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강 신천습지 춘포 만경교
[생태관광-만경강] 만경강의 허파, 신천습지
[여행스케치=완주] 겨울에는 몰랐다. 만경강의 봄이 이토록 생동감이 넘치며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주말에 내린 비로 만개했던 벚꽃의 절반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여전히 만경강 벚꽃길은 아름다웠다. 오히려 바닥에 떨어진 꽃잎 덕분에 꽃길을 걷게 되었으니 말이다
지난 4월 5일 만경강 사랑지킴이 회원들의 ‘벚꽃 도보여행’에 동행 취재했다. 지난 호 <여행스케치>에 소개된 ‘만경강 202리 첫발을 내딛다’에 이어 완주군 봉동읍 상장기공원에서 비비정 예술열차까지 약 12.5km 구간을 연재하기 위해서다.
벚꽃 도보여행의 시작, 봉동 상장기공원
한 달 만에 다시 마주한 봉동당산제단과 노거수는 어느새 푸른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으며, 노거수 앞에 모인 회원들은 여전히 만경강과 마을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여름에 지내던 당산제(음력 7월 20일)가 봉동 읍민의 날인 10월 10일로 옮겨진 이야기며, 봉동의 생강이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3호로 선정된 것이 온돌식 토굴 저장 방식 때문이라는 내용과 완주 생강 경관 조성 사업으로 완주 생강이 더 많이 알려졌다는 이야기들이다.
출발 전 용봉교와 수양산을 배경으로 뒷모습 기념촬영을 한 후, 만경강 벚꽃 도보여행이 시작됐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은 꽃길이 되어 도보 여행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출발 전 들려야 할 곳은 공용 버스터미널이 부근의 화장실이다.
이 구간부터 비비정 예술 열차까지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이 은행나무 수꽃을 발견한 만경강 사랑지킴이 회원들은 은행나무의 암꽃과 수꽃을 쉽게 볼 수 없었다며, 은행나무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다.
만경강 아래에 네모반듯한 형태의 공터가 보인다. 주위에 흰 경계선이 그려져 있으며, 가운데는 흙더미가 보인다. 손안나 만경강 사랑지킴이 총무는 “저곳이 바로 봉동 씨름장”이라며 “예전에는 당산제와 함께 봉동 씨름판이 펼쳐졌는데, 당시에는 봉동 씨름이 전국 씨름판을 장악했을 정도였다”고 설명한다.
봉동 씨름은 오른씨름으로 경기도와 전라도에서, 왼씨름은 경상도, 강원도, 충정도에서 이어져 왔다. 기록에 보면 1931년 제2회 조선씨름대회부터 전국의 씨름대회는 왼씨름 한가지로만 하게 되면서 봉동의 오른씨름은 서서히 잊혀가고 있다고 한다. 손안나 총무는 “지금부터라도 봉동의 씨름을 재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다면, 봉동은 생강에 이어 또 하나의 중요한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을 벗 삼아 걸으니, 저절로 힐링이 되다
만경강은 이미 봄의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다. 만개한 조팝나무들이 수변을 따라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길 건너편에는 여전히 만개한 벚꽃의 모습이 보인다. 그 뒤로 보이는 산에도 곳곳에 만개한 벚꽃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3월 완주군 길 따라 걷기 챌린지 행사가 열렸던 걷기 코스 안내 플래카드가 보인다.
이 길부터 한국농어촌공사 하리 배수장 부근까지는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길이다. 하리 배수장에서 비비정 예술 열차까지 구간은 현재 출입 통제를 하고 있으며, 우회해서 가야 한다. 하리 배수장에서 비비정 예술 열차까지는 약 1.5km 거리이다.
봉동교를 지나자 ‘완주만경 힐링트레킹’안내판이 보인다. 이 안내판을 보면 용교마을의 800년 느티나무, 상삼리의 고양이 느티나무 등 이름만 보아도 스토리텔링이 많을 것 같은 나무들이 보인다. 이현귀 만경강 사랑지킴이 회장은 “아쉽게도 이 나무들은 제대로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아 찾아가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군과 마을 주민이 한뜻으로 역사와 스토리텔링이 될 관광자원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봉동교를 지나 약 2km를 걸어가면 성덕길로 빠지는 지점이 있다. 이곳에도 한 폭의 그림 같은 생태 습지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아직은 갈색의 애기부들 군락 사이로 듬성듬성 초록의 색을 입은 나무들이 보인다. 봄의 계절이라 더욱 눈에 들어오는 이 풍경은 이국적인 느낌마저 든다. 만경강 물줄기와 가까이 가기 위한 길이 보인다.
