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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드라이브 뚜벅이

1박2일로 연말에 가보는 자유로 드라이브

by 구석구석 2009.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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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임진강, 통일 조국을 꿈꾸며 달리는 드라이브 여행

 

 

행주산성~심학산~오두산 통일전망대~임진각관광지~화석정~황포돛배~경순왕릉

 

올 연말에는 경기도 고양에서 파주까지 이어진 ‘자유로’를 따라 달리며 민족 통일과 안보의 중요성을 새겨보자.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마지막 날, 한강 하구의 심학산에서는 해넘이 축제, 임진각관광지에서는 제야의 밤 행사 등이 펼쳐진다. 따라서 1박2일 여정이 적당하다.

첫날은 한강변의 자유로를 따라 달리면서 시작한다. 서울의 강변북로를 벗어나면 방화대교 너머로 나지막한 덕양산이 손짓한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행주대첩을 치른 그 유명한 행주산성이다. 산성에는 1~2시간쯤 걸리는 산책 코스가 잘 다듬어져 있다. 점심 무렵에 도착했다면 행주산성 산책에 나서기 전 산성 입구의 식당가에서 허기를 먼저 달래보자. 산성국수를 비롯해 나름대로 손맛을 자랑하는 식당이 많다.

 

행주산성 산책으로 호국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면 이젠 시원스레 뚫린 자유로를 본격적으로 달린다. 자유로의 규정 속도는 90km/h. 시원하게 뻗은 도로를 20분쯤 달리면 오른쪽으로 파주출판단지 이정표가 보이고, 그 뒤로 심학산이 눈길을 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유명 출판사가 모여 있는 출판단지를 한 바퀴 돌아보고, 일몰 시간에 맞춰 심학산에 오른다. 이곳에서는 한강 너머의 김포반도로 지는 해를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사방으로의 조망도 아주 빼어나다.

자유로는 한강과 임진강을 끼고 있어 어디서나 일몰 풍광이 좋은 편이지만 강을 에워싸고 있는 철조망 탓에 일몰 감상지를 찾기가 마땅치 않다. 민간인 통제구역에서 벗어나 있는 심학산은 시간 제약을 받지 않고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인 셈이다. 심학산에서 일몰을 감상하고 내려서면 어느덧 어둑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숙박은 승용차로 10분쯤 거리의 통일동산 주변 숙박단지에서 해결한다.

이튿날은 아침 일찍 통일전망대를 찾는다. 남으로는 전날 지나온 자유로, 북으로는 임진강 너머로 북한의 산하가 펼쳐진다. 꼼꼼히 살펴보면 2시간 정도 걸린다.

이어 다시 자유로를 타고 북으로 달리면서 황희 정승이 말년에 머물던 반구정에 들렀다 나오면 임진각관광지가 지척이다. 임진각관광지만 둘러보는 데도 1시간쯤 걸린다. 민간인 통제구역 안쪽의 제3땅굴, 도라전망대 등을 둘러보려면 임진각관광지에서 ‘DMZ 연계 투어’를 신청해야 한다. 민통선 안쪽 지역이라 개인적으론 출입이 불가능하다.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임진각관광지를 벗어나면 37번 국도를 타고 북으로 달린다. 임진강 언덕에는 율곡 이이의 그림자를 만날 수 있는 화석정이 손짓한다. 승용차로 30분쯤 거리에 자운서원, 그리고 신사임당과 율곡 선생이 묻혀 있는 율곡 유적지가 있다.

장남교 근처의 두지나루에서는 황포돛배를 타보자. 50여 년간 민간인 출입이 불가능했던 임진강의 속살을 감상할 수 있다. 해가 지거나 날이 너무 어두우면 배가 운항하지 않으니 너무 늦지 않도록 한다.

두지나루에서 신라 마지막 왕이 묻힌 경순왕릉까지는 승용차로 20분쯤 걸린다. 이때쯤이면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저물 시간이 된다. 되돌아가는 길에 자유로를 타고 달리며 임진강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 노을을 감상하면 된다.

자유로(自由路). 이름 참 좋다. 제한속도 시속 90km. 그렇지만 그 이상의 속력을 내고 싶은 유혹을 느낄 만큼 도로 상태도 좋다. 수도권 시민들의 으뜸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어찌 이뿐일까. 자유로가 일반의 머릿속에 더욱 각인된 까닭은 남북을 잇는다는 상징성 덕분이다. 도로를 따라 곧장 달리면 임진각, 판문점 거쳐 휴전선을 넘은 뒤 개성, 평양까지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닌가.

아쉽다. 길에서 만나는 한강이며, 임진강은 언제나 철조망 안에 갇혀 있다. 그렇지만 두고 온 고향과 육친 생각이 간절하거나 통일 조국에 대한 열망이 뜨겁거나 북녘의 산하가 궁금한 이들은 길을 찾아 나선다. 그때마다 빠르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유로가 고맙다.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히는 행주대첩의 현장 '행주산성'

 

서울에서 강변북로를 지나 자유로를 타고 한강 하류로 내려가다 보면 고양에 이르러 한강 옆에 살짝 솟아 있는 나지막한 산이 보인다. 바로 덕양산(125m)이다. 높이가 100m 겨우 넘으니 산이라고 부르기에 쑥스러울 정도다. 그렇지만 덕양산에 쌓은 행주산성은 한산대첩, 진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히는 행주대첩의 현장이다.

 

산 정상에 쌓은 행주산성의 길이는 약 1km. 이곳에선 삼국시대 초기의 토기 조각이 출토되어 이미 그때부터 군사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음을 알 수 있다.

