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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낙원동 종로3가 낙원상가 을지면옥

구석구석 2024. 7. 29. 11:52

ㅇ 종로구 삼일대로 428 / 낙원상가 1599 1968

ㅁ 종로구 삼일대로 428 / 낙원악기상가 1599 1968

 전문 음악인, 음악 애호가, 연주가를 꿈꾸는 학생 등 대한민국 음악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낙원악기상가, 입구부터 들려오는 연주소리와 오래된 건물 외경이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상가에서는 관·현·타악기부터 음향장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악기와 음악관련 장비들을 판매하고 있다.

악기점 주인들은 악기 수리는 물론 연주 솜씨도 일품이다. 귀에 익은 선율을 라이브로 들려주며 손님들에게 악기설명을 하는 모습이 낙원의 진풍경이다.

 푼푼이 모은 돈으로 통기타를 산 남학생과 부모님을 졸라 중고 피아노를 샀던 여학생이 이젠 중년의 부모가 되어 자녀들의 악기를 사러 낙원을 다시 찾는다. 낙원동엔 악기와 음악, 그리고 鄕愁(향수)가 있다. 

 

ㅇ 낙원상가내 나라김치반찬 / 푸짐한 비빔밥이 5천원

 

 

마이클 잭슨이 이 집 비빔밥을 먹었더라면

마이클 잭슨이 이 집 비빔밥을 먹었더라면 아무튼, 주말 구두쇠氏 혼밥기행 서울 낙원상가 나라김치반찬 푸짐한 비빔밥이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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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상가로 이름난 그곳 지하에 시장이 있었다. 1960년대 말 지어진 이 원조 주상복합 건물은 1층을 삼일대로가 관통하는 필로티 구조다.

두쇠씨는 2층 악기상가에 가봤고 그 위에 있는 극장과 야외 공연장도 갔었지만 15층 규모에 51평형까지 있다는 아파트엔 가본 일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지하에는 무엇이 있는지도 몰랐다.

낙원상가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는 낯설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벽과 허름한 옛날식 계단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불법 적치물 없이 깨끗한 입구가 오히려 스산했다. ‘낙원시장’이라는 간판만 대낮에도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오토바이와 삼륜차들이 아무렇게나 서있는 입구를 지나 시장이 있었다. 총 면적의 절반은 창고로 쓰이는 듯한 이곳은 쌀집, 기름집, 정육점, 수입 잡화점까지 갖춘 곳이었다.

시장 가운데 밥집들이 밀집해 있었고 두쇠씨의 목적지인 ‘169호 나라김치반찬’은 시장 한쪽 끄트머리 1번 출입구 근처에 있었다.

6인용 식탁 두 개가 있는 이 밥집에선 80대 남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주인 할머니는 그 맞은 편에 앉아 TV를 보다 졸다 하고 있었다. 바쁠 때는 합석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점심 메뉴는 셀프 비빔밥 단 한 가지. 5000원이었다. 이 비빔밥의 특징은 이 가게에서 파는 모든 반찬과 김치를 넣어 비벼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기본 나물인 고사리·무나물·당근·시금치에 반찬으로 깻잎무침·오징어젓·무말랭이·콩자반·콩나물·무생채가 있었고 김치만 8가지가 있었다.

한쪽에 양푼이 쌓여 있었는데 그 크기가 냉면 대접은 댈 것도 아니고 공중 목욕탕에서 물 끼얹을 때 쓰는 작은 대야만 했다. 족히 비빔밥 3인분은 담을 수 있는 크기여서 밥을 세 주걱이나 펐는데도 바닥에 얕게 깔렸다.

나물과 반찬을 양껏 담다간 짜지겠지, 하고 생각하는데 주인 할머니가 말했다. “조금씩 퍼요. 먹고 모질르면 더 먹어. 냄기면 안 돼.”

비빔밥에 어울릴 만한 나물과 반찬을 다 담고 나서 달걀 프라이 하나를 얹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자 할머니가 시래기 된장국을 내줬다.

비빔밥 특유의 빨·주·노·초 색감이 최고급 한식집의 그것과 견줘 전혀 손색이 없었다. 물론 다진 고기 볶음이 빠졌지만 5000원에 언감생심이었다.

밥을 세 주걱 퍼 넣고 나물과 반찬을 양껏 넣었는데도 양푼의 3분의 1밖에 차지 않았다. 한국인이라면 저 색감을 보고 그 맛을 가늠할 수 있다.

나물비빔밥 한 그릇 1만원 받는 비빔밥 프랜차이즈에서도 고작 5~6가지 나물을 찔끔 올려줄 뿐이다. 비빔밥은 재료가 많을수록 맛있어지니 이 집 비빔밥 맛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 맛을 능가하는 비빔밥은 소머리 육수로 밥을 짓는 전주비빔밥뿐일 것이었다. 

