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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강원도

철원 민통선 노동당사 백마고지전적지 철원감리교회

by 구석구석 2008.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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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3번 국도를 타고 의정부에서 43번 국도 포천 방향으로 달리면 철원까지 이어진다. 철원 읍내를 지나 463번 지방도를 타고 서쪽으로 이동하면 고석정, 직탕폭포, 도피안사 등 철원의 볼거리가 이어진다. 버스는 서울 수유리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신철원행을 타면 된다. 신철원 터미널에 내려 관전리행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철원의 민간인출입통제선을 지나려면 검문소에서 군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해가 진 이후에 출입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민간 차량보다 군용 지프가 더 많이 다닌다. 길의 한쪽은 철원평야고 다른 쪽은 지뢰밭이다. 가꿔지지 않아 멋대로 자라고 꺾어진 숲이 지뢰밭임을 알게 해준다. 철조망에 ‘지뢰’라고 쓰인 표지판은 이곳이 최전방 지역임을 실감케 한다.

 

서울에서 차로 2시간여, 철원을 지나면 민통선은 코앞이다. 1953년 휴전선이 그어지고 1954년 군사 작전과 군사 시설 보호, 보안 유지를 위해 남방한계선 남쪽 5~20km를 민통선이라 설정했다. 보이지 않는 선이다. 검문소가 이를 알게 해줄 뿐이지 실제로 선이 그어져 있지는 않다.

이곳에서 민통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87번 국도와 463, 464번 지방도를 따라 달리면 대한민국 분단의 역사와 평화를 향한 길을 찾아 볼 수 있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대마리 백마고지전투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전쟁(1950. 6·25 ~ 53. 7. 27)기간인 1952. 10월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3km 북방에 위치한 무명의 한 작은 고지를 놓고  한국군 보병 제9사단장(사단장 김종호)과 중공 제38군 3개사단이 전력을 기울여 쟁탈전을 벌인 끝에 우리국군의 승리로 매듭지어진 전투를 말한다.

 

 

 1952. 10. 6일부터 10일동안 해발이 불과 395m 밖에 되지 않는 고지 하나를 빼앗기 위해 아군과 적군 2만 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전투기간 중 발사한 포탄은 적측 5만5천발, 아군측 22만발, 피아간 12차례의 공방전으로 24회나 주인이 바뀌기도 했다. 혈전사투의 초연이 걷힌 다음 처절하게 변모한 산용(山容)이 흡사 백마가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백마고지전투는 한국군의 방수능력(防守能力)을 높이 평가받은 일전으로서 보(步), 전(戰), 포(砲), 공(空)의 협공이 긴밀하게 이루어진 고지공방의 범례(範例)가 되는 결전이기도 하였다. 6·25전사중 치열한 대표적 전장의 하나로서 철의삼각지전투의 상징이라 할 만한 백마고지 전투는 당시 휴전을 앞두고 한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고자 하는 피아의 공방으로 처절함을 더 했다.

 

백마고지 위령비

백마고지 전투에서 희생된 아군과 중공군 등 17,535명(아군 3,146  중공군 14,389)의 영혼을 진혼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인데 당초 1985년 6월 6일 육군 제5사단 장병과 지역주민들이 백마고지 후방에 세운 3.6m 높이의 현무암 비석은 오랜 풍상으로 훼손되고 대규모의 위령제를 봉행하는데는 장소 협소 등의 어려움이 있어 1990년에 철원군에서 위령비일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새롭게 단장하였다.