1592년(선조 25년) 7월 8일 전라도 금산의 이치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 권율 장군은 12월 수원 독산성에서도 적을 물리치고 한양 수복작전을 개시한다. 장군은 조방장 조경, 승장 처영 등 정병 2300명과 함께 한강을 건너 행주 덕양산에 진을 치고 기회를 노렸다. 그러자 왜군 총수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는 고니시 유키나가, 이시다 미쓰나리, 구로다 나가마사 등 휘하의 장수들을 거느리고 덕양산을 공격했다. 병력은 자그마치 조선군의 10배도 넘는 3만여 명. 그렇지만 조선군은 권율 장군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당시 부녀자들도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만들어 입고 돌을 날라서 공을 세웠는데, 여기에서 ‘행주치마’라는 명칭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이렇듯 자유로~임진강 드라이브 송년 여행은 조국 보위를 위해 선조들이 흘린 피를 생각하는 행주산성 산책으로 시작한다.

행주산성 매표소를 지나면 넓은 터 한쪽에 권율 장군 동상이 우뚝하다. 곧장 뻗은 산책길을 따른다. 길은 순하다. 곳곳에 쉼터를 조성해 놓아 편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350m 정도 걸으면 갈림길. 오른쪽 길로 100m 들어가면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忠莊祠)다. 향불 사르며 권율 장군과 호국 영령에게 묵념을 올린다. 충장사 앞에는 행주대첩의 전적을 기리는 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1845년 세워진 이 비는 행주나루터 안마을의 기공사(紀功祠) 경내에 있던 것이다. 6·25전쟁 당시 소실된 사당을 1970년 행주산성 정화공사 때 이곳을 다시 지으면서 옮겨왔다.

 

 

충장사에서 되돌아 나와 200m 정도 오르면 오른쪽으로 행주대첩기념관이 보인다. 이곳에는 행주대첩 과정을 그린 기록도, 행주대첩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활·총·대포 등의 무기들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돼 있다.

기념관을 나와 다시 주요 산책길을 200m 정도 따르면 정상 바로 아래 언덕에 세워져 있는 덕양정에 닿는다. 발아래로는 한강에 걸린 방화대교가 가깝고, 올려다보면 우뚝한 정상의 행주대첩비가 눈길을 끈다.

행주산성에는 모두 3개의 대첩비가 있다. 올라오는 길에 보았던 충장사 앞의 비는 조선 말기에 세워진 것이고, 정상의 우뚝한 비는 1963년 군사정부 시절 세워진 것이다. 그 바로 아래 비각에 있는 비는 1603년에 건립된 것으로 가장 오래됐다.

행주대첩비 왼쪽에는 영상교육관으로 사용되는 충의정이 자리하고 있다. 행주대첩 전투 과정과 권율 장군의 업적에 대한 13분짜리 영상물을 관람하면 이제는 옛 토성의 흔적을 밟으며 걷는 토성길 산책이다. 이 토성길은 충장사 앞의 메인 산책로 쪽으로 둥글게 이어진다. 행주산성은 토성이다. 따라서 토성에 익숙지 않은 이들은 그 명성을 듣고 돌로 쌓은 거창한 성벽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이내 부드러운 산책길에 적응하게 된다.

덕양산은 한강 하류 평야지대에 솟은 산이라 정상에선 한강 남북의 서울은 물론이요, 고양시 일대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다. 그래서 인근 수도권 주민들의 산책 코스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나무 계단도 갖춰져 있고 산길도 부드럽다. 남쪽 아래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창릉천이 흘러 자연적인 해자 역할을 했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낮고 부드러운 산에서 어떻게 3만 대군을 맞아 싸웠을까.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만약 점심 무렵 행주산성에 도착했다면 먼저 점심을 들자. 그리고 산책 삼아 천천히 산성을 둘러보면 된다. 그게 아니라면 산책을 마친 뒤 늦은 점심이든, 이른 저녁이든 국수 맛을 보자. 일요일 점심 때가 되면 소문이 자자한 행주산성 국수를 먹으러 찾아드는 관광객이 적지 않다.

행주산성 산책은 매표소~충장사~대첩기념관~덕양정~행주대첩비~충의정~토성~매표소 코스를 잇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어른은 1시간, 어린이도 보통 1시간30분에서 2시간 정도면 꼼꼼히 둘러볼 수 있다. 관람시각은 09:00~18:00(동절기 17:00). 항상 1시간 전에는 입장해야 한다. 요금은 성인 1,000원, 청소년 500원, 어린이 300원이다. 주차료는 승용차 2,000원. 문의 031-974-7237

 

 

행주산성 입구 주변에는 마땅한 숙소가 없지만 식당은 많다. 행주산성 근처의 원조국수집(031-972-8688)이 인기 있다. 깔끔하게 우려낸 멸치국물은 집에서 정성스레 맛을 낸 그것과 같다. 비빔국수는 야채와 김가루가 얹혀 나온다. 잔치국수, 비빔국수 모두 3,000원. 이외에도 행주산성 주변에는 해울한정식(031-978-7400), 남원추어탕(031-970-8057), 행주산국수(031-938-8294), 촌가(031-972-6741), 대도식당(031-974-6450) 등 나름대로 맛을 자랑하는 식당이 줄지어 있다.

 

한강 하류 최고의 조망지…심학산

행주산성을 벗어나 자유로를 타고 문산 방면으로 20분쯤 달리다 보면 오른쪽으로 파주출판단지가 보인다. 그 바로 뒤쪽에 솟아 있는 심학산(尋鶴山·193m)은 파주출판단지의 ‘지킴이’다.

