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충청남도

당진 우강-강문리

by 구석구석 2014. 3. 21.
728x90

내포문화권 조세양곡의 집적지

지금으로부터 600여년전 우강에는 서산, 태안, 면천, 예산 등지에서 올라온 군·현세미들이 줄을 이었다. 충청도 일대에서 거둬 드린 조세양곡은 북창과 남창에 보관되었다가 지금의 남원천을 비롯한 개천을 이용, 배로 범근내포 조창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범근내포 조창(현 우강면 강문리에 위치)에서 모아진 곡식들은 다시 배에 실려져 바닷길을 통해 한양으로 보내졌다. 조창은 조세로 받은 곡식의 운반을 위해 배가 다니던 바다나 강가에 두었던 창고시설로 옛 군현에서는 공세곡을 징수해 읍 근처에 있는 읍창에 일단 수납하고 이를 국도인 서울 마포항으로 수송했다. 이들 조창은 포구로서의 기능은 물론 연안 항로의 정박지 또는 기착지로서 해상교통에서 큰 몫을 차지했다.

 

끝없이 펼쳐진 우강평야 한가운데 서서 충청도 일대에서 거둬들인 쌀가마니들의 행렬을 상상해 본다. 쌀가마니 행렬이 들판에 가득 찬 모만큼이나 끝없었을까.

 

옛 문헌에 따르면 성종 9년에 바닷물이 얕아져 배 밑이 땅에 닿아 아산 공제곶창으로 조운포를 옮기기 전까지 충청도에서는 범근내포 조창이 가장 큰 조창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세월에 묻혀 창터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 졌다. 새의 부리를 닮았다하여 부리포라 불렸다는 현재의 강문리는 옛 바다와 포구가 모두 논으로 바뀌어 평야를 이루고 있다.

 

남창터도 마찬가지다. 우강면사무소에서 부리포 쪽으로 100여m 가면 창리 노인정이 있고 그 뒤에 남창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단지 우강면 창리 한완석씨 집 뒤쪽 야산에 오래된 팽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이 팽나무가 옛날 배의 닻줄을 매두던 곳이라는 것만이 전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인근에 옛 면장의 산소 앞 경사진 곳 주위를 남창터라 추정할 뿐이다.

 

옛 바다와 포구, 충청일대에서 거둬들인 곡식들이 모여들었던 조창은 사라지고 이제 그곳에는 끝없이 펼쳐진 우강평야가 조용히 들어 앉았다. 자료 : 당진시대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