 


홍익대 강건희(姜建熙)교수가 설계한 기념시설은 회고의 장, 기념의 장, 다짐의 장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처절했던 격전의 현장을 재현하고 높이 22.5m의 기념탑을 세웠다. 『회고의 장』 에는 피아 전사자를 추도하는 위령비와 분향소가, 『기념의 장』 에는 통일의 염원과 전승을 기념하는 전적비와 함께 당시 백마부대장이었던 김종오(金鍾五)장군의 유품을 전시한 기념관도 배치하였다. 『다짐의 장』 에는 전망대와 함께 자유의 종각도 건립하여 오늘날은  국민의 안보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백마의 얼
(85·6 건립한 당초의 위령비)


풀숲에 누워 그날을 본다.
하늘이 울리고 땅이 갈라지듯, 적들이 몰려오는 저 산과 강에서,
우리는 끓는 피로 용솟음 치며, 넘어지려는 조국을 감쌌다.

 

이 한몸 초개같이 바치려 숨찬 목소리로 다 같이 강물을 헤치고,
산을 부스며 달려 오는 적들을 막았노라.

수많은 적을 따라 소탕하고 조국의 얼로 내달려 떡갈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원수의 고함을 눌러 버렸나니 쓰러지며 죽으면서도 다시 일어나 숨결을 돌리고,
숨지려는 조국을 살렸노라.

 

나의 조국...
영원한 땅이여!!!
만세를 가도록 그 얼은 살았으니 지금도 그때처럼 귀를 기울이고,
저 몰려오는 적을 막고 있노라.

 

푸르러 푸르러 영원한 젊음
우리는 그품에 안겨 안식하리라.
어머니 조국에 이 혼을 맡기어
후회없이 더 강하게
앞으로 달려 가리라.

 

464번 지방도의 끝 즈음에는 백마고지전투전적비가 있다. 6·25전쟁 중 10일간 24번이나 주인이 바뀐 치열한 전투 지역으로 포격으로 인해 산이 백마가 누워 있는 형상처럼 변했다 하여 ‘백마고지’라고 불린다. 이곳에서 다시 87번 국도를 따라 동쪽으로 달리면 노동당사와 도피안사를 만날 수 있다.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이 평화를 외치며 뮤직비디오를 찍은 곳이 바로 노동당사다. 1946년 초 조선노동당에서 지은 건물로 지금은 콘크리트 외형만 남아 있다. 다시 길을 달려 동쪽으로 내려오면 절이 보인다. 신라 경문왕 때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도피안사는 국보 제63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보물 제223호 삼층석탑이 있는 절이다. 규모는 크지 않다. 전쟁 중에 불상이 소실될 것을 우려해 스님들이 땅속에 파묻어 놓았다가 훗날 군에 의해 발견돼 복구된 철불상 역시 이곳이 전방 지역임을 알려준다.

 

 

철원읍 관전리 3-2 등록문화재 제22호(2002.5.31)

철원노동당사

이 건물은 북한의 노동당사로 1946년 초에 북한정권하에서 착공하여 지상3층에 연건평 580평 규모의 건축물로 신축되었다. 조적식기둥 및 벽체로 수직재를 이루고 있으며, 보 및 스라브는 철근콘크리트 수평재로 수직재와 결구되는 구조로 되어있다. 천장은 목조 삼각형지붕틀을 사용한 흔적이 있으며, 입구의 1층에 원기둥 두개를 세워 현관을 두었으며 그 위에는 아치로 장식하여 정면성을 부각하고 있다.

 

1946년 북한정권하에서 지역주민들의 강제 노력동원과 모금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이다. 당시 주민들은 성금 이란 명목으로 1개리마다 백미 200가마씩의 자금과 인력 또는 장비를 동원시켰으며, 그 해년 초에 착공하여 연건평 580평 규모로 완공 되었다.  

 

 

1947년 초부터 이 당사에서는 북한의 중앙당으로부터 지령되는 극비사업과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연천지역주민들의 동향사찰은 물론, 대남공작을 주도한 북한정권하에서 중부지역의 주요업무를 관장했던 곳이다. 이런 이유로 당사 내부구조물 축조작업에는 보안을 위하여 열성당원이외 일반인의 작업동원을 일절 금하였다고하며, 공산당에 협조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취조 및 구금, 고문 등 한번 끌려 들어가면 시체가 되거나 반송장이 되어 나오는 악명 높은 곳으로 당사 뒤편에 있는 반공호에는 현재도 유골, 실탄, 낫, 철사 등이 발견돼 당시의 참상을 대변하고 있음. 최근에는 통일기원예술제, 열린음악회등 평화기원행사가 열리고 있다. 