심학산은 정상에 세워져 있는 8각 정자의 형태가 또렷이 보일 정도로 낮지만, 고양·파주 주민들은 이 산을 ‘경기5악’의 하나로 자랑할 정도로 사랑한다. ‘경기5악’이란 화악산(1,468m), 운악산(945m), 감악산(675m), 관악산(632m), 송악산(488m)을 일컫는데 송악산은 북한 개성에 있는 산이라 이 고장 사람들은 대신 심학산을 넣은 것이다.

 

 ▲ 파주 심학산에서 바라본 북쪽 조망. 한강과 임진강의 두물머리 너머로 보이는 땅은 북한의 개풍군이다.

이 산의 옛 이름은 수막산(水莫山). 한강 하류 지역은 홍수의 피해가 컸는데, 그때마다 한강 물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산이란 뜻이다. 또 홍수 때마다 물이 깊이 들어차는 바람에 깊을 심(深)자와 큰산 악(岳)자를 써서 심악산(深岳山)이라고도 하였다. 자그마한 산에 붙여준 ‘악’자는 홍수로부터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농토를 지켜준 희생정신에 바친 헌사인 셈이다. 조선 숙종 때 궁궐에서 기르던 학이 날아가자 신하들이 수소문하여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찾았다 해서 그 후로는 ‘찾을 심(尋)’과 ‘학 학(鶴)’을 써서 지금처럼 불리게 되었다 전한다.

고양·파주시의 자유로 주변은 평야지대라 산이 드물고, 또한 나지막한 구릉이 중간 중간 펼쳐져 있다. “산이랄 것도 있나요. 한참 낮은걸요.” 운동 삼아 산책을 나왔다는 중년 남성은 겸손해하면서도 표정만큼은 뭐랄까, 심학산 근처에 사는 자부심이 물씬 풍겼다.

심학산 산행 코스는 여럿이 있지만, 심학초교~약천사~정상을 잇는 코스가 가장 무난하다. 이렇게 하면 약천사라는 절집도 함께 둘러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앞에 있는 약천이라는 약수터에도 들를 수 있다. 그리 좁지 않은 주차장도 갖춰져 있어 여러 모로 편리한 점이 있다.

 

 

심학산 약천사(藥泉寺)는 오래된 절집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법성사(法成寺)란 이름으로 한 대처승에 의해 창건된 자그마한 절집이다. 10여 년 전 허정 스님이 주지로 오면서 약천사로 이름을 바꾸고, 지장보전을 크게 짓는 등 한창 사세를 키우는 중이다.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절 앞에서 끝나고, 왼쪽의 주차장 안쪽으로 절집 이름의 유래가 된 약수터가 보인다. 약수터 주차장에서 능선까지는 200m. 경사도 그리 가파르지 않아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충분히 올라설 수 있다. 능선 갈림길에서 평탄한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600m 정도 걸으면 정상의 전망대가 나온다. 아래서 보기와는 달리 집채만 한 바윗덩이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는 정상은 오밀조밀 정겹다. 정자도 두 개, 의자와 나무 데크도 여럿 있어 안전하게 조망을 즐길 수 있다.

 

노을을 감상하고, 하산하는 길도 20분이면 충분하거니와 길도 험하지 않아 잔영만으로 충분히 안전하게 내려설 수 있다.

한강 너머 김포반도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도 노을이지만, 사실 심학산의 매력은 정상 정자에서의 조망이다. 가장 먼저 눈길을 돌리게 마련인 북으로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교하(交河)가 장하고, 그 너머로는 북녘 산하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이어 동으로는 일산 신도시 너머로 북한산 돌불꽃이 화려하고, 남으로는 서울을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달려온 한강이 유장히 흐른다. 그리고 서로는 한강 너머로 김포반도를 지탱하는 한남정맥의 얄망얄망 나지막한 산봉우리들이 반갑다.

산길 초입에서 만난 중년 사내의 자랑스러운 표정도 아마 이런 보물급 조망에서 비롯됐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가히 큰 산을 뜻하는 악(岳)자를 붙여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산인 것이다.

한편 올해 12월 31일(목) 마지막 날에는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심학산 정상과 초입의 심학초등학교에서 파주시가 주최하고 파주문화원이 주관하는 해넘이 행사가 펼쳐진다. 참고로 12월 1일부터 31일 사이 심학산 일대의 일몰 시각은 오후 5시20분 무렵이다. 주변 조망은 물론 시시각각 바뀌는 노을 풍경을 즐기려면 적어도 오후 5시 무렵에는 정상에 도착하는 게 좋다. 약수터 주차장에서 정상까지는 초등학생도 20~30분 정도면 충분한 거리다. 입장료와 주차료 모두 없다. 파주시청 문화체육과 031-940-4361~4

 

북녘 땅을 떠나온 실향민들의 한숨소리 들릴 듯한 오두산전망대

자유로를 달린다. 시속 90km. 그렇지만 좀 더 높이고 싶은 욕심이 나는 곳. 왼쪽으론 철조망에 갇힌 한강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 철조망 너머의 갈대숲이나 강변은 철새들의 세상이다. 6·25전쟁 후 대부분 민간인 출입통제지역과 비무장지대에 속한 탓에 반세기 동안 팽팽한 긴장감만 가득했고, 인적은 거의 없었다. 그 때문에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철새들의 낙원으로 바뀌었다. 분단의 아픔이 새들의 자유로 승화한 것이다. 아쉽게도 차를 대놓고 강변 구경하기도 마땅치 않다. 이런 안타까움은 임진강 주변을 둘러보는 내내 이어진다.

