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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제주 청수리 평화박물관 가메오름 돌거북이수석박물관

by 구석구석 2008.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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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상 간직한 가마오름 <평화박물관> 064-772-2500 www.peacemuseum.co.kr

제주의 오름마다 특별한 사연이 없으랴마는 평화동 가마오름은 식민지시절 일제에 의해 원형이 완전히 훼손되는 수난을 겪었다. 외부에서 보면 특별함 없는 아니 오히려 너무나 평범한 이 오름이 군사요충지였다니... 오름내부에는 지금도 그 실체가 완전히 파악되지 않은 미로처럼 얽힌 진지땅굴이 만들어져 있다. 전쟁을 겪지 않는 지금 세대가 봐도 혀를 내두를 만큼 치밀한 계획하에 만들어진 가마오름 땅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질 뻔한 큰 아픔이 우리앞에 공개됐다.

 

 

일본군이 주둔했던 가마오름 땅굴진지가 평화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국내 첫 땅굴진지 활용 체험학습장인 평화박물관은 북제주군 한경면 청수리 평화마을 가마오름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겉보기엔 얕으막한 가마오름이 실상은 과거 일제가 <7호작전>에 의해 1945년 3월 제주도에 제58군 사령부를 창설하고 최후의 일전을 대비해 구축한 진지중 최대규모로 알려진 곳.
땅굴의 총 길이는 1.2km. 이 가운데 제1 땅굴 300m 구간만 복원하고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나머지 제2, 3, 4 땅굴은 현재 미측량상태. 이영근 평화박물관 대표는 ..땅굴진지는 한번 들어가면 원래 입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미로처럼 얽혀있는 복잡한 구조로 돼있으며 심지어 2층·지하공간 까지 만들어져 있다..고 상세히 설명했다.

 

▲가마오름에서 가장 긴 동굴진지 내부 도면. 초록색 부분이 박물관 공개구간. 가마오름 동굴진지는 구조나 규모, 또 보존상태 측면에서 일본군 진지유형의 하나인 '주저항진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 중의 하나다. 또한 제주도내 최장의 동굴진지가 해안가가 아닌 중산간지대에서 확인되고 있다는 점은 당시 일본군이 제주도와 제주도민을 볼모로 준비했던 본토결전 작전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역사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관람코스로 이용되고 있는 공개구간 뿐 아니라 미공개 구간에 대해서도 보존 정비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미공개 구간의 경우는 구축 당시의 원형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섣부른 공개는 삼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나머지 동굴진지 가운데 일명 '전차굴'로 알려진 곳 등은 갱도 진지 구축실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곳으로 평가된다. 한라일보

이처럼 미로같은 땅굴진지는 강제로 징용당한 지역주민들의 노역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구석구석 그들의 소리없는 절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참상이 서려있는 듯 마음이 편치않다.


평화박물관을 방문했다면 맨 처음 영상관부터 들리자. 이곳은 240cm 대형스크린을 갖춘 DVD영상관으로서 당시 이곳에서 징용군으로 일했거나 작업현장을 목격했던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땅굴 파는 현장엔 일본인, 조선인 할 것 없이 모두 동원됐지만 힘든 중노동은 조선인 징용군이 도맡아 했지. 당시 손에 쥐어준 도구가 뭐였냐구? 장갑도 없이 곡괭이와 삽이 전부였어..그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노인들의 목소리가 상영관을 가득 메웠다. 증언에 따르면 당시 징용군들은 맨손으로 가장 기초적인 도구에 의존한 채 굴파기 작업을 했다고 한다. 흙은 굴전체에 설치된 레일을 이용해 외부로 운반했다고. 

 

박물관 안내를 맡은 이 대표는 전시관으로 일행들을 안내했다. 전시관에는 매주 발행된 조선총독부 통보(1937∼1943) 207권, 창씨개명지침서 1권, 1925년 발간된 사진화보집 및 교과서, 신문 등 일본군의 조선침략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 5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당시 일본정부가 각 부처별로 발표한 전쟁자료 및 산업자료를 일주일마다 발간한 관보성격의 주보도 전시되고 있는데 이곳을 지나치는 이 대표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여기에는 정신대 모집에 관한 아주 상세한 내용이 담겨있다. 모집연령, 배치장소, 동원방법, 모집단체 등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내용들이 담겨있어 충격적이다..
대상이 14세 이상 미혼녀라는 설명에는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밖에 일본군이 사용했던 권총집, 권총탄총, 방한장갑, 일본군 고급장교 및 중위, 대위가 입었던 전투복, 정복, 겨울외투, 군모, 망원경, 토지측량계 등은 당시의 전쟁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다. 특히 가마오름 땅굴 파는데 사용됐던 도구들은 인상에 깊게 남았다.


바깥쪽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나가니 오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1분도 안되는 짧은 거리를 걸어올라가니 땅굴 입구가 나온다. 두사람이 같이 걸어들어가면 적당한 규모의 입구다.
개방된 제1 땅굴은 총길이 1.2km 중 300m 정도에 해당되는 것으로 최고 2m 정도의 높이까지 파여져 있다. 입구에 표시된 빨간색 화살표를 따라 점점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다수의 방과 회의실, 숙소, 의무실 등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공간이 나온다. 이 대표 설명에 따르면 2층 회의실에선 가마오름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6개 부대 간부들이 작전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회의가 끝나면 각자의 입구를 찾아 흩어질 정도로 땅굴내부는 미로처럼 내부가 복잡한 구조.