 

관전리 100-2 등록문화재 제32호(2002.5.31)

철원감리교회

최초 1920년 붉은벽돌의 조적조 양식으로 건축을 완공한 후 1936년에 지하1층 지상3층 규모의 화산석과 화강석을 쌓아만든 석축건물로 현부지에 성전을 재건축했다.

 

 1936년 건립된 지하1층, 지상3층 규모로 당시 신도수가 500여명에 달했으며 1919년 3.1운동당시, 강원도에서 제일먼저 시위의 도화선이 되었던 독립운동의 본거지이기도하다. 한국전쟁때 공산치하에서 철원감리교회를 중심으로 기독교 청년학생들의 반공투쟁이 전개되기도 했으며, 한국전쟁당시에는 인민군막사와 병동으로 사용하면서 교회지하실을 양민과 반공투사들을 고문하는 만행장소로 사용한 곳이기도 하다. 전쟁당시 폐허가 되어 현재는 그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이 파손되었다.

 

 

 

 

일본 오사카예술대학 건축과에서 1905년 이래 일본서 활동한 미 건축가 보리스의 자료 ‘Chulwon, 1936, Church for Methodist Mission’ 와 ‘Chulwon, 1938, Methodist Mission House’에 철원감리교회와 목사관의 도면이 남아 있다고 한다. 1층은 소예배실 과 10개의 분반공부방, 2층은 대예배실로 구성되어있다. 철원읍에 8개소의 유치원과 성경학교를 설립하기도 했으며 박재봉, 박재곤, 장시화 목사 등 많은 교역자를 배출했다.

 

 

참나무장작구이백마고지전투전적비 근처에 있다. 오리구이가 주 메뉴다. / 033-455-5425

고궁갈비동송읍 이평리에 있다. 왕갈비와 쌀냉면이 잘 알려져 있다. / 033-455-1535

가평식당

오징어불고기와 북어찜이 맛있다. 강포리에 위치. / 033-452-2596

 

디퍼펜션동송읍 장흥리에 있다. 한탕강, 태봉교 인근에 위치했다. / 033-455-7273

별비내리는마을갈말읍에 있는 황토집 펜션이다. / 033-452-3311

대풍파크동송읍 이평리에 있다. 23개의 객실이 있다. / 033-455-3362

 

 

서울역~한탄강~연천~백마고지역

 

 

 

경원선(서울~원산선)을 달려 연천·철원 일대의 생태·역사·문화·안보 관광지를 둘러보는 당일 관광열차(디엠제트(DMZ)트레인) 가 매일 1회씩 운행된다. 

 

경원선 관광열차는 매일 오전 9시27분 서울역을 떠나 청량리·의정부·동두천·한탄강·연천·신탄리역에 정차한 뒤 11시44분 백마고지역에 도착, 시티투어버스 등을 이용해 관광지를 둘러보고 오후 4시6분 백마고지역을 출발해 6시35분 서울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요금은 왕복 2만4800원(주말 2만5600원). 편도 이용도 가능하다.

 

연천역에선 승마체험을 할 수 있고, 신탄리역에선 태풍전망대·옥계마을·숭의전·전곡리 선사유적지·한탄강관광지 등을 둘러보는 시티투어를 하게 된다. 도착역인 백마고지역에서는 두루미마을·노동당사·백골부대·금강산철교·월정리역·백마고지전적지 등을 둘러보는 철원 안보관광 코스와 고석정·승일교·백마고지전적지 등을 찾아가는 시티투어버스 중에서 한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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