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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남 섬

신안 장산도

by 구석구석 2008.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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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39.2km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동에는 시하(時下)바다를 사이에 두고 해남 화원 반도로, 남쪽은 바다 건너 진도로, 서쪽은 하의도로, 북쪽은 안좌도로 둘러싸인 섬이다. 산 줄기가 오음산에서 배미산을 거쳐 대성산에 연결되고, 여기서 비둘기산, 부학산, 동교 뒷산을 거쳐 활목까지 산줄기가 끊기는데 없이 길게 연결되었다고 하여, 장산(長山)이라 칭한다. 높은 산은 없고 산이나 구릉지를 개간하여 밭을 일구고 간사지를 매립하여 논과 염전을 만들어 미맥(米麥)위주의 영농을 하고 있으며,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강우량이 풍부하기 때문에 식물이 잘 자라서 각종 농산물이 생산되고 있다. 어업은 발달하지 않았고, 천해(淺海)의 갯벌을 이용해 연안에는 해태양식업이 활발하다.

장산도는 신안군의 섬들 가운데 가장 남단에 위치하여, 해로를 통해 원해(遠海)로 나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그 역사·문화적 성격은 과거로 올라갈수록 그 의미가 커지는데, 조선시대보다도 고려시대나 통일신라시대, 더 올라 가서는 마한, 삼국시대의 비중이 훨씬 컸으며, 이는 바로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해상 교역로가 크게 발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잇는 가장 전통적인 항로는 노철산수로였는데, 노철산수로는 산동반도의 연대로부터 2백여 개의 섬들이 줄지어 있는 발해만을 건너 요동반도의 끝부분 여순, 대련 그리고 압록강하구를 거쳐 한반도 서해안의 육지를 따라 서남해안의 다도해섬들 사이를 바짝 붙어 항해하는 항로이다. 해안을 따라가는 이 항로는 비교적 순탄하여, 예로부터 소형 선박도 안심하고 항해할 수 있는 뱃길로 꼽혔으며, 서남해 섬 지방들은 이러한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일본을 잇는 해상교역로의 중심이 되어 육지보다도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궁성에서 일어난 일도 다른 육지지방에서는 몇 달이 걸려도 알지 못하는 일들을 이 지역 섬 지방에서는 일주일이면 알 수 있었다고 하니 물산 뿐 아니라, 정보의 교환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때 장산현이 들어서기도 했던 장산도는 서남해 섬 지방의 행정중심지이기도 했던 까닭에 갖가지 역사 유적들이 많다. 도창리 우실잔 등에는 장구한 세월을 증언하는 노거수림(101그루)이 장산도의 오랜 역사를 증언하고 있으며, 또한 장산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지방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된 '장산도 들노래'이다. 모심기철에 풍년을 기원하며 부르는 '장산도 들노래' 는 이 고장에서만 부를 수 있는 특유한 가락인데, 각 장마다 다양한 가락에 변화가 있고 중모리에서 중중모리로 넘어가는 구성진 들노래이다. 장산도 들노래는 경쾌하면서도 외로운 섬 마을의 애수적인 한이 서려 있고, 내면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신안의 대표적인 민요로서, 1981년 11월 11일 제 12회 남도문화제에 출연 최고상을 수상하였고, 1982년 10월 26일 제2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다. 지금도 강부자 씨를 비롯한 기능보유자와 전수자들에 의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해마다 방학때가 되면 전국 각지의 대학생들이 '장산도 들노래'를 배우러 오기도 하는데 공수리에는 장산도 들노래 전수관 1동과 노래비 1기가 있다. 장산도 들판에서는 이 외에도 하중밭매기노래, 씻김굿, 길쌈노래들이 불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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