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기보사단 결전부대 양기사 해체
ㅁ 20기계화보병사단 / 양평 창대리
한국전쟁중 1953년 2월 9일 한국군의 2차 증강계획에 따라 제1교육여단을 모체로 창설되었다. 창설 직후 양구 백석산 일대를 방어하던 7사단과 임무교대를 하였고, 전쟁 말기엔 미40사단을 대신해 가칠봉 일대를 방어하며 휴전을 맞이했다.
전후 창설된 29사단이 해체되면서 당시 29사단의 병력은 20사단에 흡수, 승계되었다.
2019년 11월 29일 11기동사단과 통폐합되어 61기보여단으로 개편됨과 동시에 해체되었다. 통합이 완료되고 11사단의 20기보여단이 독립, 3군단으로 이관되어 20기갑여단으로 창설되었다. 그리고 해체 과정에서 포병여단과 61여단은 11사단으로 편입, 60여단은 8사단으로 편입되었으며 62여단은 해체되었다.
ㅇ 정비대대는 일반지원중대만 대대에 있었으며 1, 2, 3중대는 근접지원중대로 각 여단에 장기 파견되어 모두 떨어져 있었다. 일반지원중대는 근무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20사단 해체 후 보수대대와 함께 여단 군수지원대대로 개편되었다.
ㅇ 정찰대는 2019년 10월 18일 해체되어 3군단 직할로 배속 변경된 20기계화여단 정보중대의 모체로 배속 변경되었다.
ㅇ 차량화보병사단시절 사단 직할 독립전차중대였으나 기계화보병사단이 되면서 기갑수색대대로 변경되었다.
인원에 비해 관리하는 지역이 많아 작업량이 많기로 사단에서 손꼽혔다. 사단 사격장, 사단 유격장, 사격장, 전적비 모두 수색대 관할이었으며 제설작업도 전담했다. 해체과정에서 기갑수색대대 2중대가 3군단 직할 20기갑여단 기갑수색중대로 재편성되었다.
ㅁ 60기보여단
26전차대대 (악어 8사단으로 변경) / 32전차대대 (강병 8사단으로 변경) / 107기보대대 (코뿔소 8사단으로 변경)
해체 및 각 부대가 분할되어 제8기동사단/제11기동사단에 통폐합되었으며 20기계화보병사단 예하 당시의 60여단은 유일하게 한강 이북에 주둔하는 부대였다.
ㅁ 61기보여단
1952년 11월 8일 강원도 양양에서 제58보병연대로 창설되었다.
원래 20사단 예하부대였던 시절의 애칭은 화랑여단이었다. 하지만 20사단이 해체되고 61여단이 11사단 예하로 개편되어 새로이 상급부대가 된 11사단의 애칭인 화랑부대와 호칭이 중복됨에 따라 20사단 유일한 존속 여단이라는 명목하에 '결전여단'으로 개칭되었다. 부대마크도 바뀌었는데, 기존 마크의 중앙에 20사단의 마크를 붙여넣었다.
12전차대대 (질풍) / 108기보대대 (철마) / 111기보대대 (무척번개)
ㅁ 62기보여단
사단이 해체될 때 111기보대대를 제외한 여단본부 포함 부대 해체
109기보대대 (백마) / 111기보대대 (무적번개) / 31전차대대 (비호)
8기동사단 / 60기보여단 독수리부대
■ 60기보여단/ 독수리부대/ 양주 26전차대대(악어)/ 양주 봉양동/ 흑표전차를 전군최초로운용 32전차대대(강병)/ 양주 봉양동/ 신형 K1전차를 최초배치했으며 현재 흑표로 대체됨 1958년 9월 경기도
choogal.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