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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야음동 신화마을 신화예술인촌 벽화마을

구석구석 2025. 3. 8. 18:17

울산 남구 여천로80번길 15 (야음동) / 신화마을 ☎ 052-276-9677 

 

[주말&여행] 울산 남구 야음동 신화마을, 고래 춤추고, 황소 돌진하고…'지붕없는 미술관'을 거닐

지붕 위로 혹등고래가 날아오른다 노랑 고래 분홍 고래 파란 고래가 벽면을 타고 헤엄친다 이중섭의 황소가 돌진해 오고 박수근의 빨래터에서 여인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수도권을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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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로 혹등고래가 날아오른다. 노랑 고래, 분홍 고래, 파란 고래가 벽면을 타고 헤엄친다. 이중섭의 황소가 돌진해 오고, 박수근의 빨래터에서 여인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주차장을 찾다 본의 아니게 마을안길을 운전한다.

폭 4m 가량의 길, 주차 차량을 조심조심 피하며 고래와 벽을 뚫고 나오는 트럭과 선글라스를 쓴 고양이를 보느라 심장이 쪼그라든다. 채플린과 아이가 골목길을 내다본다. 

골목마다 주제가 있는 그림들이 있다. 사진 울산 남구청

리히텐슈타인의 여자가 절망의 눈물을 흘린다. 미안하다. 마침내 주차장을 찾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곳은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불리는 울산 신화마을이다.

신화마을은 울산 석유화학공단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지역의 첫 집단 이주촌이다. 2010마을 미술프로젝트에 선정돼 2013년 벽화마을로 변모했다. 류혜숙

좁은 골목, 작은 창, 조르라니 늘어선 화분, 옥상에 널린 솜이불, 방범창 너머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기침소리, 텅 빈 마을 구판장, 불 꺼진 아트슈퍼, 언덕 사면에 뿌리를 내리고는 무럭무럭 자라나 골목 너머 작은 창으로 큰 그늘을 드리우는 동백나무, 언덕아래 조각보처럼 펼쳐지는 텃밭들

신화마을 벽화. 왼쪽은 마을입구의 고래꼬리 조형물

나른한 워킹을 선보이는 검은 고양이, 정식만 파는 육개장 식당, 엄지를 치켜세운 이삿짐 전문가, 마그리트의 싱싱한 사과, 희미해질지언정 썩지 않는 세잔의 사과. "젊으니 좋다. 많이 다니소. 여기저기 다 다니소." 늙은 여인이 무심히 던지는 다정하고 쓸쓸한 말씀. 상당수의 주민이 야간에 일을 하고 낮 동안 잠든다니 지축이라도 울릴까 살금살금 걷는다.

텅빈 마을 구판장과 영화 '고래를 찾는 자전거' 벽화. 울산의 대표적인 달동네이자 슬럼가였던 신화마을은 영화 촬영지로 스크린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류혜숙

1960년대 초 울산은 특정 공업지구로 지정되었다. 이후 야음동과 장생포동 일대에 석유화학공단이 들어서게 된다. 신화마을은 공단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남구 매암동 철거민들을 위해 만든 지역의 첫 집단 이주촌이다.

이중섭의 소 사진 울산남구청

당시 이주민 대부분이 고래포경 관계 종사자였다고 한다. 신화(新和)라는 이름은 '새롭게 화합하여 잘 살자'라는 의미로 지어졌다. 그러나 마을은 공단지역으로 둘러싸여 있어 주거환경이 열악했다. 게다가 주택지의 8할이 국유지이고 개발제한 지역이기도 해서 재개발에 큰 한계를 갖고 있었다.

울산이 눈부신 경제적 발전을 이루는 동안 신화마을은 시간이 멈춘 도심 속 외딴 섬이 되었고 울산의 대표적인 달동네이자 슬럼가로 불렸다.

신화마을이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10년 영화 '고래를 찾는 자전거'의 주 촬영지로 스크린에 소개되면서다. 영화는 고래를 찾아 떠나는 남매의 가슴 찡한 이야기로 신화마을은 두 남매가 살던 마을로 등장한다.