 

 

▲ 오두산 정상에 세워져 있는 통일전망대. 오두산은 백제의 수도인 위례성을 지키던 전초기지인 오두산성이 있던 곳이다.

 

임진강이 한강에 몸을 섞는 그 자리에 솟은 오두산(烏頭山·119m). 북녘에서 흘러 내려온 임진강이 남한의 수도 서울을 적시고 온 한강을 만나 서해로 빠져 나가는 바로 그 지점, ‘까마귀 머리’란 이름의 산 정상에는 백제 초기에 쌓은 오두산성(사적 제351호)이 있다. 길이는 약 620m.

민통선 안쪽인 데다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둘러볼 수 없지만, 이곳은 문외한이 보더라도 전술적으로 중요한 위치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백제가 주도권 장악을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였던 요충지다.

역사학자들은 광개토왕비와 <삼국사기> 등에 나오는 관미성(각미성)으로 보고 있다. 백제 수도인 위례성을 지키는 전초기지였던 관미성은 396년 병신전쟁에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수군에 함락됨으로써 백제가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런 역사가 더 절실히 다가오는 오두산 전망대. 이곳에 서면 북녘 땅으로는 한강과 임진강 너머로 펼쳐지는 관산반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멀리 개성의 진산인 송악산(松嶽山·489m)도 보인다. 고성능 망원경(500원)으로 보면 마치 이웃 마을처럼 북녘 산하를 살펴볼 수 있다.

 

전망대 광장에선 북녘의 민요와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곳에는 설이나 추석 명절 때마다 실향민들이 고향을 향해 절을 올리는 망배단(望拜壇), 해방 후 소련군정과 공산당에 맞서 싸우다 순국한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1883~1950) 선생 동상 등이 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단순히 전망시설만 갖춰진 곳이 아니다. 전쟁의 공포와 평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통일의 소망을 바라게 되는 학습 장소다. 1층에는 북한 관련 소재로 한 예술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우리의 산수화와 비슷하지만 나름대로의 특징을 지닌 조선화를 비롯해 특이한 골뱅이화 등 북한 미술의 흐름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2층 영상실은 전통춤과 계절춤 등 북녘 생활과 문화에 대한 영상물 상영으로 방문객의 인기를 끌고 있다.

관람시각은 동절기(11~2월) 09:00 ~16:30, 하절기(4~9월) 09:00~17:30, 기타(3월, 10월) 09:00~17:00. 공휴일은 10~30분 연장한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민통선 지역이라 일몰 1시간 전부터는 제약을 받고, 기상 및 여러 상황에 따라 종료 시각이 유동적일 수 있다. 전망대 주차장 무료. 입장료 어른 2,500원, 학생 1,600원, 어린이(유치원) 1,000원. 문의 031-945-3171, www.jmd.co.kr

 

통일전망대 입구의 통일동산 주변에 숙소가 많다. 모티프원(031-949-0901), 그곳애(031-949-9525), 모텔EROS(031-949-3236), 피카소(031-947-5710), 부띠끄엠호텔(031-949-4226), I.M.T호텔(031-949-3952), 호텔위즈(031-949-9046), 스카이호텔(031-949-2949), 듀오텔(031-945-3085), 모텔깐느(031-949-6611) 등이 있다.

자유로 문발나들목에서 500m 떨어진 교하읍 문발리의 민바리매운탕(031-949-8266)은 민물매운탕으로 유명하다. 교하읍 오도리의 착한고기(031-941-3681, www.chakangogi.co.kr)는 얼리지 않은 진짜 생고기만을 고집하는 식당이다.

황희 정승이 말년에 갈매기와 벗하던 반구정

 

오두산 통일전망대까지 왼쪽 어깨 너머로 보이는 물줄기는 한강이었으나 이곳을 지나고부터는 임진강이다. 이 강은 북한의 강원도 법동군 용포리 두류산에서 처음 시작해 휴전선을 가로질러 연천과 파주를 지나 한강에 몸을 섞는다.

임진강 주변은 삼국시대에 국경 분쟁이 잦았던 지역으로서,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는 임진강을 칠중하(七重河)라 하였고, 경기도 연천군에 고구려 칠중현(縣)의 치소인 파주 칠중성(城)이 있었다. 또 남북 분단의 상징이기도 한 임진강은 지난 여름 북한에서의 기습 방류로 민간인이 화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임진각에 다다르기 전 잠시 좌회전이다. 방촌 황희(黃喜·1363~1452) 정승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기러기와 벗하는 정자’라는 뜻을 지닌 반구정(伴鷗亭)은 조선의 대표적인 청백리요, ‘킹메이커’였던 황희 정승이 영의정 자리에서 물러난 뒤 말년을 보낸 곳이다. 임진강 낙하진과 가까이 있어 원래 낙하정(洛河亭)이라 불렸다. 황희 정승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6·25전쟁 당시 모두 불타 버렸고, 1960년대 이후 복원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가장 높은 언덕인 앙지대(仰止臺)는 반구정이 원래 있던 자리다. 1915년 반구정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황희 정승의 덕을 우러르는 마음에서 육각 정자를 짓고 앙지대라 이름 지었다. 나란히 자리한 두 정자 모두 조망이 좋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미수(眉) 허목(許穆·1595~1682)은 3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이곳을 찾아 <반구정기(伴鷗亭記)>를 썼다. 그 글 마지막에 나오는 반구정의 풍광 묘사는 이렇다. “매일 조수가 나가고 뭍이 드러나면 한양 갈매기들이 날아드는데, 주위가 너무도 편편하여 광야도 백사장도 분간할 수 없구나.”

