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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포천 87번국도-깊이울유원지 깊이울계곡 왕방산 왕방사

by 구석구석 2008.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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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발자취 스며있는 포천 왕방산(王訪山·737.2m)

포천군읍지와 견성록 기록에 의하면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이 산에서 무예를 익히고 사냥했으며, 왕위에 오른 후에도 단오와 추석에 강무(講武·임금이 참관하는 무예시범)를 했다하여 왕방산이라 부르게 됐다는 설이 있다.

 

또는 이성계가 두 차례의 왕자의 난으로 심기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함흥 본궁에 칩거하던 중, 태종 이방원이 보낸 사신들이 죽음을 당해 귀환하지 못한 사건인 함흥차사까지 겹쳐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 때 태종은 최후의 수단으로 태조와 친분이 깊은 무학대사를 보내 태조를 설득하여 당시 수도였던 송도로 귀환하게 된다. 이 때 태종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 여행길에 이 산에 들러 수일간 유숙했다 하여 왕방산, 또는 왕방사라는 이름들이 생겼다는 유래도 전해진다.

 

산을 중심으로 동두천 방면에 탑동계곡, 쇠목계곡, 왕방이계곡, 장림계곡, 그리고 포천 지역에 가마골, 깊이울계곡 등이 형성되어 있어 여름철 납량장소로 인기 있다.

 

이외에 포천 방면 산자락 어룡동 절터에 있는 고려시대 때 조각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여래입상, 선단동 전계대원군 묘와 신도비(향토유적 제1호), 왕방이 마을에 있는 토정이 지었다는 암각문(향토유적 제11호) 등 문화유적지도 볼거리다.  

 

왕방산 코스는 국사봉과 연계하는 코스가 많이 이용되고 있다. 왕방산 북쪽은 깊이울계곡, 무럭고개~왕방산 북동릉을 경유하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산 동쪽 포천시내 방면은 한국아파트~북동릉, 신읍동 4통~왕산사~북동릉, 어룡동~밤나무단지~성광사~왕방사 갈림길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많이 이용되고 있다. 성광사 서쪽 충현탑 방면은 사격장이 있어 군부대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산 남쪽에서는 선단동 대진대학교와 선단초교에서 오르는 코스가 인기 있다.

 

산 서쪽 동두천시 방면에서는 탑동 왕방이 마을 오지재고개에서 시계(市界) 능선인 남서릉으로 오르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오지재고개~새목고개로 이어지는 임도를 경유하는 등산로도 있다.  오지재고개 서쪽 해룡산은 최근 동두천시에서 정상의 군부대를 우회하는 등산로를 개설하여 산행에 큰 지장이 없다.

 

포천시 호병골길 193 (신읍동)/ 왕산사 031-533-3245 www.wangsansa.org

포천 왕방산 중턱에 자리한 왕장사는 신라시대에 지어진 천년고찰로, 포천시민들의 성지이자 마음의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봉선사본말사약지에 의하면 왕산사는 877년 신라 헌강왕 3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창건과 함께 왕이 친히 방문하여 격려해 주었으므로 산 이름을 왕방산(王方山)이라 하고 절 이름은 왕산사(王山寺)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조선을 세운 태조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함흥(咸興)으로 가서 나오지 않으므로 무학 스님이 직접 가 설득해 모셔오던 중 왕자의 난이 일어났음을 감지하고 발길을 돌려 이 절에 머무르며 안정을 되찾고 가면서부터 왕방사라 불렸다고 전하기도 한다.