 

그러나 공개된 구간에는 조명과 안전시설, 바리케이트 등을 설치해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으며 20분 정도면 충분히 구경하고 나올 수 있다. 화살표를 따라 안으로 안으로 걸어가면 들어갔던 입구와는 다른 곳으로 해서 오름 바깥으로 나온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주위를 둘러보니 약간 지대가 낮은 곳에 위치한 출구는 입구와 몇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확인되지 않는 다른 땅굴들로 이런 식으로 오름 구석구석 파헤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그들은 가고 없지만 역사의 아픈 상처는 가마오름에 그대로 묻혀있다는 증언자의 목소리가 선연히 들려오는 듯 하다. 출처 : 보보스제주


개인 5000원, 어린이·노인 3000원, 장애인 무료, 도민 50% 할인 / 064-772-2500

 

 

 가마오름 갱도는 구조나 규모면에서 다른 오름의 갱도를 압도한다. 곳곳에 알려지지 않은 갱도가 계속 확인돼 아직도 정확한 규모·길이는 오리무중이다.

 

결 7호작전이란?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제주도에서의 작전이 <결7호 작전>인데 이는 연합군의 예상 진격로를 7곳으로 설정하고 그 진격로를 막는 작전이다. 1945년 4월초 일본대본영 회의에서는 미군이 제주도를 거점으로 큐슈 북부를 공격할 것으로 판단하고 2∼3개 사단을 제주도에 증강하여 제주도를 사수할 사령부를 신설하도록 결정했다.(sbs 그것이 알고 싶다-1945년 제주 결7호 작전의 비밀. 1993년 방송) 이 작전에 의하여 일본군 최후의 지휘 본부가 제주에 설치됐다.


미군의 비밀정보 문서인 G-2 보고서에는 종전 당시 제주도내 일본군이 5만8320명이라 기록돼 있고, <조선군개요사>에는 1945년 1월 1천명이던 제주도 주둔 일본군이 8월에는 7만5천명으로 증강됐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제주도 인구가 20만명 정도였음을 생각해 보면 제주도에는 그야말로 일본군인들로 가득찼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일명 '전차굴'로 알려진 가마오름 동굴진지 내부. 갱목홈이 뚜렷이 남아있다. /사진=이승철기자

제주도 발간자료인 <제주도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군이 군사용으로 파놓은 땅굴과 진지 구축 추정 지역은 113곳(344개)으로 확인됐다. 지역별로는 북제주군 50곳, 남제주군 35곳, 제주시 20곳, 서귀포시 8곳이다. 출처 : 보보스제주

 

 

가메오름(가마오름 釜岳, 한경면 청수리 1,202번지, 표고 140.5m 비고 51m)은 오름의 모양새가 가메(가마. 가마솥의 제주어)를 엎어놓은 것과 비슷하다 하여 가메오름, 이를 한자로 부악(釜岳)이라 하고 있다. 또한, '가마'는 고조선 시대부터 쓰여 온 신(神)이란 뜻의 검(감, 곰, 굼)에서 온 것이라 하여 신령스런 오름이라는 설도 제기하고 있다.

 

한경면 청수리에서 대정읍 무릉리를 잇는 대한로(1120번)변에 오름 표지석과 이 오름 북동쪽 중턱에 자리한 영축사의 안내 표지석이 각각 세워져 있다. 주봉인 남쪽 봉우리는 북쪽으로 뻗어 내려가면서 펑퍼짐한 등성마루를 이루고 있고 동쪽 기슭 아래 펼쳐지는 곶(산 속의 숲지대)은 대정읍 무릉리 쪽으로 이어지면서 운수천리(雲樹千里)를 연출하여 장관을 이룬다.  

 

청수리 20-3 봉황 솟대박물관

064-772-4567 

 

'봉황'새를 테마로 한 전문 솟대박물관이다. 1,111마리의 '봉황'새가 앉혀진 '솟대'들이 실내전시관을 비롯 정원과 박물관 길목에 설치되어 있는 전세계 유일의 봉황 솟대박물관이다.

 

* 일반 - 개인 5,000원 단체 4,000원
* 청소년.군경 - 개인 3,000원 단체 2,000원
* 어린이 - 개인 2,000원 단체 1,000원
* 노인 - 개인 4,000원 단체 3,000원
* 국가유공자, 장애인 - 개인 4,000원 단체 4,000원

 

청수리 20-3 돌거북이수석박물관 064-772-4567

 

 돌거북이 수석박물관에는 천하 제일의 보물인 자연이 만들어 놓은 돌거북이가 모셔져 있다. 수석박물관은 풍수지리상의 명당자리 중의 하나인 금귀몰니형(金龜沒泥形)에 자리잡아 지어졌다. 금귀몰니형의 명당자리란 동양철학상으로 볼 때 '음의 기운'이 강한 곳으로 그런 곳에는 '양의 기운'이 강한 것과 합쳐질 때 무한한 '복스러운 기운'들을 발산하는 자리라고 해서 옛부터 '양의 기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는 관공서라든가, 학교, 도서관, 박물관, 사당 등과 같은 건물들을 지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터를 밟아주도록 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터를 밟은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고 하는 그런 곳을 말한다.

 

박물관 건물은 전체를 거북의 모양으로 설계하여 그 금구몰니형의 중심부에 안치해 놓았다. 50m가 넘는 건물의 입구에서 부터 끝까지가 한 장의 조그마한 유리를 통하여 모두 보이는 구조로 지어져 있다.
(휴게실 = 머리, 본전시실 = 몸뚱이, 제1.2.3전시실 = 다리, 시인의 집 =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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