 

▲ 황희 정승이 말년을 보낸 반구정. 임진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세월이 흘렀어도 그 풍광은 여전하다. 정자에 앉으면 갈매기 울음소리도 애잔하다. 임진강 하구로 펼쳐지는 넓은 들녘과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도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정자 바로 너머로는 철조망이 강을 가로막고 초소에서 새어나오는 초병들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임진강 상류 쪽으로는 북으로 이어진 임진강 철교도 가깝다. 분단의 아픔을 어김없이 깨닫게 되는 곳, 500년 뒤 이렇게 바뀔 줄 황희 정승은 미처 모르셨겠지.

이 유적지에는 황희 정승의 영정을 모시고 2월 10일 제향을 올리는 방촌영당, 재실인 경모재 등이 복원되었고 동상 등도 세워져 있다. 황희 선생 유적지는 규모가 크지 않아 20~30분 정도면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입장료 어른 500원, 주차는 무료. 문의 031-954-2170

12월 31일 ‘통일염원 제야행사’가 열리는 임진각관광지

임진각관광지는 동족상잔의 6·25전쟁과 그 이후의 남북한 대립으로 인한 상처가 새겨진 안보 관광지다. DMZ 매표소 위쪽에 있는 ‘평화의 종’은 경기도민들이 평화의 뜻을 담아 조성한 대종. 무게 21톤, 높이 3.4m, 지름 2.2m에 이른다. 12월 31일 밤 10시30분부터 1월 1일 새벽 1시까지 이곳 임진각관광지에서 ‘통일염원 새해맞이 2009 제야행사’를 갖는데, 이때 ‘평화의 종’으로 제야의 종을 타종한다. 이 행사에는 대성동마을 주민, 새터민 등 경기도민을 비롯해 외지의 관광객들이 매년 4만 명 이상 참가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평화의 종’ 뒤쪽에 있는 ‘자유의 다리’는 1953년 휴전협정 당시 인민군에 붙잡혔던 국군 포로 1만2773명이 자유를 찾아 귀환한 경의선 철교다. 전쟁 중 파괴돼 교각만 남아 있었는데, 전쟁 포로들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복구한 철교 남쪽 끝에 임시 교량을 설치했다. 당시 국군 포로들은 차량으로 경의선 철교까지 온 다음 걸어서 자유의 다리를 건너왔다고 한다. 임시 교량이라 건축적으로 뛰어난 점은 없으나 ‘자유로의 귀환’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방문객들에게도 제법 인기를 끌고 있다.

 

▲ (위)자유로 끝에서 만난 임진각 관광지. 임진강 철교 주변에 조성해놓은 안보 관광지다. (아래)6·25전쟁 중 파괴된 후 반세기 넘게 비무장지대에 방치돼 있던 ‘장단역 증기기관차’.

 

‘자유의 다리’ 우측에 있는 ‘장단역 증기기관차’는 6·25전쟁 중 파괴된 후 반세기 넘게 비무장지대에 방치돼 있었던 남북 분단의 상징물. 전쟁 당시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개성에서 평양으로 가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황해도 평산군 한포역에서 후진해 장단역에 도착했을 때 파괴됐다고 한다. 이 기관차에는 1000여 개의 총탄 자국과 휘어진 바퀴 등이 남아 있어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2004년 등록문화재 제78호로 지정되었다.

‘망배단(望拜壇)’은 북한을 떠나온 실향민들이 매년 설날과 추석 명절 때 고향을 향해 절을 하는 장소다. 이외에도 이곳에는 임진강지구 전적비, 미국군 참전비 등을 비롯해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폭발사건으로 희생된 순교외국사절 및 공식수행원 17위의 영령을 추모하고 고혼을 위로하기 위한 ‘버마 아웅산 순국외교사절 위령탑’ 등의 전적비와 추모비가 있다. 또 장단콩전시관, 평화랜드, 평화누리 등의 볼거리가 있어 한 바퀴 둘러보는 데 보통 1시간 정도 걸린다. 입장료는 무료, 주차료는 승용차 2,000원. 문의 임진각 관광안내소  031-953-4744

 

DMZ 일반인 출입 불가능…반드시 셔틀버스 이용해야

 

임진강 건너는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일반인은 출입이 불가능하다. 임진각관광지에서 셔틀버스를 타야만 둘러볼 수 있다.

셔틀버스에 올라타면 버스는 임진각관광지를 벗어나 1번 국도를 타고 ‘판문점’ 이정표를 따른다. 임진강에 걸린 통일대교는 국군이 삼엄하게 통제하고 있다. 허가받은 차량과 사람만 통행이 가능하다. 여기서는 누구라도 ‘드디어 민통선 안으로 들어서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긴장감이 높아질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사진 촬영도 극히 제한돼 있으니 함부로 카메라를 들지 말아야 한다.

 

▲ (위)제3땅굴 입구에 조성된 DMZ 전시관. 비무장지대의 역사와 생태 등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아래)외국인 여학생이 DMZ 전시관 내부를 돌아보고 있다.

 

이렇게 도착한 제3땅굴. 1978년 발견된 제3땅굴은 북한에서 남한 침투용으로 뚫은 굴이다. 폭 2m, 높이 2m, 총길이 1,635m로 1시간에 3만 명의 병력 이동이 가능하다. 이곳에서 문산까지의 거리가 12km, 서울까지의 거리는 52km.

