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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군위 화본리 화본역 화본마을

by 구석구석 201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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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군 산성면 산성가음로 711-9(화본리 1224-1) 화본역

가끔씩 지금의 10, 20대들을 만나면 ‘이 친구들도 어린시절의 추억이란 게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매일 학교, 집, 학원, 집으로 쳇바퀴 도는 생활만 해 왔던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 추억이라는 것은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지금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이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 군위 화본역과 화본마을 일대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화본역

대구에서 한티재를 넘어 철길 건널목 하나를 지나면 벽화들이 관광객을 반긴다. 내용을 자세히 보니 다들 ‘삼국유사’에 관한 내용들이다. 단군왕검 설화부터 주몽과 소서노, 도화녀와 비형랑 그림까지 테마로 그려져 있다. 그림체도 귀엽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 스님에 대한 그림도 많다. 차에서 내려 벽화가 있는 길을 쭉 걸어봤다. 벽화를 감상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자칫 벽화를 좀 더 잘 보려고 한 발 두 발 차로 쪽으로 가다 보면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못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화본역 앞에 서자 우리가 기차역 간판이라고 생각하는 파란색 바탕의 코레일만의 고딕 글씨체가 아닌 붓글씨로 큼지막하게 한 글자씩 써 놓은 간판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궁서체로 쓰인 ‘화본역’이라는 간판과 삼각지붕의 역사 건물이 “옛날 역은 이렇게 생겼어”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역사 안으로 들어서면 좁은 대합실과 나무로 만든 천장, 미닫이문에서 옛날 역의 정취가 느껴졌다. 대합실 한쪽에 마련된 역장`차장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는 아이들은 좁은 대합실과 역을 보며 신기해했다. KTX가 서는 크고 번쩍거리는 기차역이 전부였던 아이들에게는 신기할 만도 했다.

 

입장료 500원을 내고 플랫폼 안으로 들어가 봤다. 하루에 상`하행선 합쳐서 여섯 번밖에 기차가 서지 않는 곳이다 보니 플랫폼은 한적했다. 플랫폼 너머 펼쳐진 논밭은 아직 농사가 시작되지 않은 탓에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곧 봄이 되고 여름, 가을이 오면 역 플랫폼에서 모내기하는 모습과 황금 들녘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플랫폼에서 보니 멀찍이 탑 하나가 서 있다. 플랫폼 뒤로 난 길을 따라 탑으로 가 봤다. 이곳은 한때 증기기관차가 물을 공급받던 ‘급수탑’이다. 1930년대 만들어진 이 급수탑은 1970년대 디젤기관차가 도입된 이후 더 이상 사용 목적을 찾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급수탑과 급수탑을 감싸고 있는 담쟁이덩굴, 그리고 마을 주변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냈다. 급수탑 안에 들어가 봤다. 한창 증기기관차가 달릴 때 쓰였을 ‘석탄정돈, 석탄절약’이라는 글씨는 관광객들의 낙서 속에 슬슬 지워져 가고 있었다.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엔 말이지…

화본역을 나와 ‘역전상회’ 앞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추억박물관-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전시관이 나온다. 지금은 문을 닫은 산성중학교 부지를 이용한 곳으로 ‘추억 느끼기 테마파크’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입장료 2천원(청소년`어린이 1천500원)을 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봤다. 중앙 복도를 지나 왼쪽에는 옛날 교실, 옛날 다방을 재현해 놓았다. 한쪽에는 옛날 물건들이 전시돼 있었다.

 

교실로 들어가자 어릴 때 쓰던 나무 의자, 책상이 관람객들을 반겼다. 이제는 커버린 몸을 제대로 받쳐주지도 못하는 책걸상에 앉아 추억을 곱씹는 관람객이 있는가 하면, 교탁 옆 풍금을 연주하며 “아이고, 옛날에는 잘 쳤었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네”라며 지난 세월을 한탄하는 관람객도 있었다.

 

옛날 다방 옆 추억의 물건을 전시해 놓은 자료실에는 관람객들이 추억을 되새길 만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교련 때 쓰던 목총, 포니 픽업트럭, 콘크리트 벽돌을 찍어내던 틀, 다이얼식 전화기 등 어렸을 때 봤던 추억의 물건들과 그에 얽힌 추억을 나누느라 관람객들의 수다는 끊이지 않았다. 노명덕(49`칠곡군 석적읍) 씨는 “예전에 사촌형이 몰던 포니 픽업트럭과 똑같이 생긴 트럭이 여기에 있다”며 “눈에 익은 물건들이 많아 추억이 자꾸 되살아나는 듯하다”고 말했다.

 

건물 오른쪽에 마련된 옛날 동네와 골목길을 재현해놓은 세트 또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특히 관람객들의 관심을 끈 곳은 마을 공동화장실이었다. ‘열어보실래요?’라고 돼 있는 문구에 문을 열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라며 웃었다. 도대체 뒷간에 뭣이 있나 싶어 열어봤다. 아이코, 큰일을 보는 아이에게 큰 실례를 범했다.

 

운동장은 추억 체험의 장소였다. 양은냄비에 파는 우동과 라면으로 한 끼를 채울 수도 있고, 추억의 과자를 맛보며 초등학교 주변 문방구의 추억을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걸 다 제치고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달고나 만들기’였다. 부모와 자녀가 설탕이 가득 담긴 쇠 국자 하나씩을 들고 연탄불 주변에 둘러앉는다. 설탕이 녹기 시작하니 나무젓가락으로 연신 저어대더니 다 녹았을 때쯤 주인아주머니의 지도에 따라 소다 약간을 넣어 젓는다. 굳기 시작할 때쯤 동그랗게 만들어 판에 붓고 그 위에 별, 음표, 비행기, 만화 캐릭터 모양을 찍는다. 어른들도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나무젓가락으로 녹아가는 설탕을 열심히 휘저었고, 아이들은 ‘설탕과 소다로 어떻게 맛있는 걸 만든다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지켜보다 어머니가 떼어주는 달고나 한 조각에 “너무 맛있다”며 웃음 짓는다.

 

화본역과 화본마을에 오면 ‘추억은 힘이 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화본마을이 재현한 시절은 모두가 춥고 배고프고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화본마을을 찾는 이유는 아마도 삶이 팍팍하고 힘들지만 힘들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지금의 어려움을 잊으려 하는 데 있는 듯하다. 화본마을은 어른들에겐 추억과 향수를, 아이들에겐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이었다.

 

자료 : 매일신문 2014.3 이화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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