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강원도

동해팔경

by 구석구석 2022. 9. 23.
728x90

동해팔경 [東海八景] 두산백과사전보기 

동해8경이란 무릉계곡/천곡 천연동굴/추암해수욕장/삼화사/두타산성/관음사/청옥산/문간재를 말하기도 하고, 능파대(추암촛대바위), 용추폭포, 무릉반석, 망상명사십리, 천곡천연동굴, 만경대, 호해정·할미바위, 초록봉을 말하기도 하나 두타산주변과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절경이다.

 

무릉계곡

 -추암에서 차량으로 20분거리에 위치한 무릉계곡은 삼화사(三和寺)에서 상류 약 2km 구간의 계곡을 가리킨다.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태고의 전설이 깃든 기암절벽과 폭포를 품고 있다. 1977년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될 만큼 수려한 경관과 이 곳을 찾는 시인 묵객들의 기념각명(刻名)이 있는 무릉반석(盤石)을 시작으로, 용추폭포(龍湫瀑布)와 쌍폭(雙瀑)이 장관을 이룬다.

무릉계곡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무릉반석은 석장암동이라고도 하며 1,500평정도 된다. 주변의 기암괴석과 함께 자연절경이 장관을 이루고 암석에 새겨진 기념각자의 석각이 이채롭기도 하다. 1571년 봉래 양사언이 반석상에 새긴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이란 12자와 하행방서로 옥호거사서 신미중춘이란 초대형 석각이 있어 옛 선인들의 풍류를 엿볼수 있다.

-학소대~쌍폭포~병풍바위~용추폭포를 잇는 왕복 1시간30분가량의 산행을 하다보면 ‘무릉’이란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천곡동굴은 총길이 1,400m의 석회암 수평동굴로, 4~5억 년 전에 생성된 천연동굴이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시내 중심부에 있는 동굴로, 1991년 6월 천곡동 신시가지 기반 조성 공사 때 발견되어 총 1,400m 가운데 700m가 개발되었고 나머지 구간은 보존지구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천곡동굴입구

 동굴 내부는 한국에서 가장 긴 천장 용식구, 커트형 종유석, 석회화단구, 종유폭포 등과 희귀석들이 어우러져 있으며, 동굴 입구에는 우주생성과 동굴 생태계 전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전시관과 영상실을 꾸며놓은 자연학습관이 있다.  

주변에 무릉계곡, 망상해수욕장, 추암 촛대바위 등 관광명소가 있고 관람료는 어른1,500원이며 동굴영화관람 20분 내부관람에 30분이 걸린다. 

 (동해=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인 황금박쥐가 23일 오후 5시께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굴에서 발견됐다.
천곡동굴관리사무소에 따르면 멸종위기의 포유류인 황금박쥐는 희귀종으로 1996년 6월 동굴입구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2004년 11월 1일에 이어 3년여 만에 이날 출현했다 관람객에 발견됐다.
국내 유일의 도심속에 위치한 천곡동굴이 황금박쥐의 상시 서식처로 자리잡았으며 동굴내부와 주변의 자연환경이 황금박쥐의 서식에 알맞게 잘 보전된 결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천곡동굴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황금박쥐의 서식이 알려지더라도 위협받지 않도록 철저한 보호와 관리에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추암해수욕장(촛대바위) 

-강원 동해 동해시 북평동 추암해수욕장은 애국가 첫 소절의 촛대바위에 걸리는 추암의 아침 해돋이는 동해팔경의 첫째로 꼽힌다.절묘하게 생긴 촛대바위 칼바위 해금암 등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뤄 ‘제2의 해금강’으로 불려 전국의 사진 애호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해돋이 명소 중 하나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두 주인공이 처음 거닐던 바닷가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이섬 용평리조트 춘천 등에 이어 새로운 한류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추암해수욕장 blog.naver.com/gmlwjd0606

 

망상해수욕장

묵호 북쪽 4km, 옥계(玉溪) 남동쪽 4km 지점에 있으며, 도(道)가 지정한 국민관광지이다. 

해안은 북쪽 용바위에서 남쪽 대진(大津) 암초까지 너비 500m, 길이 5km의 좁고 긴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수심이 깊고 파도가 거세어 해수욕장의 개설이 지연되었으나, 북평 임해공업단지와 묵호항(港)의 시설 확장과 더불어 강릉∼삼척 간을 연결하는 해안 관광지로 적합하여 급속한 발전을 보였다. 연안 수역에는 오징어·소라·해삼·멍게·꽃게·광어 등의 해산물도 풍부하여 관광·피서객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삼화사강원도 동해시 삼화동(三和洞) 두타산(頭陀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642년(선덕여왕 11) 신라시대 자장(慈藏)이 당(唐)나라에서 귀국하여 이 곳에 절을 짓고 흑련대(黑蓮臺)라 하였다. 864년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절을 다시 지어 삼공암(三公庵)이라 하였다가, 고려 태조 때 삼화사라고 개칭하였으며, 많은 부속 암자를 지었다. 