최첨단 시스템을 갖춘 DMZ 영상관에서 우리의 분단 상황과 땅굴에 대한 영상물을 관람한 후 제3땅굴로 들어갈 수 있다. 셔틀 승강기를 이용하면 쉽게 갈 수 있지만, 거리는 70여m로 5분만 더 투자하면 되기 때문에 크게 상관없다. 길은 어린이도 무난할 정도로 부드럽다. 셔틀 승강기 기다리는 시간 등을 포함하면 구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크게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DMZ 매표소에서 표를 끊을 때 굳이 셔틀 승강기 이용 가능한 버스 시간을 맞추지 말고 바로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하는 게 훨씬 시간이 절약된다.

도라산역(031-953-3334)은 경의선 남한 쪽의 최북단 역이다. 기차역 북쪽에 위치한 도라산(都羅山·156m)에서 역의 이름을 따왔다.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역이 아니라 2000년 시작된 경의선 복원사업의 하나로 2002년 새로 건립된 역이다. 이때 남쪽의 임진강역까지 4km 구간을 연결하는 공사가 완료됐다.

 

도라산역은 남방한계선의 남측 최북단 역인 관계로 나중에 남북의 경의선 철도가 연결돼 왕래가 가능해지면 북한은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로 가는 사람이나 화물 등에 대해 관세 및 통관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결국 도라산역은 한반도 분단의 상징적 장소이면서 동시에 남북 교류의 관문이라는 이중적인 역사성을 간직하게 된다. 휴전선을 지나 신의주를 거쳐 시베리아와 유럽까지 ‘도라’오는 도라산역인 것이다.

 

▲ (위)경의선 남한 쪽의 최북단에 위치한 도라산역. 한반도 분단의 상징적 장소이면서 동시에 남북 교류의 관문이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아래)도라전망대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휴전선 너머의 북한 땅을 살펴보고 있다.

 

도라산역의 ‘평양 205km, 서울 56km’ 이정표는 남북 분단의 현실과 우리가 극복해서 이뤄내야 할 기대를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곳은 2002년 부시 미국 대통령 방한 때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연설하고 철도 침목에 서명하는 행사를 가짐으로써 한반도 통일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어 셔틀버스는 통일촌에 들른다. 민간인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특수성 때문에 아직까지 오염되지 않은 공기와 맑은 물 등 전형적인 농촌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즉석에서 만든 두부 등을 구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맷돌 체험을 통해 직접 콩국물을 만들어 콩국수도 더불어 즐기고, 전통 두부 만드는 법도 배울 수 있다. 이 마을의 식당을 찾으려면 통일대교 검문소에서 식당에 전화를 걸어 연락한 뒤, 마중 나온 식당 차량을 따라 들어가야 한다.

셔틀버스 A코스는 ‘임진각~제3땅굴(DMZ영상관)~도라전망대~도라산역~통일촌 직판장~임진각’으로 약 2시간30분 소요. 운행은 평일(화~금) 9회(09:20, 09:40, 09:50, 10:00, 10:30, 12:00, 13:00, 14:00, 15:00), 휴일(토~일) 16회(09:20~15:30). 동절기(11~2월)에는 토·일요일 막차 시각이 15:00. 요금은 일반 8,700원(1만1,700원), 학생 6,700원(9,200원). ( )의 금액은 제3땅굴 지하 73m를 셔틀 승강기 타고 내려갈 경우의 금액이다.

B코스는 ‘임진각~허준 선생 묘~해마루촌~제3땅굴(DMZ 영상관)~도라전망대~임진각’으로 약 3시간30분 걸린다. 셔틀버스는 매일(화~일) 1회(13:00) 운행. 요금은 일반 9,000원, 학생 7,000원.

셔틀버스를 이용하려면 임진각관광지 내 DMZ 매표소에서 접수한다. 선착순으로 승차한다. 월요일·공휴일 휴무. 문의 DMZ안보관광 매표소 031-954-0303, 0640

 

 

▲ 통일동산 숙박단지. / 장단콩마을.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의 DMZ해마루촌(031-952-2303)은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위치하고 있는 팜스테이 마을이다. 일반실 소(10m2, 2명 기준) 5만 원, 대(66m2, 30명 기준, 10만 원). 역시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위치한 군내면 통일촌 장단콩마을(031-953-7600 www.tongilchon.co.kr)은 햇콩으로 만든 따뜻한 두부와 된장찌개, 콩비지 등을 파는 장단콩 전문 음식점이다.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는 이 마을들에 가려면 통일대교 검문소에서 식당에 전화를 한 뒤 마중 나온 식당 차량을 따라가야 한다.

문산읍내의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숙소가 많다. 우일여인숙(031-952-4466), 경신여관(031-953-5110), 로얄여관(031-953-6634), 이화장(031-952-1510), 임진장여관(031-952-3349), 태평여관(031-952-3315), 하니장여관(031-952-2881), 선인장여인숙(031-953-9448), 여주여인숙(031-952-2191), 초원여관(031-952-2201) 등이 있다.

문산북중 초입 하동4거리에 있는 강산설농탕(031-954-6001), 문산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의 똑순이네집(031-952-2463)이 이름난 식당이다.

