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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남도

화순 22번국도-칠충각 화순향교

by 구석구석 2009.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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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293 화순향교 061-372-0866

 

 

 

화순군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화순향교는 조선 세종때인 1433년에 창건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전면에 명륜당을, 후면에 대성전을 배치한 일반적인 배치 형식을 따랐다. 이곳에서는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을 모셔두고, 1년에 2번 지방 유지들이 모여 제를 지낸다.

 

특이한 점은 배면에도 퇴간을 설치하여 통행을 자유롭게 하였다. 장혀는 호형을 그리며 내려 뻗은 모양으로 익공식 주심포 양식인데 뒷면은 포작을 하지 않았다.내부는 5량식이고 연등천정이다. 창호는 중앙3칸만 설치하고 양 1칸은 토벽으로 처리되었으며 중앙 1칸은 2분합 띠살문이며 양1칸은 외짝문에 띠살문을 하였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향교건물의 원형을 잘 살리고 있다. 이곳 대성전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3호로, 화순향교 만화루는 문화재 자료 제6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형적인 향교건축으로 세종 15년(1433)에 대성전, 명륜당, 만화루가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그 후 선조 30년(1597)에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것을 광해군 3년(1611)에 화순 현감 이인전이 재건하였으나 전란 후의 재정 부족으로 대성전만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인조 25년(1647) 홍명하가 화순현감으로 재직시 대대적으로 중건할 때 만화루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순향교에는 지방유형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성전을 비롯하여, 명륜당, 만화루, 동·서재, 외삼문 등이 있다. 만화루는 유생들의 하기 강학처와 향시장(鄕試場)으로 쓰인 호남 유일의 항교누각이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누각으로 지붕은 홑처마 팔작집이다. 누의 윗층 바닥 높이는 기단으로부터 170cm 정도로 다소 높은 위치에 우물 마루를 만들었다. 윗층에 오르는 계단을 아랫층의 중앙부동편에 두어 위아래로 통행이 편리하고 위아래층 모두 창호나 벽체가 없이 개방되어 누의 모습이 시원하고 단아하다.  

 

 

출처 : 화순군청

 

대리 335 대리석불입상 전남문화재자료243호(2004.2.13)

 

이 석불은 돌기둥에 가까운 자연석을 사각형으로 대충 다듬은 뒤 앞쪽에 얼굴부분만 돋을새김을 하고 나머지 턱 밑으로 내려온 동체부분은 선각으로 처리하였다. 주변의 지형을 살펴보면 절터로 추정할 만한 건물지 또는 이와 유사한 유구를 발견할 수 없다. 다만 동쪽으로 약 500m 떨어진 평지에 이 고장 출신인 진각국사(송광사 16국사중 제2세) 탄생 설화와 관련된 학서정이 있다.

석불의 상호는 사각형에 가까우며 육계는 나타나지 않았고 삼도(三道)도 없다. 예리한 눈썹과 눈, 장승에서나 볼 수 있는 넓적한 코, 입은 호형을 그린 일자형을 하고 있다. 턱과 목이 구분되지 않고, 또 목 부분이 바로 어깨로 연결되는데 이러한 기법은 조선시대 후기 석장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이다. 옷 주름은 매우 형식화되었으며 오른손은 가슴 앞에 대고 왼손은 배 아래로 내려 연꽃을 들고 있다. 이 석불의 도상적 특징을 보면 보살상이다. 두 손에 연꽃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관세음보살로 볼 수도 있겠으나 보관이 없어 분명치 않다. 머리 윗부분에 육계를 생략하고 민머리로 처리한 것을 보면 지장보살일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이 석불이 위치한 장소가 옛날 보성과 화순을 지나는 길목으로 통행인이 빈번한 곳으로서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불상을 길거리에서도 쉽게 대함으로써 개인의 기복과 동리의 안녕을 비는 불상 즉, 민불(民佛)로 불리어진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는 조선시대 후기 불교와 민간신앙이 습합된 예라 할 것이다. 화순 대리 석불입상은 민간신앙과 관련된 조선후기(18~19세기) 석불로서 불교문화와 신앙, 민간신앙과의 습합 등의 측면에서 볼 때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있다.

 

대리1구 전남문화재자료65호 칠충각

화순제일중학교인근에 위치

 

칠충각은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때 화순에서 의거한 평택 임씨 칠종 형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고종 13년(1876)에 건립한 것이다. 병자호란 때 의거한 인물은 임시계, 임시태, 임시민, 임시운, 임시준, 임시익, 임시약 등으로, 이들 종형제는 화순의병과 함께 청주까지 진군하였다.

 

 

그러나 인조임금이 청의 태종에게 항복한 소식을 듣고 국가에 충성하지 못함을 통탄하고 귀향하여 은거생활을 하다가 일생을 마치니 고종 13년 (1876)에 이들의 충성을 높이 치하하여 벼슬을 추증하였는데, 임시계에게 예조참의(정삼품), 임시태에게 좌승지, 임시민에게 예조참의, 임시운에게 호조참의, 임시준에게 좌승지, 임시익에게 좌승지, 임시약에게는 호조참의를 추증하고 칠충각을 건립하게 했다.

 

현재 문화재자료 제 65호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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