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경상북도

봉화 석현리 각화산 각화사

by 구석구석 2007. 12. 6.
728x90

 경북 봉화군 석현리

 

봉화는 경상도 땅이다. 하지만 강원도 냄새가 짙게 난다. 태백시와 영월군 남쪽에 맞붙어 있어서인지 강원도나 다름없는 험준한 산악 지대가 대부분이다.


청옥산.묘봉.오미산.비룡산.각화산.왕두산.시루봉.옥돌봉.문수산.장군봉 등 해발 1천m가 넘는 고봉만 10여개다. 게다가 봉화군의 북쪽으로는 백두대간이 지나간다. 태백산을 거쳐 내리뻗은 백두대간이 신선봉(1천3백5m)~구룡산(1천3백46m)~도래기재~옥돌봉(1천2백42m)~박달령~선달산(1천2백36m)을 이어 달린 다음, 소백산으로 웅대한 산줄기를 넘기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봉화 북부 지방의 산세는 깊고도 험하며 평균 기온이 매우 낮다. 백천계곡이나 반야골 등지의 단풍이 설악산 계곡보다도 일찍 물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백산과 신선봉을 잇는 백두대간에서 남쪽으로 5km 지점에 각화산(1천1백77m)이 솟았다. 등산인들이 즐겨 찾는 산이 아니지만 남쪽 자락에 고찰 각화사를 품은 점으로 보아 명산임에 틀림없다.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각화사는 보물급 문화재를 거느리지는 않았으나, 짙은 숲에 휩싸여 산사의 정취가 물씬하다. 지금의 규모는 아담하지만 조선 정조 때는 8백여 승려가 수도한 거찰이었다고 전한다.


각화사는 예부터 난리.기근.질병이 없는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로 꼽혀 왔다. 이 천혜의 지형을 이용해 절 북쪽 3km 지점에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 사적 제348호)를 설치하고 60명의 수직군(守直軍)과 20명의 승군(僧軍)이 각화사에 배치되기도 했다. 그러나 1910년 무렵 일본군과 의병이 이곳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면서 태백산사고 건물은 불타 없어졌다.


이 사고지는 1606년에 건립하여 약 300여년간 조선 왕조실록을 보관하여 왔었다. 조선왕조실록은 848책으로, 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 조선총독부, 경성 제국 대학으로 옮겼다가 지금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중이다.

 

사고지의 건물 배치는 능선에 둘러싸인 경사진 지형에 남쪽으로 축대를 쌓아 실록각과 선원각을 타원형의 담장안에 동-서로 배치하고 담장 밖으로 포쇄각(추정)근천관이 있어, 따로 떨어져서 70m높이의 대지위에 한채의 건물이 있었다.

 

각화사는 사시사철 운치가 빼어나다. 절 주위를 감싼 높은 산들과 울창한 수풀이 아늑한 분위기를 선사하며, 특히 2km 남짓한 진입로는 차 타고 휙 지나치기엔 너무 아깝다. 그이와 함께 손잡고 거닐기에 딱 좋은 아름다운 숲길이다. 각화사 오솔길은 꽃 피는 봄이든, 녹음 짙은 여름이든, 흰 눈 덮인 겨울이든, 철따라 색다른 낭만을 선사하지만 무엇보다 가을 풍경이 인상적이다.

각화사의 가을은 길다. 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략 10월 10일 무렵부터 단풍이 물들기 시작해 20일께에 절정을 이룬다. 그러다가 10월 말이 되면 빨간 단풍은 대부분 시들거나 떨어지고 노란 색조의 단풍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붉지 않으면 단풍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각화사의 가을을 찾는다면 그런 편견은 깨끗이 씻길 것이다. 오솔길 따라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빛 단풍, 그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붉은 색조와 상록수의 푸른 빛, 그리고 계곡 위로 소복소복 쌓인 낙엽…. 그이와 함께라면 새록새록 사랑이 깊어 가리라. 한데, 왜 이리 한적하기만 하지?

 

사찰 남쪽 약 200미터 지점에는 백월대사등 10존의 부도가 보존 되어 있으며 사찰 앞에는 삼층석탑 1기(基)가 있다. 각화사는 원래 춘양면 서동리 춘양중상업고등학교 교정자리에 람화사(覽華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원효대사가 이 절을 폐하고 현재의 자리로 옳기면서 람화사(覽華寺)를 생각하여 각화사(覺華寺)라고 명명하였다고 전한다.

특히 이곳은 삼재불입지(三災不入地)라 하여 조선 선조 39년(1606)에 사찰 북방1.1km 지점 각화산 중턱에 태백산 사고를 나라에서 건립하여 1913년까지 약 300여년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여 왔었다. 본 사고건물은 해방전후의 시기에 누군가의 방화로 소실되었으나 1988년 건물의 유구를 발굴하고 사고지를 정비하여 1991년 2월 26일 사적 348호로 지정하였다. 자료 중앙일보 신성순

 

소백산 거대한 산줄기 파노라마 장관

 

각화산 산행의 들머리와 날머리는 석현리와 각화사 입구다. 운동 겸 산행을 선호한다면 석현리에서, 원점회귀형 등산에 조선 5대 사고(史庫)지 중 하나인 태백산 사고지를 연계하려면 각화사에서 시작한다. 88번 지방도에 위치한 춘양을 지나, 각화사 이정표를 보고 오른쪽으로 꺾어 들면 과수원이 보인다. 그 너머 왼쪽 능선 끄트머리에 멋진 노송 몇 그루가 표지기 구실을 한다.

