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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남도

의령 남강-의령관문 정암진 정암루 솥바위 이병철생가

by 구석구석 2008.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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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젖줄 낙동강과 더불어 일찌기 뱃길이 열렸던 '남강'

의령군을 꼭지점으로 삼아 남서쪽으로는 진주시, 남동쪽으로는 함안군을 끼고 흐르는 남강. 예로부터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게 의령의 논밭을 기름지게 일궈온 남강은 의령 화정면과 의령읍, 용덕면, 정곡면, 지정면을 따라 굽이쳐 흐른다.

 

남강변은 예로부터 선인들이 나룻배를 타고 오가던 나루터가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남강변에는 나룻터의 흔적은 간판으로만 남아 있고, 기름진 땅과 풍부한 물이 흐르는 들녘에는 비닐하우스가 넘실댄다. 남강은 임진왜란(1592~1598) 때 왜군이 곡창지대인 전라도로 들어가는 지름길이었다. 의령에서 태어난 홍의장군 곽재우(1552~1617)가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남강 곳곳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남해 고속도로 군북 나들목을 지나 10분쯤 의령쪽으로 달려가면 전통 한옥양식으로 된 기와지붕 모습의 의령관문이 쓸쓸히 방랑객을 맞이한다. 의령관문, 서부경남과 북부호남을 연결하여 주는 위치에 있는 문으로, 남강변에 우뚝 서 있어 자연경관과도 조화로움을 이룬다.  그 의령관문 앞을 가로지르며 철교와 기암절벽 아래 윤슬을 반짝반짝 빛내며 흐르는 아름다운 강이 바로 의령의 젖줄 남강이다.

 

의령관문의 야경

남강은 진주에서 바라보면 진주를 꼭지점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령에서 바라보면 의령을 꼭지점으로 흐르는 강이다. 곽재우 장군이 남강을 건너 진주와 전라도로 나아가려던 왜군을 모조리 수장시킨 역사의 현장이다.

 

곽재우 장군은 왜군이 함안을 지나 의령을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 나루터 곳곳에 의병을 숨겨놓고 있다가 왜군이 강 가운데 들어왔을 때 전투를 시작했다. 그때 왜장 혜경이 이끄는 수만의 왜적은 꼼짝없이 남강 속에 그대로 수장되었다.

 

의령사람들의 부와 권력의 상징 '솥바위'

 

정암루(鼎巖樓)와 솥바위(鼎巖)는 의령관문 바로 앞을 가로지르는 남강의 옛 나루터 정암진(鼎巖津)에 우뚝 서 있다. 하이얀 벚꽃과 연분홍빛 복사꽃에 둘러쌓인 정암루와 그 아래 연초록빛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솥바위는 그대로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오마이뉴스 이종찬기자

정암루 아래 나루터 곁에는 초록빛 물결 위에 마치 커다란 자라처럼 헤엄치고 있는 커다란 기암괴석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보고 솥두껑처럼 생겼다고 말한다.  이 솥바위는 물 속에서 바라보면 마치 솥단지의 다리처럼 발이 세 개 달려 있다.  마을주민들 일부는 지금도 섣달 그믐날이면 솥바위에 금줄을 친다. 그리고 동신제, 용왕제 등을 올린다. 게다가 요즈음 이곳(화정면 장박~정암진 구간)에는 의병전적지 뗏목 탐사를 이벤트화하여 호국정신과 체력을 다지는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정암진은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 곽재우가 왜적을 물리쳤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곳에는 가마솥처럼 생긴 솥바위가 있는데, 그 솥바위를 중심으로 하여 20리(8km) 거리 내에서 큰 부자가 난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삼성그룹 고 이병철 회장은 의령군 정곡면에서, 효성그룹 고 조홍제 회장은 함안군 군북면에서, 그리고 LG그룹 고 구인회 회장이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나 그 전설이 딱 들어맞다고 무릎을 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다. 자료 - 오마이뉴스 김연옥 이종찬 

 

호암 이병철 생가

풍수(風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그의 옛집을 찾으면 한눈에 명당(明堂)임을 알 수 있다.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723번지에 있는 호암 이병철의 생가(生家)는 멀리 10리 밖으로 남강(南江)이 천천히 흐르고, 남서향 안채 뒤로는 노적봉(露積峯) 형상의 산자락이 자리잡아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자랑한다.

 

집은 1851년 호암의 조부인 문산 이홍석 공이 지었다. 천석꾼 대지주에 대학자였던 조부는 멀지 않은 곳에 ‘문산정’이란 서당을 세워 후학 양성에 힘썼다. 호암은 이 집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고, 결혼 후엔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집으로 분가했다. 기와를 새로 이고, 서까래를 교체하는 등 수차례 개보수가 있었지만, 전체 틀은 160여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집은 1907㎡(약 570평)의 대지에 사랑채, 안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돼 있다. 마당엔 호암이 좋아했던 백일홍과 벽오동 등 여러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안채 뒤란엔 아름드리 회화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가 보였다. 너무 크게 자란 회화나무가 집안에 음영을 드리운다며 호암이 잘라냈다고 한다.

안채 뒤편엔 울창한 대숲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 화단 옆으론 기이한 모양의 암벽이 자리잡았다. 거북이, 두꺼비, 자라 등이 안채를 향해 고개를 내민 형상이다. 암벽 한편엔 재물을 쌓아놓은 모습과 밭 전(田)자 형상이 있어 많은 방문객들이 바위에 손을 얹고 “부자 되게 해달라”며 기도한다.

 

생가 입구엔 ‘부자 매점’ ‘부자 한우촌’ ‘삼성 정미소’ 등 ‘부자’와 ‘삼성’을 상호로 내건 가게가 많이 보인다. 부자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조영자씨는 “생가를 다녀간 이들이 ‘부자의 기운을 한 번 더 받겠다’며 매점을 찾는다”고한다. 월간조선 2010.2 김정우기자

 

2007년 11월 19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된 이후, 현재까지 약 18만1000여명이 생가를 다녀갔다. 평일엔 200~300명, 주말과 휴일엔 800~900명이 이곳을 찾는다.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월요일 휴무. 

 

소싸움전용경기장

전통 소싸움 경기를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는 의령민속경기장을 완공했다. 전국 4번째로 지어진 이 소싸움 전용 경기장은 의령군의 관문인 의령읍 무전리와 정암리 일대를 전통 농경문화 테마파크로 조성하는 사업의 하나로 건립됐다.

민속경기장은 의령군이 국비와 도비 지원금을 포함해 총 75억 2천만 원을 들여 2008년 8월 착공, 1년여만에 완공했다. 9만8천660㎡의 부지에 건립된 이 경기장은 건물면적 3천200㎡에 1천460명이 앉아서 경기를 즐길 수 있는 좌석, 240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 화장실 3채 등의 편의시설을 갖췄다. 경기장 주변 4곳에는 농촌의 멋과 정취를 즐길 수 있는 원두막도 설치됐다. 연합뉴스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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