1369년 절을 크게 확장하였는데,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중건하였으며, 1905년 의병(義兵)이 이곳을 근거지로 활약하다가 1907년 왜병의 공격으로 또다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중건하였다. 1977년 이 일대가 시멘트 공장의 채광지로 들어가자 중대사(中臺寺) 옛터인 무릉계곡의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약사전(藥師殿)을 비롯하여, 문화재로 신라시대의 철불(鐵佛), 3층석탑 및 대사들의 비(碑)와 부도(浮屠)가 있다. 

두타산삼척시의 영적인 모산(母山)으로서 신앙의 대상이며 예술의 연원(淵源)이라 하여 오십정산제당(五十井山祭堂)이 있고, 예로부터 가뭄이 심하면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두타산과 서쪽의 청옥산을 잇는 의가등(衣架嶝)은 병풍을 펼쳐놓은 것 같은 가경(佳景)을 이룬다. 

두타산성 -무릉계곡을 벗어나 왼편으로 난 가파른 산길을 타고 30분쯤 오르면 두타산성이다. 임진왜란때 의병이 장렬하게 산화한 난공불락의 천연요새인 이 곳의 낙락장송 한 그루가 바위틈에 뿌리박은 벼랑 꼭대기(해발 405m)에 서면 기암을 두른 절벽, 댕기 모양의 폭포 물줄기 등 한국화 비경이 360도로 펼쳐진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 5,000명이 백두대간을 넘어 강릉을 거쳐 이 지방으로 쳐들어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두타산성으로 피난하였다. 당시 의병들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남북 15리 절벽에 도열시켜 적에게 위세를 보이자 왜군들은 공격을 포기하고 백복령 방면으로 퇴각했다. 이들은 두타산성을 공략하기 위해 온갖 계책을 마련하던 중 지금의 삼화동 소(沼)에서 빨래하던 노파를 위협하여 두타산 오르는 뒷길을 알아냈다. 왜군은 이기령을 넘어 우회 침공하였는데, 이것은 의병들의 치밀한 계략이었고, 왜군들은 대부분인 4,500명이 전투 중에 사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병들의 희생도 만만치 않아 의병과 피란민을 합쳐 모두 5,000여 명이 전사했다. 

피아간 1만 명 가까운 인원이 사망하면서 당시 산성 아래 계곡은 온통 피로 물들었다고 한다. 피내골은 그렇게 해서 생긴 이름이다. 피내골 핏물은 삼화동 소까지 흘러내렸으니 이 소를 피소(파소) 또는 피굽이라고 부르고, 그리고 이때 의병들이 쏜 화살이 수없이 떠내려온 냇가는 살내(箭川)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 월간산 2005. 8. 23 조선일보 민병준기자

 

두타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두타산성은 石築이며,둘레 8607尺, 높이 5尺"이라는 기록이 있음. 태종 14년(1414년) 부사 김맹균이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조선 태조의 5대조 李安社가 몽고 침략때 두타산성에서 피신했다는 기록(조선실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축성의 시기는 조선 이전으로 보아야 할 것임. 고려 충렬왕때 이승휴(李承休)가 파직된 후 이곳에 은거 하면서 자신을 "동안거사(動安居士)라 칭하고, "帝王韻記(제왕운기)"를 집필했다고 한다. 후에 남하중이던 왜구의 주력부대와의 전투에서 3일간의 격전끝에 비밀통로가 누설되어 함락 당하여 성안의 주민들이 죽임을 당하였다는 기록이 "여지도서"에 남아 있음. 성의 규모 는 둘레 4175M의 타원형으로, 다른 일반 성과 달리, 지혜를 발휘하여 지형지물을 활용한 천연의 요새라는데 그 의의가 크다. 현재는 부분적인 석축만 남아 있다.

또한 북쪽으로 삼화사(三和寺)에 이르는 14km의 계곡에는 국민관광지인 무릉계곡, 조선시대 석축산성인 두타산성, 둥글게 패인 바위 위에 크고 작은 50개의 구멍이 있는 오십정(또는 쉰우물)을 비롯하여, 오십천(五十川)·학소대·옥류동·광음사·광음폭포·선녀탕·쌍폭포·천은사(天恩寺)·금란정·용추(龍湫)폭포 등의 명승 고적지가 있다. 수백 명이 앉을 만한 넓이의 무릉반석에는 조선 전기(前期) 4대 명필가의 하나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의 석각(石刻)과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을 비롯하여 수많은 명사들의 시가 새겨져 있다. 

 

 관음사는 신라시대에 이룩한 절로 본래 "관음사" 였으며, 신라 의상국사가 수도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수도장으로 영고성쇠를 거듭하여 오다가 조선 정조에 이르러 부사 윤숙이 중수(1780년)하고 "지조암(指祖庵)" 이라 하였다가, 그 후 주지 해룡이 다시 중수하고 관음암이라 하게 되었다. 옛 사람들은 "절벽을 사다리로 한 사람밖에 오를 수 없다" 햇거늘 60도 경사를 암벽을 타고 1키로미터 정도 올라가면 청옥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산중고도의 성역이다.