 

왼쪽 임도를 따라 오르면 작은 저수지가 나타나고 산소 쪽으로 등산로가 열린다. 산소를 통과하면 동물들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려고 고압 철삿줄이 등산로를 막고 있다. 전류가 흐르는지 확인하고 본격적인 등산에 나선다. 초입부터 오르는 길이 녹록지 않다. 송이가 제철인 9월 중순까지는 등산로를 통제하기도 한다.

 

이곳 각화산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춘양목(春陽木). 금강송으로도 불리며 ‘소나무 중의 소나무’, ‘백목의 왕’(百木之王)이라 불린다. 주산지가 태백산 자락의 봉화군 춘양면과 울진군 서면 일대라 춘양의 지명을 따 춘양목이라 부른다. 해발 6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연평균 온도가 4~10도의 차가운 기온과 사질양토 중 약산성 토질에서 자란다.

 

나무의 특성은 수형이 곧고 옹이가 없으며 일반 소나무에 비해 재질이 단단하며 뒤틀림이 적은 게 장점이다. 직사광선에도 변함없이 무늬가 아름다워 옛 궁궐의 신·개축 재목으로 진상되고 사찰과 관아는 물론 부호들의 대가 건축자재로 널리 이용되는 나무다. 현재도 각화산 서쪽 자락과 사찰 입구에 빽빽하게 자라고 있지만 지명도에 비해 아름드리 춘양목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거기다가 올곧은 소나무는 하늘의 별 따기다. 거기에는 나름의 슬픈 이유가 있다.

 

때는 바야흐로 조선 말기. 태조 4년(1395년)에 창건한 경복궁이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자, 1865년 권력을 잡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의 중건을 지시한다. 궁의 넓이는 432,703㎡, 막대한 재정과 백성의 노역도 문제였지만 궁궐을 짓는 데 필요한 목재가 필요했다. 궁궐을 짓는 데 필요한 나무는 춘양목이었고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딘 인물 반듯하고 올곧게 자란 각화산 자락의 춘양목이 대거 벌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백산 일대에는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춘양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으나, 태평양전쟁 전후로 대량 벌채로 수난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석현리에서 주능선까지 올라서는 데 약 2시간이 소요된다. 각화산 정상은 주능선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5분 정도 더 가야 한다. 정상석 대신에 원형의 나무 표지판이 나무줄기에 매달려 있다. 삼거리까지 되돌아 나와 동쪽 등산로를 따라야 왕두산과 태백산 사고지로 갈 수 있다. 이윽고 뚜렷한 삼거리에 도착한다. 직진이 왕두산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사고지로 내려가는 길이다.

 

태백산 사고지는 한양의 춘추관, 강화도, 묘향산, 오대산의 사고와 더불어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하나다. 조선 초기부터 여러 지방에 분산 보관해 오던 ‘왕조실록’ ‘왕실족보’ 등의 사고본이 임진왜란으로 거의 소실되자 다시 펴낸 사고본을 좀 더 안전한 곳에 재분산 보관한 곳으로 1606년에 지어져 일제강점기인 1913년까지 300여 년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다. 1991년 2월 사적 348호로 지정되었다.

 

왕두산으로 가는 주능선을 따르면 등산 중 최고의 조망처가 한 군데 있다. 협소한 작은 바위 위에서 보는 남쪽 조망은 정말로 훌륭했다. 왼쪽 일월산에서부터 삼중 사중으로 거대한 산줄기가 거대한 파노라마를 그리고 한중앙 정면에 청량산이, 그 옆으로 소백산 주변의 산군들이 줄줄이 조망된다.

 

각화산에서 왕두산까지는 약 1시간 15분여가 소요된다. 왕두산은 낙동강 상류부 지류들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넓은 공터에 왕두산이라 쓰여진 목재가 세워져 있다. 왕두산에서 서쪽으로 내려서면 헬기장이다. 북서쪽으로 각화산 정상이 아름답게 조망되고 산자락 중턱의 사고지도 확인해 볼 수 있다. 헬기장에서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지능선을 타고 이어져 내린다.

 

여유 있게 40분 정도 내려서면 각화사(覺華寺)다. 사찰을 둘러보고 조금 내려서면 좌우에 춘양목이 빽빽하다. 각화사에서 주차장까지는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석현리에서 각화산 정상을 오르고, 왕두산을 거쳐 각화사로 내려서는 데 약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각화사에서 등산을 시작해 왕두산과 태백산 사고지를 둘러보는 원점회귀 등산도 가능하다.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다.  

 

등산을 하며 각화산과 왕두산의 맑은 정기를 마음껏 흡입하고 각화사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고 나면 몸이 날아갈듯 가벼워진다. 청청함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산 중의 하나다. 

자료 : 매일신문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 숙식 정보 각화사 일원에는 별다른 숙박 시설이 없고 춘양에는 동아장여관(054-672-3109)이 있다. 춘양을 거쳐 울진 쪽으로 가다가 현동에서 태백 방면으로 12.5km 가량 달리면 청옥산 자연휴양림과 만난다. 단풍이 늦가을 정취를 한껏 돋우는 곳으로 산림문화 휴양관이 편안하다. 1층은 단체용으로 공동 취사장을 갖추었고 2층은 가족용으로 방마다 싱크대가 있다. 054-672-1051.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