조용히 흐르는 강물과 습지를 조금이나마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길이기도 하고, 자연에서 일용할 양식을 채취하는 사람들의 발자취이기도 하다.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 신천습지
만경강에는 수중보가 여럿 보인다. 하천의 보는 생태계를 교란시키지만, 만경강의 보는 담수성 식물 군락과 모래나 하천의 식생 군락, 그리고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만경강을 걷다 보면 수중보를 통해 물이 내려오면서 그 주위로 습지가 형성된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소양천과 고산천이 만나는 회포대교에서 하리교까지의 2km에 걸쳐 있는 신천습지는 예전부터 하천의 폭이 넓어지면서 유속이 느려져 자갈과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하중보가 많이 형성되어 있다.
거기에 수중보가 만들어지면서 더욱 다양한 동식물들의 서식지로 변하게 된 것이다. 신천습지는 예로부터 옥같이 맑고 깨끗하다고 해서 신천옥결(新川玉潔)이라고 했으며, 만경강 6경에 해당한다.
신천습지의 쓰러진 고목마저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되어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는 모습이다. 잠시 앉아서 풀들을 바라보니 봄소식을 알리는 봄까치꽃이 보인다. 이처럼 만경강은 계절마다 다양한 식물들이 우리를 반긴다.
특히 6~8월이면 노랑 어린 연꽃, 왜개 연꽃, 어린 연꽃 등이 화사한 모습으로 군락을 이룬다고 하니 여름날의 만경강 도보여행이 더욱 기다려진다.
벚꽃길을 걸으며, 만경강의 5경인 비비낙안을 그려본다. 비비정에서 만경강을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풍경을 이르는 말인데, 최근에는 비비정 예술 열차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비비정 예술 열차까지 가는 길은 당분간 출입금지가 되어 하리 배수장 뒤로 돌아가야 한다. 비비정을 가는 길에 만나는 비비정 농가레스토랑은 비비정 마을 할머니들이 마을에서 재배한 로컬푸드를 재료로 조미료 없이 조리한 건강한 밥상을 제공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만경들녘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만경철교에는 비비정 예술 열차가 조성되어 있다. 새마을호 열차를 리모델링한 비비정 예술 열차에는 갤러리, 레스토랑, 카페 등이 들어서 있으며, 이곳은 만경강의 노을을 감상하는 뷰포인트로 잘 알려진 곳이다. 비비정 예술 열차의 주변 여행지로는 삼례문화예술촌, 삼례책마을 문화센터, 삼례성당,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역사광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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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 익산 구간을 걷다 ② 춘포-만경2교
뒤바뀐 물길, 쓰라린 우리의 역사
[여행스케치=익산(전북)] 만경강의 물줄기는 서해로 갈수록 그 폭이 넓어진다. 중류에 해당하는 곳이 익산 쪽이다. 강 양쪽, 익산과 김제의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물길을 가로막는 수문이 없었다면 강모래 찜질을 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을까. 뒤바뀐 물길은 시간의 흐름 속에 많은 것을 바꿔 놨다. 모래톱이 있던 자리는 덤불이 뒤엉켰다. 강과 맞닿은 둔치의 논들은 자취를 감췄다. 그럼에도 쓰라린 역사의 흔적은 역력하다.
지난호(봄이 드나드는 물가, 일제가 자리를 폈다)에 이어 만경강 익산 구간을 걷는다. 지난 종착지인 춘포면이 새로운 출발지다. 제방길에서 춘포행 발걸음을 되새긴다. 호소가와(細川·세천) 농장과 관련한 근대문화유산이 유독 많았다.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가옥’(에토가옥·등록문화재 제211호), 대장도정공장, 일명 김성철가옥, 간호사 숙소 등이 들어온다. 일제의 쌀 수탈사를 담은 춘포역(폐역·등록문화재 제210호)도 빼놓을 수 없다. 제방길에 서면 춘포가 왜 살아있는 근대문화유산 박물관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일제가, 또 우리가 건드린 만경강 물길
땡볕에 숨을 곳 없는 제방길이나 벚나무 터널이 그늘을 내어줬다. 춘포에서 만경2교까지는 약 8km 거리다. 이번에는 만경강의 양쪽을 찾기로 했다. “양쪽에서 살펴보는 것이 만경강을 보다 잘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유칠선 전라북도 문화관광해설사의 추천에서다.
강 건너편의 행정경계는 뒤섞여 있다. 이쪽이 분명 익산 땅 아니던가. 강 건너, 김제 쪽 마산천 수문 일대에 익산(춘포면) 땅이 있다. 오른쪽 전주(덕진구)와 왼쪽 김제(백구면) 땅 사이에 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경강 직강화 사업의 영향이다.