율곡 이이가 학문을 논하던 임진강 제1경 '화석정'

임진강 철조망 너머로 북녘 땅을 훔쳐보며 파주 화석정(花石亭) 가는 길. 문산을 지나 빈 들녘을 양쪽 옆구리에 끼고 들어서면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화석정(花石亭)이 반긴다. 화석정은 1443년(세종 15년) 율곡 이이의 5대 선조인 이명신이 고향 마을에 세운 정자다. 임진강 풍치를 사랑했던 이이는 고향 땅에 올 때면 늘 이곳을 찾았으며,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이곳에서 제자들과 학문을 연구했다. 하지만 화석정은 임진왜란 때 전소됐고, 1703년(현종 10년)에 복원했으나 6·25전쟁 때 또다시 불탔다. 현재 건물은 1966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 율곡 이이가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던 화석정. 휘도는 임진강 물줄기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명당이다.

 

다음은 율곡이 8세에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오언율시다. 과연 대유학자에다가 명문장가의 어린 시절은 다른 데가 있다. 정말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지은 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도도하게 흐르는 임진강 서정이다.

‘숲 속 정자에 가을은 이미 깊어/ 시인의 마음은 끝이 없어라/ 먼 강물은 푸른 하늘에 닿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살 받아 붉구나/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내고/ 강물은 만 리 바람을 머금었네/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날아가나/ 저녁 구름 속으로 그 소리 사라지네’

어린 율곡은 이렇게 화석정의 늦가을 정취를 노래했지만, 후손들은 ‘화석정에 찾아든 봄’을 ‘임진강8경’ 중 제1경으로 꼽았다. 전방의 살벌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시적인 이름을 지닌 화석정은 답사객들의 경직된 마음을 한껏 누그러뜨리는 임진강 풍광을 보여주는데, 지금도 전해오는 ‘율곡 설화’에서는 안보의 중요성을 읽을 수 있다.

10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던 율곡은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한 뒤 매일 이 화석정을 찾았다. 율곡은 그때마다 하인에게 송진을 채취해 와 정자 기둥에 바르게 했다. 그리고 임종 무렵 하인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열어보라”며 봉투를 남겼다.

 

▲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자운서원.

 

세월이 흘러 임진왜란을 당하여 선조가 피신을 가다가 임진나루에 도착했다. 비바람이 치는 칠흑 같은 밤이라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이때 율곡의 하인이 나타나 편지를 전달했다. 대신 중의 한 사람이 율곡이 남긴 봉투를 열자 편지에는 “화석정에 불을 질러라”는 글이 씌어 있었다. 이에 신하들이 화석정에 불을 붙이자 나루 근처가 대낮같이 밝아져 선조 일행은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화석정에서 12km쯤 떨어진 자운서원은 율곡 이이를 모신 서원이다. 1615년 세워졌지만,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헐린 뒤 빈 터에 율곡의 학문을 기린 묘정비만 남아 있다가 1972년 경내를 정화하였다. 자운서원을 품고 있는 자운산자락에는 율곡 이이, 어머니 신사임당과 부친의 합장묘 등 13기의 가족묘가 있고, 서원 안에는 율곡 이이의 일대기를 담은 ‘율곡 이이 선생 신도비’, 율곡기념관, 율곡연수원 등이 있다. 문의 율곡 선생 유적지 031-958-1749

 

임진강 황포돛배

 

경기 북부 지역의 젖줄인 임진강. 남한과 북한을 가르는 벽에 가로막혀 한민족의 쓰라린 현대사를 일러주는 강이지만 물줄기만은 6·25전쟁 때도, 남북한이 화해 분위기로 들떠 있다가 또 서해교전 등으로 긴장이 높아지다가 오락가락하는 요즘도 늘 그렇듯 말 없이 흘러만 간다. 역시 1100여 년 전 개성의 왕건이 삼한 통일의 꿈을 키우며 열심히 강을 오르내릴 때도 지금과 다름없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임진강, 철조망 안에만 수인(囚人)처럼 갇혀 있어 접근도 어려웠던 임진강, 그 속살을 적나라하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바로 적성면 두지나루터에서 황포돛배를 타는 일이다.

임진강 황포돛배 투어는 원형대로 복원된 황포돛배로 즐기는 선상 투어다. 아쉽게도 동력은 바람이 아니라 엔진으로 얻는다. 운항 중 거북바위, 빨래터바위, 원님상용바위, 자장리 적벽, 미수 허목 선생 글씨가 새겨져 있는 괘암 등에 얽힌 이야기를 선장의 구수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물론 초겨울에 타는 배는 한여름의 그것에 비해 즐거움이 반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외투만 두껍게 갖춘다면 겨울 강바람도 충분히 맞설 수 있다. 황포돛배는 두지나루~거북바위~임진강 적벽~원당리 절벽~괘암~호로고루성~고량포~두지나루 코스로 운항한다. 50분 소요. 운항 시각은 동절기 11:00~17:00, 하절기 10:00~18:00로 매시 정각에 두지나루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승선 인원이 최소 4명이 넘어야 출항하므로 사전에 확인 필수. 임진강이 얼어붙는 한겨울에는 운항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임진강이 12월 26일에 결빙됐으므로 보통 12월 하순까지는 유람선을 탈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요금은 성인 8,000원, 소인 6,000원. 주소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 문의 031-958-2557

 

신라경순왕릉

 

임진강은 고려 이후 수상교통의 요지였다. 특히 파주시 장남면 고랑포는 임진강 상류로 가는 마지막 포구였다. 규모가 큰 배는 모두 이곳까지 올라왔고, 작은 배만 상류의 안협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따라서 이곳은 임진강으로 올라온 산물이 개성으로 들어서는 중요한 길목이 되었다. 고려 이후 고랑포는 수로와 육로의 교차지역으로 크게 번성했다. 일제강점기까지도 그랬다. 두지나루터에 걸려 있는 옛 기록사진을 보면 고랑포에는 정겨운 초가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이어서 있으며 중간에는 화신백화점 분점도 보인다. 고랑포의 상권이 얼마나 컸던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빈 터를 차지한 갈대만 강바람에 흔들릴 뿐이다.