이 곳에서 보면 맞은편에 두타산성이 바라다 보이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계곡의 풍경은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며, 절터는 아늑한 보금자리를 연상케 한다.

 

청옥산

두타산과 연접해 있는 해발 1,403m로서 청명한 날에는 동해바다가 바라보이는 빼어난 설경을 자랑하며 많은 산악인들이 찾고 있으며 등산코스는 기암괴석과 폭포수가 한데 어우려진 무릉계곡을 지나서 갈수 있는 등산로가 여러갈래로 나 있으며 구간은 관리사무소로부터 정상까지 12Km구간으로서 4시간 30 분이 소요되며 주목군락지(학등)와 희귀한 동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용추폭포는 청옥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옥수로서, 상중하 삼연 (三淵) 으로 되어 있다. 상담과 중담은 독항아리 모양의 신비한 모양으로 되어 있고, 하담은 흑추비폭 (黑湫飛瀑) 으로 주위 30 미터 이고 그 깊이는 알지 못한다.

 중연에서 절벽으로 떨어져 흰 명주천에 구슬이 달린 것 같은 신비한 모습이 절경이다. 하늘에서 비롯되는 듯 높은 수원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용추폭포를 이루면서 그 위용을 자랑하고나서 두 갈래로 갈라져 쌍폭포에서 다시 만남은 마치 자연의 섭리를 보는 듯 하다. 이 물은 다시 하류쪽 선녀탕으로 흐르고 이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선녀와 같이 아름다운 미모와 마음을 갖게 되기를 기원하도록 한다.

 

만경대

 만경대주 8경의 하나이며 광해군 5년(1613년)에 김훈이 첨정 벼슬에서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와 창건한 정자로 서쪽으로는 동해시의 영적모산인 두타산, 동쪽으로는 동해항, 정자 아래로는 동해시의 젖줄인 전천이 구비쳐 흘러 삼척의 죽서루와 쌍벽을 이루면서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한다. 

현종 원년(1660년)에 삼척부사 허미수가 경관이 수려하여 만경이라 불렀고 그후에 만경대로 바뀌었다. 판서 이남식의 해상명구 현판이 있고 정면에는 향토명필 옥람 한일동의 만경대 액판이 있다.   

호해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기와 지붕양식의 건축물로 1945년 조국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일헌 최덕규외 75명의 춘추계원이 창건한 호해정에는 명필 김정희, 홍낙섭의 현액이 있다. 앞으로는 전천강이 갯목과 함께 운치를 이루고 있으며 뒤로는 동해바다와 맞닿은 해안을 따라 기암괴석이 펼쳐져 있다. 또한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해안절벽 위에는 직경 2.5m의 흔들바위가 올라앉아 율동을 하고 있는데 이 바위를 할미바위라 한다. 

심술궂은 마귀할미가 바닷속으로 굴러 떨어뜨린 바위를 마을사람들이 제사를 지내고 다시 올려 놓았더니 용왕님이 벼락을 내려 그 마귀할미를 벌하였다 하여 할미바위라 이름지어졌다. 

할미바위는 애를 못 낳는 사람이 바위를 흔들면서 빌면 아들을 낳게 해 주지만 부정한 사람이나 정성이 부족한 사람이 빌면 절대로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초록봉일출 산행지로 손색없는 명산 백두대간 상의 백복령에서 동쪽으로 뻗은 지맥이 동해바다를 굽어보는 곳(북위 37˚31´19″ 동경 129°04′13″)에 솟은 산이다. 옛날에는 나무하러 다니던 초로의 산, 소원을 빌러 다니던 비나리의 산이었으나 지금은 일출 산행지로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명산이다. 

백두대간의 연봉 청오간의 한 봉우리로 수목이 울창하고 계곡과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등산로이자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그 옛날 하느님이 혼탁한 세상에 장수를 보내어 세상을 바로잡게 하였다 하고 임무를 완수한 장수가 하늘로 승천하기 위하여 힘껏 발디딤을 하였는데 그때 남겨진 장수의 발자국이 아직도 2개의 바위에 남아 있다는 전설이 있고 오늘날에도 소원을 빌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 자료 - 헤럴드 생생뉴스 2005. 12. 29/ 네이버 '백과사전' '지식iN'/ 드림위즈 'jitlove'/ 네이버 블로그 'ilajio79'/ 강원일보 2004. 6. 25 박영창기자

 

728x90

'방방곡곡 > 강원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성팔경  (1) 2022.09.26
강원팔경  (1) 2022.09.23
강릉팔경  (1) 2022.09.22
강릉 7번국도 경포대 경포8경  (0) 2022.09.06
영월여행지  (0) 2022.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