익산 땅의 일부가 강 건너편으로 떨어져 나간 것. 하류 방향의 목천포 수문 쪽도 마찬가지다. 이번엔 김제 땅이 익산 쪽에 붙어있다. (구)만경교(옛 만경교)와 조성 중인 물문화관 일대가 그렇다. 지도를 살펴보니 직강화에 따른 이 같은 사례는 이번 여행에서 총 5군데나 됐다.
직강화 사업은 말이 좋아 만경강 개수공사(1925~39년)이지 본질은 일제의 수탈에 있다. 구불구불한 사행천이었던 흔적은 또 있다. 제방 밖에서 물줄기가 막힌 우각호(쇠뿔 모양의 호수)가 그것이다. 익산 석탄동의 우각호(간리 구강)가 대표적인데 총 길이는 900미터가 넘는다.
물길을 건드린 건 일제만이 아니었다. 김제 쪽 백구제 수문은 1970년대 만들어졌다. 밀물 때 바닷물이 상류 방향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설치한 것이다. 새만금방조제가 없을 때의 일이다. 지금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다. 유속이 바뀌면서 모래톱이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오염된 강은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이 일대에서 황새, 노랑부리저어새, 고방오리 등이 관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토교통부가 소개한 ‘만경강 조류 살펴보기’ 안내도는 순 엉터리였다. 왜가리부터 참새까지 총 12종을 사진으로 설명했는데 이중 4종만 제 얼굴과 맞았다. 엉터리 안내도로 생태여행이라니….
국가기관이 사전에 전문가 검증을 받았거나 조류 도감이라도 참조했는지 모를 일이다. 아쉬운 점은 또 있다. 만경강 전체의 조류를 설명하는 것보다는 앞서 언급한 이 일대에서 관찰되는 특별한 조류에 한정했으면 하는 지적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만경교를 기억합니다”
만경강에는 뼈아픈 역사를 간직한 옛 다리가 있다. 익산과 김제를 이었던 (구)만경교(1928.2~2015.6)다. 이 일대의 쌀을 수탈하려는 일제의 계략에 따른 것으로, 옛 만경교는 전주-군산을 잇는 신작로(전군도로)의 주요 기점이었다. 또한 한국전쟁의 비극을 다른 윤흥길의 <기억 속의 들꽃>의 배경이다.
전군도로는 일명 ‘잣대도로’였다. 주변에 세천농장을 비롯해 금촌농장, 전판농장, 대교농장, 불이농장, 미쓰비시계열농장 등 일본인 농장이 많았다. 농장주들은 설계 과정에서 전군도로가 자신의 농장 영역으로 놓이도록 했다.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를 나눠가질 때처럼 잣대로 신작로 노선을 죽죽 그었다. 잣대도로의 명명 배경이다.
2014년 다리에 대한 철거 계획이 수립됐다. 이 과정에서 만경교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보존하자는 여론이 일었다. 철거와 존치의 기로에서 교량 일부 보존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강 복판 방향의 교량은 철거하면서 익산과 김제 쪽 시작점 일부를 각각 남겨두기로 한 것.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만경교를 기억합니다’ 콘셉트였다. 남은 교량에는 목재 데크길이 덧대져 있다.
“우리의 역사, 익산의 근대문화유산 관심 필요”
목천대교를 조금 지난 오산면에는 독립운동가인 문용기 선생(1878~1919)이 다녔다는 교회가 있다. 현재 새로 지은 교회에서 문 선생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문 선생은 남부시장(구시장) 인근 3·1독립운동기념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1919년 4월 4일 이리장날을 이용해 주도한 만세운동 당일 일제의 총칼에 산화했다.
과거 남부시장 일대에는 춘포보다 훨씬 많은 근대문화유산이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 무관심 속에 사라졌다. 문 선생이 계신 공원 뒤편은 대교농장이 자리했던 곳이다. 건물 일부가 남아 있으나 근대문화유산으로 쓰이지 않는 실정이다. 군산은 근대문화유산으로 도시에 새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에 대해 유 해설사는 “군산은 일제강점기 근대문화유산 외에 익산처럼 다른 고대유산이 없다. 익산은 백제의 고도여서 그동안 미륵사지를 비롯한 고대의 역사문화에 집중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익산의 브랜드 가치를 드높이는 차원만이 아니다. 미래세대를 위한 역사·교육적 관점에서도 남아 있는 다양한 근대문화유산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출처 여행스케치 박정웅 기자 sutr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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