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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남도

당진 대호지-적서리 오산사 차천로선생

by 구석구석 2014.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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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만 물길이 맞닿은 대호지면 끝자락 조용한 마을 적서리

 

봄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소리와 농번기를 맞아 분주한 손길들이 오가는 논밭 위로 왜가리들이 날으는 풍경이 ‘강촌별곡’의 그곳과 참 많이 닮았다. 조선 당대 문인이자 가사문학의 대가였던 차천로 선생의 영당이 모셔진 곳이어서일까. 아늑하고 평화로운 마을 분위기가 시조 한 자락의 풍경 그대로다.


차천로 선생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강촌별곡’을 지은 인물로 가사문학의 대가로 칭송되고 있다. 강촌별곡은 벼슬을 피해 경치 좋은 시골의 자연에 묻혀서 한가히 생활하는 정경을 그린 작품이다. 차 선생이 광해군 당시 모해를 입고 금강 하류에서 피난시절을 보냈던 당시 쓰인 이 작품은 정철의 ‘사미인곡’과 함께 가사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임진왜란 시기에 이름을 날린 무관으로 이순신 장군을 꼽는다면 문관에는 차천로 선생이 꼽힐 만큼 뛰어난 문필이었다고 한다. 청나라 사신의 요청으로 하룻밤 사이에 술 수십잔을 통음한 후 오언 율시 일백수를 내리 지어 불렀고 이를 한석봉이 받아썼다는 등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그의 문필 실력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오산사와 문학비

차천로 선생의 영정이 모셔진 오산사는 정조 14년(1790년)에 위패를 모신 사당이었던 것을 고종 30년에 선생의 13대손 차영열이 영정을 봉안하고 문안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마을버스 종점 인근에는 차 선생의 문학비가 있다. 외교문서를 전담했던 ‘동방문사’였고 가사문학의 대가로 불릴 만큼 뛰어난 문장가였던 선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마련한 것이다.

적서리에는 차천로 선생의 후손들 130여명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차 선생이 태어난 날이기도 한 정월 대보름에는 후손들과 지역 유림들이 모여 차 선생의 탄신제를 지내며 업적과 뜻을 기리고 있으며 고향이 개성임에도 불구하고 영당이 적서리에 마련된 것은 그의 후손인 차건의 선조가 적서리로 낙향하면서 사당이 만들어졌고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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