 

이러한 왕방사가 어떻게 유지 되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1572년 조선 선조 5년에 청암스님과 백운스님이 고쳐 지었고, 1627년 인조 7년에는 청산스님과 무영스님이 다시 고쳐 지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왕산사는 해방 직후 시작된다. 금강산에서 중생구도의 뜻을 품고 수도하던 청매스님이 현재의 왕산사 일대를 돌아본 후 고색창연한 절터에 천년석불이 묻혀있는 꿈을 꾸고 백일기도를 드린다.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 미륵불이 현신하는 꿈을 꾸니 이를 계시로 여겨 1947년 이 터에 보덕사라는 절을 짓고 34년간 수행과 포교에 힘쓰니 드나드는 불자 모두가 가피를 입어 명실공히 이 지역의 기도처로 자리매김했다. 청매스님의 뒤를 이어 화정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20년 동안 가람수호와 수도정진에 힘써 오늘의 사세를 확고히 했다.

 

왕산사 터의 지세를 보면 백두대간에서 시작해 동쪽으로는 오봉산 금강산 향로봉으로 이어졌다. 서쪽으로는 한북정맥이 백암산, 대성산, 백운산, 운악산, 국사봉, 왕방산으로 용트림하면서 이어져 한강과 임진강 사이의 합수지점에 이르러 장명산이 한북정맥의 끝을 맺는다. 바로 이 사이에 왕방산 왕산사가 자리하고 있다.

 

풍수지리 원전인 ‘장경(葬經)’이나 ‘금낭경(錦囊經)’에 따르면 관지지법(觀支之法) 은은륭륭(隱隱隆隆) 미묘현통(微妙玄通) 길재기중(吉在基中)이라고 하고 있다.



용과 지룡을 보는 법은 은복(隱伏)이 되어 잘 보이지 않으나 돌출되는 용맥의 진행을 잘 관찰해야 하므로 물의 분합 주변의 좋은 봉우리와 영송(迎送) 등이 잘 아우러지는지를 살펴야 한다. 지룡은 물이 고여 만나 멈추는 곳에 사방이 흩어지지 않고 결합을 이루며 왕성한 힘을 얻는다. 이와 같은 곳은 미묘하여서 신묘한 기운과 서로 통하는 길지가 된다.

이러한 지덕을 갖춘 곳이 왕방산 왕산사이다.

 

왕산사에는 지극정성으로 소원을 빌면 돌이 무거워 떨어지지 않는 것을 경험하게 되며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는 ‘소원돌’이 있다.  ⓒ 경기뉴스광장 허선량

2001년 4월 왕산사 주지로 법해 스님이 부임해왔다. 바위와 갈대가 무성한 왕산사는 당시 기도하던 부부와 기도 스님이 상주해 있었다. 그런데 찾아오는 불자들은 대부분 대웅전이 아니라 미륵불을 찾아가므로 기도 스님은 미륵불 앞에 있던 돌멩이를 치웠다.



그러나 찾아오는 불자마다 돌멩이를 찾는 것이었다. 꿈에 본 사람도 있었고 그동안 영험함을 경험한 불자들이었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주지 스님은 기도 스님에게 돌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했는데 기도 스님은 어디에 버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난감하던 차에 절에서 일하는 처사에게 절 주변의 풀을 모두 뽑으라 했다. 더운 여름날 넓은 범위의 풀을 뽑는 일은 쉽지 않아 고심하고 있던 처사 앞에 주지 스님 뒤를 졸졸 따라오는 개도 아니고 양도 아닌 하얀 털북숭이 짐승이 목격되었다.



그리고는 삼성각 갈림길에서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바로 그 지점에서 돌멩이가 발견되었다. 돌멩이는 제자리에 돌아왔고 기도 스님은 웬일인가 하여 돌멩이를 들어보았으나 들리지 않았다. 주지 스님 역시 그 말을 듣고 달려가 돌멩이를 들었으나 아랫돌과 같이 들려 올라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돌멩이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게 하는 기운이 서린 것이 아닌가 하였다. 그래서 영험함이 있는 돌멩이라는 것을 알고, 소원돌이라 이름 붙였다. 지극정성으로 소원을 빌면 돌이 무거워 떨어지지 않는 것을 경험하게 되며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는 경험담도 숱하게 전해오기 시작했다.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가치관이 상실된 혼돈의 시대 속 왕산사는 많은 이들을 위한 참된 삶의 지표와 실천의 등불이 되고 있다. 바쁜 일상 속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고 싶다면 왕산사를 찾아 신묘한 기운을 얻고 소원돌에 원하는 바를 빌어보길 추천한다.