저녁에는 안주류 위주로 팔지만 나물 떨어질 때까지는 비빔밥도 계속 판다고 했다. 게다가 이 집에서는 소주가 3000원이다. 5000원이 기본이요 소주 6000원도 흔한 종로통에서 비빔밥 맘껏 퍼 담고 소주까지 곁들여 8000원이라니, 이곳이 지상 아니 지하 낙원이로구나 하고 두쇠씨는 생각했다. 

/ 출처 : 조선일보 2024. 4 한현우기자 

종로구 삼일대로30길 12 / 낙원동 시대를 연 을지면옥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는 “본래 요리 연구가 한정혜씨 소유 건물인데, 2022년 별세 후 자손들이 내놓은 걸 을지면옥 측에서 인수했다고 들었다”며 “허물고 새로 지으려 했지만, 역사적인 지역이라 규제가 많고 비용도 많이 들어서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선에서 마무리한 듯하다”고 했다. 건물은 총 5층으로, 1·2·3층을 냉면 집으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을지면옥은 ‘우래옥’ ‘평양면옥’ ‘필동면옥’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평양냉면 4대 노포로 꼽힌다. 서울 평양냉면의 계보는 크게 ‘의정부 계열’ ‘우래옥 계열’ ‘장충동 계열’로 나뉜다. 을지면옥은 의정부 계열에 속한다.

평안도 대동군 출신 홍영남씨가 1969년부터 경기도 전곡 ‘평양면옥’에서 냉면을 만들어 팔다 소문이 나면서 1987년 의정부로 이전했다. 장남 홍진권씨가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1985년 문 연 서울 을지면옥은 홍영남씨의 둘째 딸 홍정숙씨가, ‘필동면옥’은 맏딸 홍순자씨가, 서초구 잠원동 ‘의정부 평양면옥(옛 본가 평양면옥)’은 막내딸 홍명숙씨가 경영한다.

의정부 계열 냉면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는 육수가 무미할 정도로 심심하지만 먹을수록 특유의 감칠맛이 올라온다. 곱게 빻은 고춧가루를 살짝 뿌려 내는 게 특징이다.

냉면은 거의 같지만 기타 메뉴는 식당별로 조금씩 다르다. 을지면옥은 돼지고기를 삶아서 차갑게 식혀 얇게 저민 ‘편육’이 냉면만큼 인기였다. 마니아들은 “부드러운 편육을 소스에 찍었을 때 궁합이 매우 좋다”며 “소주 안주로 이만한 게 없다”고 격찬한다.

우래옥 계열은 평양에서 고급 한식당 ‘명월관’을 운영하다 광복 후 서울로 온 장원일씨가 1950년 6·25전쟁 후 을지로 4가 인근 주교동에서 영업을 재개하며 ‘다시 돌아온 곳’이란 의미로 간판을 걸었다.

을지면옥은 서울 중구 세운지구 재개발로 주변 노포들이 문 닫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을지로를 사수하려 했다. 하지만 재개발 시행사가 을지면옥을 상대로 낸 ‘부동산 명도 단행 가처분’ 소송에서 2022년 법원이 시행사 손을 들어주자 떠나기로 결정했다.

서울 평양냉면 집 중 가장 역사가 길다. 장씨 손녀 경선씨와 쌍둥이 여동생 고(故) 경원씨의 큰딸 안지민씨가 공동 운영한다. 

한우 암소만으로 우려낸 감칠맛 진한 육수에 강원도 평창 메밀만으로 뽑은 사리를 말아 낸다. 서울 최고(最古)·최고가(最高價)인 최고 냉면 집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벽제갈비’와 ‘봉피양’의 평양냉면을 우래옥 계열로 분리하기도 하는데, 우래옥에서 오래 일한 고(故) 김태원 조리장이 1992년부터 벽제갈비와 봉피양 냉면의 기틀을 잡았기 때문이다.

장충동 계열은 평양에서 ‘대동면옥’을 운영하다 월남한 김면섭씨와 며느리 변정숙씨가 1985년 장충동에서 개업한 ‘평양면옥’에서 출발했다. 본점은 변씨의 큰아들 김대성씨가, 논현점은 변씨와 둘째 아들 김호성씨가 운영한다.

대성씨 둘째 딸 유정씨와 사위 서상원씨는 2014년 도곡점을 개점했다. 신세계백화점에 문 연 평양면옥은 호성씨 둘째 딸 은성씨가 이끈다. 논현동 ‘진미평양냉면’은 주방장 임세권씨가 논현점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에 장충동 계열로 분류한다. 육수는 의정부 계열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간이 있고, 사리는 다소 까슬까슬하지만 씹으면 구수한 여운이 남는다.

/ 출처 : 조선일보 2024 김성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