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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북도

옥천읍 각신리 각신서당 이지당

by 구석구석 2008.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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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 군북면 이백6길 126 / 의병장 조헌-이지당(각신서당)

옥천읍 각신리, 소옥천의 물줄기를 다라가면 냇가에 멋스러운 옛집이 보인다. 의병장 조헌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원래는 각신서당이었으나 송시열이 이지당(二止堂)으로 바꾸었다. 이지당(二止堂)은 시경(詩經)의 '고산앙지(高山仰止) 경행행지(景行行止)'에서 따온 말인데, 이는 "높은 산을 우러르고, 아름다운 행동을 따라한다"는 뜻이다.

조헌은 무엇보다 의(義)를 중히 여기고 실천하였다. 집안에서는 부모에게 효를 다하였으니 부모가 모두 돌아가신 뒤에 홀로 된 계모를 모시는데 조금도 소홀하지 않았다. 높은 관직을 마다 하고, 보은현감을 자청하여 내려온 것도 홀로 된 계모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율곡이 죽은 뒤에는 보은현감마저 내놓고 옥천군 안내면에 후율당을 지어 후학을 가르치는데 몰두하였다. 뒤에 몇 번 조정에 나갔으나 심해지는 당파싸움에 혐오를 느껴 다시 옥천으로 내려와 각신서당을 지었다. 조헌은 평소 일본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해에는 도끼를 메고 대궐에 나가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은 곧바로 격문을 띄워 의병을 모으고 영규대사, 의병장 박춘무 등과 함께 청주성을 공격하여 탈환하였다. 그리고 충남 금산으로 나아가 왜군을 공격하였다. 이때 관군도 싸움을 기피하고, 다른 의병부대의 지원도 없어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조헌은 의병들에게 "끝가지 의로움만 생각하라"고 독려하며 왜군과 사웠다. 그리고 마침내 700여의병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조헌의 묘소는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에 있으며 묘소아래에 표충사가 있다.

 

 

사진출처 방윤창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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