/ 경기도뉴스포털 이준균기자

 

 

깊이울 유원지 

깊이울계곡은 왕방산 북동릉과 국사봉 북동릉 사이에 협곡을 이루는 와북천 발원지다. 와북천은 87번 국도와 만나는 심곡리 깊이울 마을(상심곡)에서 북으로 틀어 계류리~가양리를 지나 영평천으로 합수된다.

 

 

이 골짜기 안에는 자연발생 유원지가 조성되어 있다. 유원지내에는 20여 곳의 식당들이 대부분 오리요리를 전문으로 소님들을 맞고 있다. 이 오리 요리를 즐기기 위해 이곳을 하산지점으로 잡는 이들도 많다. 편의시설은 빈약한 편이다. 심곡저수지 상부주차장 옆의 급수대 겸 취사장과 화장실 몇 개가 전부다.

 

겉으로 보아 아름다운 이 계곡에도 문제점들을 간직하고 있다. 심곡저수지 남쪽 왕방산 북동릉 북사면 1,196,576㎡(7필지 약 36만여 평·떡바위에서 심곡2리 경로당 구간)는 성균관대학교 학술림이다. 이곳은 사유지이므로 앞으로 등산로가 막힐 확률이 높다.

 

포천시는 심곡저수지 북서쪽 계곡 상류와 국사봉 남동쪽 사면에다 자연휴양림을 조성하려고 현재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자연휴양림이 생기게 되면 편의시설은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이 계곡을 에워싸고 있는 산자락에도 ‘참나무 시들음병’이라는 마수가 뻗쳐 방제약제가 많이 살포되고 있다. 따라서 산행 중 계곡물을 식수로 마신다는 얘기는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깊이울유원지 오리고기 전문점 고향나들이

 

왕방산과 국사봉을 오르는 신북면 심곡리 깊이울에는 조수보호구역 팻말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만큼 새들의 합창을 많이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유원지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는 으레 식당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오리고기 전문점 10여 곳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 식도락가들에게는 오리고기 천국이요, 오리들에게는 수난의 지대다. 조수보호구역이라는데 조수인 오리가 수난을 당하고 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고향나들이(031-533-6124)’로 들어갔다. 소문대로였다. 한 줄로 길게 펼쳐 놓은 식탁에는 주중 점심때가 지난 시간인데도 식탁을 차지하기 힘들었다. ‘알바’로 일한다는 애띤 모습의 인근 대학생들이 모두 예쁘고 친절했다. 이 집의 특징은 싸다는 것이다. 소비가 많다보니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것이 업소측의 설명이다.

 

음식은 구이와 주물럭, 훈제 세 가지로 차려내는데, 일행 세 사람은 ‘위대(胃大)’하지 않은 탓인지 구이 반 마리로도 만족했다. 120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규모에 주차장이 충분했다. 구이 1마리 33,000원. 반 마리 20,000원.

 

깊이울계곡~국사봉~깊이울고개~정상 

깊이울유원지 입구 버스정류소에서 서쪽으로 마주보이는 산이 국사봉 북동릉이다. 정류소에서 서쪽 길로 들어서서 제일꽃농원을 지나면 삼거리다. 오른쪽 식당 방면은 북동릉 가마골고개로 이어진다. 가마골고개로 올라 국사봉으로 가는 길도 있다.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10분 가면 심곡2리 경로당을 지나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 식당가 골목으로 들어선다. 식당가 골목을 벗어나 깊이울민박 오른쪽(북쪽) 좁은 길로 들어가 3~4분 가면 외딴 집으로 가는 길과 만난다. 여기에서 왼쪽 숲길로 5~6분 오르면 아름드리 잣나무숲으로 들어선다.