신화마을 벽화

당시 일부 골목을 벽화로 조성하였는데 그해 가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한 '2010마을 미술프로젝트'에 선정, 2013년 벽화마을로 변모했다. 울산 남구청과 지역의 화가, 조각가, 시인, 기획자들이 협력해 2010년부터 4년간 벽화를 그리고 각종 조형물 등을 설치했다.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고, 지붕 없는 미술관이란 별칭도 이때 얻었다.

골목길의 쉼터 / 사진 울산 남구청

2013년 영화 '친구2'도 신화마을이 등장한다. 영화 초반 어린 성훈이 새로운 친구를 만나 우정을 나누는 동네가 신화마을이다. 신화마을이 울산의 새로운 관광명소이자 문화예술촌으로 거듭나자 처음 몇 년 동안에는 보수하고 홍보하는 등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관심은 식어버렸다. 그러고 햇빛과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10여 년이 흘렀다.

신화마을 벽화

하얀 2층 건물 옥상에서 태극기가 펄럭인다. 이곳은 초기 '신화예술인촌'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다. 마을 내 오래된 가옥 한 채를 리모델링해 개관한 '신화예술인촌'은 전시공간과 입주 작가의 개인 작업실 두 개, 미술 해설사 안내소, 경로당, 옥상 휴게 공간 등을 갖추고 있었다.

좌) 뒷편의 동산이 벚꽃동산 / 류혜숙

옥상은 외부 계단을 통해 오를 수 있다. 2층 문 앞에 뜯지도 않은 채 화석이 되어버린 택배상자가 놓여 있다. 오르는 사람이 드물 뿐 옥상은 여전히 쉼터다.

고래도시 울산을 표현 / 사진 울산 남구청

'무더운 날에도 매서운 추위에도 기분 좋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태양광 쉼터'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높은 건물이 없어 그늘이 지지 않은 마을의 특성을 활용한 것 같다.

벽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는 고래. 고래의 힘찬 기운이 느껴집니다./ 사진 울산남구청

아래에 숲이 보인다. 물길과 작은 연못, 산책로가 있는 아름다운 숲이다. 2023년경에 조성했다고 한다. 숲의 우듬지 너머로 울산 공단이 보인다. 지독한 미세먼지가 대부분의 풍경을 지워버렸지만 가까운 공단의 수많은 공장 구조물과 굴뚝은 제법 선명하다. 밤이 오면, 울산 남구 12경으로 유명한 공단 불빛이 휘황하겠다.

2012년에는 150가구 699명이라 했고 2023년 기사에는 276가구 420여 명이라 했다. 동일한 것은 주민 대부분이 60세 이상 노인이라는 것이다. 가구는 늘었고 사람은 줄었으니 공간은 쪼개지고 혼자 사는 노인이 늘었다고 생각해도 될까.

마을기업인 '뜰 안에 창작마을'은 주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상품을 연구개발하고 제작 및 판매하는 곳이다. 무인카페도 있고 마을 투어와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고 한다. 류혜숙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마을기업인 '뜰 안에 창작마을'이 있다. 주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관광공예 상품을 연구개발하고 제작 및 판매하는 곳이다. 무인카페도 있고 마을 투어와 공예체험, 업 사이클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고 한다.

사진 울산남구청

오늘 '뜰 안에 창작마을'은 깜깜하고 문이 잠겨 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지만 신화마을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 때때로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한 창작활동이 이뤄지고 있고 벽화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내일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노자는 '만물은 음을 등지고 양을 가슴에 안고 있다'고 했다. 신화마을은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시간들이 압축된 곳이다. 현실의 공간이 품고 있는 시간의 굴곡과 주름이 이 마을의 아우라다.

울산 암각화 / 사진 울산 남구청

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큰 기와지붕은 밀성박씨 울산여천문중의 재실인 청죽재(聽竹齋)다. 여천 입향조인 박손(朴孫)과 그의 아들을 모신 곳이다. 부자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고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나 1595년 2월 울산 북구의 백련암 전투에서 적과 싸우던 중 순절했다고 한다.

주차장은 여천박씨제각 삼문 (여천로80번길 33)

청죽재 삼문 앞이 신화마을의 공영 주차장이다. 토지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조성했다. 청죽재 지붕 너머 언덕마루에 소복한 나무들은 벚나무란다. 사람들은 '벚꽃동산'이라 부른다. 봄날 꽃이 피고 꽃잎이 훨훨 마을 골목길에 나리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 영남일보 2025.1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