 

▲ (위)임진강으로 올라온 산물이 개성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위치한 파주 고랑포는 광복 때까지 임진강 최대 항구로 꼽혔다. 지금은 빈터로 변한 이곳에 고향을 그리는 시비만 외롭게 세워져 있다. (아래)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묻힌 경순왕릉. 파주 고랑포 북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고랑포 안쪽 언덕에는 신라 경순왕릉(사적 제244호)이 있다.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무덤이 이곳에 자리 잡은 사연은 참 애절하다.

신라 말기 나라가 기울자 경순왕은 879년(경순왕 10년) 멀리 개성을 찾아와 왕건에게 항복했다. 왕건은 자신의 딸인 낙랑공주를 주어 부마로 삼았다. 낙랑공주는 비운의 왕인 경순왕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도라산 중턱에 암자를 짓고 머물게 하면서 이곳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뜻으로 영수암(永守菴)이라 이름을 지었다. 경순왕은 조석으로 이 산마루에 올라 경주를 향해 눈물을 흘렸다. 도라산(都羅山)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지어졌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978년(고려 경종 3년) 세상을 떠난 경순왕의 운구 행렬이 경주로 가기 위해 이곳 고랑포에 이르렀을 때 고려 왕실은 경주 백성들의 민심을 우려하여 ‘왕릉은 개경 백 리 밖에 쓸 수 없다’는 이유로 운구 행렬을 막았다. 결국 경순왕은 경주로 가지 못하고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고랑포 북쪽 언덕에 묻힐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경순왕릉은 경주를 벗어난 지역에 있는 유일한 왕릉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경순왕릉은 잊혀졌다가 1747년(영조 24년) 발견돼 재정비된 것이다. 신라 왕릉임에도 조선시대 격식을 따르게 된 이유다. 천년 사직의 마지막을 장식한 망국의 왕이 고랑포에 묻힌 사연은 이렇듯 비감하다. 이래저래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임진강이 아닌가.

경순왕릉은 민통선 안쪽에 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능했다. 현재는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개방됐지만, 답사 후에는 다시 갔던 길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황포돛배가 운항하는 두지나루에서 경순왕릉까지는 승용차로 왕복 30분 정도 걸린다. 여기에 왕릉 답사 시간 10~20분을 추가하면 총 40~50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다. 따라서 황포돛배 운항 시각에 맞춰 경순왕릉 답사 순서를 정해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화석정 근처의 파평면 율곡리에 호텔테마(031-952-5798), 호텔미라지(031-954-0021), 아비숑(031-953-7370)이 있다. 자운서원 근처 법원읍 법원리에 초호쉼터(031-958-0029) 등의 민박집이 있다. 초리연(031-959-2179)은 직접 손으로 만든 두부 전문 식당. 김치와 밑반찬 등에 대부분 직접 재배한 재료를 쓴다. 금곡리의 쇠꼴농장(031-959-0123)도 민박을 친다.

감악산 서쪽의 적성면 마지리에 대성장여관(031-959-3552), 금화장여관(031-959-4414), 한일여관(031-959-9579), 형제여관(031-959-3488), 현대여관(031-959-4437), 감악여관(031-959-5071) 등 숙소가 많다.

파평면 덕천리 임진강폭포어장(031-959-2222~5)은 장어구이, 송어회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다. 근처에 뉴그린모텔(031-959-6110), 임진강모텔(031-958-5322), 폭포모텔(031-959-0062) 등의 숙소가 있다.

 

국정원에 최소 1개월 전에 신청해야 관광이 가능한 판문점

 

▲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에 있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일반인들이 이곳을 방문하려면 최소 한 달 전에 국정원에 신청해야 한다.

 

일반인은 판문점 견학이 아주 까다롭다. 신청하려면 최소 30~43명으로 구성된 인원이 국가정보원 안보상담센터에 신청해야 한다. 판문점 방문(견학) 협조요청문서 1부 등 구비서류를 갖춰야 한다. 판문점 견학 가능 기간은 월~토요일. 매일 3회 유엔사 지정 시각(09:45, 13:15, 15:15)에 견학 가능하다. 일요일 및 법정 공휴일에는 견학 불가.

안보상담센터에 신청서류를 접수한 후 경찰서 신원확인 기간(최소 1개월)을 거치게 되므로 신청 후 견학까지 보통 2~5개월 걸린다. 견학 허가가 나왔더라도 남북회담 행사나 유엔사의 사정 등에 의해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 만 11세 이상부터 견학이 가능하다. 문의 안보상담센터 전국 공통 111

여권을 소지한 외국인의 경우에는 지정된 여행사를 통해 견학이 가능하다. 국제문화서비스클럽(020755-0073, 031-952-4066, www.tourdmz.com), 대한여행사(02-777-6647), 판문점트레블센터(02-771-5593, www.panmunjomtour.com, www.koreaDMZtour.com), 중앙고속관광(02-2266-3350, www.jsatour.com) 등이 외국인 전문 여행사다.

월간산 2009.12 482호 '민삿갓의 팔도기행' 민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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