를 비추어 본질을 깨달을 줄 안다는 뜻이 된다. 상당히 선불교적인 암자의 명칭이다. 그래서인지 지조암은 스님들의 선방으로 쓰인다고 한다.

지조암

지조암에 오르는 왼쪽으로 연지가 있다. 이곳의 연뿌리는 가까운 서후면 성곡리의 '장태사묘'(張太師廟)에서 얻어왔다고 한다.

지조암에 이르니 단청도 없는 거무스레한 기와집이 나타난다. 대문 오른쪽으로 불도화가 만발하였고, 대문 위에 가로로 지조암(知照庵)이라고 썼다. 옛날에는 암자를 암자암(菴)으로 썼는데 최근에는 집암(庵)자를 쓰는 것 같다. 

법당 벽에 '안동부 서쪽에 있는 천등산 봉정사 지조암 중창기'라 쓰인 현판이 보인다. 이 현판은 1895년(光緖 21) 4월에 금해스님이 쓰고 1907년 손자에 해당하는 계언스님이 글씨를 새겼다. 이 건물을 지나 오른쪽으로 가니 선방이 있다. 문 앞에는 관음전이라고 새긴 현판과 주련 4개가 세워져 있다. 선방 뒤로는 칠성각이 있고 그 옆에는 초록색 잎이 싱싱한 배롱나무가 서 있다.    

 

봉정사 산사체험 054-853-4181

매주 둘째주 토요일(1박2일), 비정기적으로도 수시운영  

봉정사는‘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동승’을 비롯하여 여러 편의 영화를 촬영하였다. 영화의 배경이 될 정도로 아름다운 봉정사는 이번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참가자들에게만은 산문을 활짝 열어놓을 계획이다.

새벽예불과 108배, 영산암에서의 참선, 저녁예불과 다도 그리고 창건과 관계가 깊은 ‘천등굴’ 산행 등 알찬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으며, 개인과 가족단위, 소규모의 직장이나 단체에 사찰체험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방학중에는 소규모 인원의 수련회도 열리고 있다.

 

서후면 태장리 888번지 개목사 054-841-6304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절집 건축물이 있는 안동 봉정사에서 30분정도 산길을 올라가면 있다. 통일신라 초기에 의상대사가 천등산 중턱에 세운 절로 원래는 흥국사라 하였다.

의상대사가 신통한 묘술로 하루에 1시간씩 99일 동안 99칸의 거대한 절을 지었는데, 그 후 이 절은 부처의 영험이 많이 나타나 많은 불도들이 찾아와 기도하고, 소원을 성취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현재는 보물 242호로 지정된 원통전만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개목사 원통전은 조선 세조 3년에 건립되었다 한다. 측면에서 볼 때 전면으로 퇴간을 달아 맞배지붕의 박공면이 전면으로 길게 나와 있다. 공포는 전, 후면이 다른 수법으로 되었는데 전면은 출목없이 익공형으로 조각되었고 후면은 1출목을 두어 외목도리를 받게 하였다. 내부는 연등천장으로 상부가 노출되었으며, 초각한 파련대공과 솟을 대공을 두어 종도리를 받게 하였다. 솟을대공 수법 역시 고식의 하나로 되어있다.

 

■학봉종택, 집과 뜰에 벤 기품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봉정사로 가다 보면 서후면사무소에 닿기 전 도로변 야트막한 야산 아래 의성 김씨 학봉종택이 자리 잡고 있다. 고택이 많은 안동이지만 학봉종택은 규모도 크고 안내판도 잘 돼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학봉 김성일은 퇴계 이황의 직계 제자로 그의 학통을 이었고 임진왜란 때는 진주성 전투에서 초개같이 목숨을 던진 기개로 명성이 드높기 때문이다. 

학봉선생구택이라는 현판이 걸린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잔디가 단정한 마당과 학봉 선생의 시호를 딴 문충고가, 풍뢰헌과 고택스테이를 하는 안채 등이 보인다. 마당 오른쪽 나무 뒤에는 순하게 생긴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든다. ‘온순하나 개인지라 놀라거나 하면 물 수 있습니다’라며 객의 주의를 당부한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사당으로 들어서는 문 옆 담장에는 예전 양반집에만 심었다는 능소화가 딱 있을 곳에 피어 있다는 느낌이다. 종손이자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원장인 김종길 선생이 손님을 맞는다. 애써 열쇠를 챙겨와 학봉 선생의 친필 원고와 전적, 고문서 등 지정문화재 보물이 소장된 운장각으로 안내한다. 고가 바깥의 학봉기념관에는 학봉 선생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전시물과 함께 운장각 보관 문화재의 복제품을 전시한다. 학봉종택에서는 고택체험으로 숙박할 수도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