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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남도

세종시 전의면-관정리 사관정마을 전의약수

by 구석구석 2008.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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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정리55 사관정

 

전의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2km 되는 관정리 사관정부락 뒷산 끝자락에 위치하며 조선시대 숙종시대때 대사헌을 지낸 이상이 건립한 정자(관상, 관농, 관수, 관어)로 뇌암서원 원생들의 놀이터 였다고 한다. 1962년 후손인 이공무씨가 중수하여 현재 어른들의 휴식처로 사용되고 있다. (정면 2간, 폭 1간)  

 

 

관정리 149번지 향토유적 제 46호(2004.3.9) 전의약수

세종실록에 의하면 한글 창제를 위하여 밤 맞 없이 노력한 세종대왕은 눈병으로 인하여 괴로워 하였다.
온갖 방법으로 치료를 하였지만 오히려 병은 악화되어 정사를 친히 다스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종 26년(1444년)1월 27일 어떤 사람이 와서 보고하기를 청주 목천 전의에 후추맛과 같은 약수가 있는데 여러 가지 병을 고친다 하였다. 세종대왕은 기뻐서 가까운 청주 초수(초정약수)에 행궁을 짓게 하고 치료를 하였으나 처음에는 낮는 듯하다 전과 같았다.


이번에는 전의 초수에 행궁을 짓게 하고 치료를 하고자 명을 내렸다 그러나 가뭄이 심하여 백성의 고초가 심하자 세종대왕은 행궁 짓는 것을 중단하고 다른 방법으로 치료를 명하였다 이에 전의 초수를 궁궐로 떠울리는 방법을 택하는데 시간을 지체하면 약의 성분이 날아간다.


전의에서 궁궐까지 250리나 떨어져 여러날 걸리나 이를 줄여 하룻밤만에 궁궐에 도착해야 약효를 낼 수 있기에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한다. 빠른말과 사리에 밝은 사람을 감고로 건장한 사람을 압직으로 선발하여 전의 약수는 입직을 서고 감고가 매일 해질 무렵 떠서 봉한 뒤 서명하여 압직에게 인계하여 신속하게 하룻밤만에 궁궐로 올리는데 이들에게는 함부로 단속해서도 안되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1444년 7월 4일에서 1445년 4월 13일 까지 매일 궁궐로 떠올려 치료한 결과 눈병을 완쾌하였다. 세종대왕은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큰상을 내렸으며 병을 고친 전의 초수는 왕의 물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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