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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한강유역

남양주 사능리 석화촌 사릉

by 구석구석 2009.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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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사적 제209호 사릉(思陵) 031-573-8124(문화재청 사릉지구관리소)

하절기 : 09:00 ~ 17:00 / 동절기 : 09:00 ~ 16:00 / 월요일휴관 / 무료입장가능(사전연락)

남양주 사릉은 조선 6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 씨의 능이다. 사릉 전경./ 문화재청

조선 제6대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으로 사적 제209호로 지정되었으며 남양주시 진건면 사능리에 소재하고 있다. 정순왕후(1440∼1521)는 조선 500년의 수많은 왕후와 후궁들중 가장 한 많은 여인으로, 성품이 공손하고 검소하여 1454년(단종 2)15세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수양 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후 단종을 상왕으로 모시면서 이덕대비로 봉해졌다. 그후 1457년(세조3)사육신의 단종복위 사건이 일어나자 세조는 이를 문제삼아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영월로 유배시키고, 정순왕후도 부인으로 강봉되어 궁월에서 추방당했다.

남양주 사릉의 소나무들이 하나 같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이는 능 주인인 정순왕후가 남편인 단종이 묻혀있는 동쪽의 영월 쪽을 바라봐서라는 설이 있다. 남양주 사릉 능침.ⓒ문화재청

단종이 죽자 홀로 된 왕후는 동대문 밖 숭인동의 동망봉에 아침 저녁으로 소복하고 올라 단종이 묻힌 장릉을 바라보며 통곡 하였다고 하며, 세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줏물을 들이는 염색업으로 여성을 때묻히지 않고 살았다 한다. 

사릉의 능침의 문석인과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은 정종의 후릉(厚陵)의 능제에 따라 작게 조성했다. 남양주 사릉 장명등과 혼유석. / 문화재청

1521년 (중종 16)82세의 일기로 승하 하자 중종이 대군부인의 예로 장례를 지냈는데 후사가 없었으므로 단종의 누님 경혜공주의 시집인 정씨 집안의 묘역에 묻혔다가 177년이 지난 1698년(숙종 24) 단종이 복위되면서 정순왕후로 추봉되어 종묘에 신위가 모셔졌고 능호를 사릉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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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릉은 대군부인의 예로 장사지낸 뒤 나중에 왕후의 능으로 추봉되었기 때문에 다른 능들에 비해 조촐하게 꾸며졌다. 능 주위가 소나무 숲으로 둘러져 있어 전체적으로 아늑하고 단아한 느낌을 주는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정자각에서 내려와 홍살문 오른쪽에 만들어진 소나무 숲길은 누구도 걷기 좋다. / 남양주시청

조선 6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의 능 정자각에서 내려와 홍살문 오른쪽에 만들어진 소나무 숲길은 누구도 걷기 좋다. 무엇보다 잘생긴 소나무들이 능침 뒤편으로 많고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 사릉 정문까지 이어져 있다.

 

또한, 사릉을 둘러보고 내려오면서 소나무 숲길을 잠깐 걸으면, 문화재청이 관할하는 궁과 능에 필요한 나무를 기르는 양묘사업소 묘포장이 있어서 까실쑥부쟁이 꽃과 등나무 등 다양한 전통 수종의 식물들을 볼 수 있다.

 

아울러 사릉 역사문화관에서는 상영시간 6분 49초의 영상으로 정순왕후의 이야기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사릉의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이 밖에도 2km 남짓한 거리에 홍유릉이 있다. 홍유릉에는 고종과 명성황후, 순종과 원후순명황후, 계후 순정황후의 능이 모여 있으며,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조선 왕족의 원과 묘를 만날 수 있다.

 

 

ㅁ 석화촌(사능1리 209-1 / 031-574-8002

불고기전골을 판매했으나 2019년부터 음식점은 폐업했으며 해마다 5월이면 영산홍과 철쭉이 만발, 별천지를 이룬다. 

1만 2천 평의 야산과 언덕에서 자리는 영산홍 종류는 오렌지색에 붉은 색을 섞은 것 같은 빛깔의 원조 영산홍,진자색이 도는 자산홍,흰빛의 백영산 등 2만여 그루.그 중에 250년을 넘었다는 영산홍은 주인이 1,500만원이나 들여 지방에서 사 온 것이다. 이들은 5월 초부터 말경 무렵까지 번갈아가면서 피고 지며 아름다운 자태를 쁨낸다.

영산홍은 어떤 꽃일까 진달래과에 속하는 관목으로 진달래나 철쭉과 겉모습이 비슷하다. 그러나 영산홍은 이들에 비해 붉은 빛이 더 선연하다. 꽃이 한 번 피어나면 열흘 정도 찬란한 빛을 발한다. 그러다가 꽃이 질 때면 벚꽃처럼 이파리가 하나 둘씩 바람에 흩날리는 것이 아니라 동백꽃처럼 통째로 낙화한다.

나무 밑에 점점이 수놓인 낙화를 보는 것도 놓치기 아쉬운 이름다움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영산홍이란 꽃은 화살처렴 피어났다가 님 떠나보낸 열 여덟 처녀의 굵은 눈물 방울처럼 뚝뚝 떨어진다’고 표현한다. 예로부터 대갓집의 정원수로 주로 길러지던 영산홍만으로 이처럼 크게 조성된 농원은 아마도 석화촌이 세계 유일일 듯싶다.

철쭉도 적잖은 면적에서 자라 5월 초순부터 7월 초순까지 두 달 동안 종에 따라 번갈아 피고 진다. 영산홍과 철쭉 사이사이로 피어나는 꽃들은 꽃잔디, 원추리, 수선화, 나리꽃, 옥잠화 등 다시 말해 석화촌에서는 봄부터 늦가을 서리 내릴 때까지 하루도 쉬는 날 없이 꽃이 피어난다.

 

석화촌에는 꽃만이 아니라 나무도 많다. 단풍나무, 양살구, 앵두, 매화, 은행나무, 주목 등이 대표적인 수종이다. 꽃과 나무 사이에는 해태, 돌거북, 효자비, 돌사자, 석등, 불상, 남근석 등 석물도 대단히 많다. 농원 한 가운데에는 작은 연못이 있어 여름이면 연꽃도 자태를 드러낸다.

석화촌이라는 농원을 조성한 사람은 동국대 전신인 혜화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젊은 날 체신부 공무원 생활을 하기도 했던 김동식씨. 중곡동에서 농사를 지었던 김씨는 그 땅을 팔고 10여 년 전 이곳으로 들어와 영산홍농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는 신선들이 산다는 봉래산을 염두에 두고 이 농원을 조성했다. 도시인들이 편안히 와서 흙도 밟아보고 꽃도감상하면서 삶의 피로를 씻고 가는 것을 보는 게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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