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도남리 도남재 의병창의마을
대가면 도남리 도남재(道南齋)
등암(藤菴) 배상룡(裵尙龍:1574~1655)과 괴재공(愧齋) 배상호(裵尙虎:1594~1632) 형제를 모시는 재실이다. 바로 옆에 영정(影幀)을 모시는 영각(影閣)이 있으며, 양공(兩公)의 문집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도남리에는 배상룡, 배상호 형제의 조부인 서암(書岩) 배덕문(裵德文:1525~1602)이 처음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배덕문은 과거 급제하여 관직을 두루 거친 뒤 노년에 낙향하여 성주 향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그 당시 배덕문은 68세의 노인이었다. 성주가 왜군에 짓밟히자 아들(배설, 배건, 배즙, 배력)과 손자(배상룡), 그리고 딸(배랑)과 사위 등 3대와 제자(배현복)까지 참여하는 의병을 창의하였다. 성주군을 지키던 군수가 도망가자 잔류 병사들까지 합세하여 지금의 도남리 자리섬 마을에서 군사훈련을 하여 부상고개 전투 등 성주를 탈환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도남리 배롱나무는 성주배씨(星州裵氏) 영정을 모신 도남재 영각(影閣) 계단 입구에 서 있다. 수령 300년의 이 배롱나무는 두 그루인데 한 그루는 가지가 6개, 또 한 그루는 가지가 3개로 솟아올랐다.
성주 임진의병축제
축제에는 전국의 배설 장군 후손과 도남리 주민을 포함한 성주군민 등이 참석하며 400여 년 전 배덕문선생을 중심으로 의병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왜군과 맞싸운 모습을 재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성주임진의병축제는 430여 년 전 임진왜란이 발발한 초기 왜군이 침략하자 관군이 달아나 성주읍 전역이 왜군에게 함락됐을 당시 성주읍 출신인 서암 배덕문(배설 장군 부친) 선생을 중심으로 의병들이 들풀처럼 봉기해 9개월 만에 성주읍성을 되찾았다는 역사를 기념하는 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