 

햇볕이 들지 않고 갈비가 푹신거리는 잣나무숲길로 8~9분 오르면 가마골고개 방면과 만나는 북동릉 안부에 닿는다. 안부에서 왼쪽 능선길로 45분 가량 오르면 무명봉(북쪽 430m봉 능선 갈라지는 곳) 남측 사면길로 들어선다. 사면길을 벗어나 690.4m봉(북서쪽으로 능선 갈라짐)을 뒤로하면 곧이어 조수보호구역 푯말과 산제당터가 나타난다.

 

푯말을 지나 10분 내려가면 ‘강우량관측 경보발령용 철탑’에 닿고, 철쭉나무 군락으로 20분 오르면 왼쪽 절골 방면과 만나는 삼거리다(깊이울계곡의 기도원에서 절골로 들어서는 계곡 초입에 ‘입산금지’ 푯말이 있다. 절골을 경유해 국사봉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드물고, 왕방산에서 국사봉에 오른 다음, 절골로 하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삼거리에서 직진, 10분 오르면 급경사 콘크리트 포장길에 닿는다. 이 군사도로는 새목고개에서 올라온다. 길 건너편 공터에 ‘국사봉 정상’이라 쓰인 안내푯말이 있지만, 실제 정상은 군부대 출입문 안쪽에 있다. 민간인 출입이 안 된다.

 

출입문 앞에서 오른쪽 철망 옆으로 난 길을 따라 4~5분 가면 군부대 남서쪽 출입문이 나온다. 이 출입문에서 오른쪽 내리막으로 약 100m 가면 헬기장이 있고, 남쪽 깊이울계곡 건너로 왕방산이 마주보인다.

 

국사봉 정상을 대신하는 헬기장에서 펼쳐지는 조망이 일품이다. 왕방산 북동릉 뒤로는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도마치봉 민드기봉 강씨봉 귀목봉 청계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이 명지산 화악산 등과 함께 조망된다. 왕방산 정상 오른쪽 뒤로는 운악산 주금산이 시야에 와닿는다. 남으로는 오지재고개와 해룡산 칠봉산이 멀리 도봉산과 함께 조망된다.

 

헬기장에서 남릉으로 20분 내려서면 통재비고개(←포천, 임도·새목고개 1.5km→ 푯말)에 닿는다. 계속 남쪽 능선길로 12분 가량 오르면 나뭇가지 사이로 왕방산이 보이는 587m봉이다. 587m봉에서 왼쪽으로 휘도는 능선길로 25분 가면 깊이울고개로 내려선다. 깊이울고개에서 직진, 약 30분 오르면 왕방산 정상이다.    

 

깊이울계곡 입구 버스정류소를 출발해 깊이울 민박집~잣나무숲~산제당터~절골 갈림길~국사봉~통재비고개~깊이울고개를 경유해 왕방산 정상에 이르는 산행거리는 약 9km로 5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제일꽃농원을 지난 삼거리에서 가마골고개를 경유하는 경우에는 산행거리 약 10.5km에 6시간 이상 소요된다.

/ 박영래 객원기자

 

깊이울계곡~깊이울고개~정상 

 

깊이울계곡 식당가를 지나 깊이울민박집에서 직진하는 도로를 따라 15분 들어서면 심곡저수지 상부 주차장에 닿는다. 주차장에서 3~4분 들어가 만남교를 건너 마지막 화장실을 지나 계류를 건너면 푯말(←깊이울 1.1km, 정상 2.7km→)이 나온다. 푯말에서 오른쪽으로 계류를 건너 둔덕으로 올라서면 평상 2개가 있는 절골 입구 삼거리다. 오른쪽 숲속으로 수백 평 초원지대가 보이는데 이곳이 옛날 절이 있었던 자리로 여겨진다.

 

절골 입구 삼거리에서 서너 차례 계류를 건너 15분 가량 들어서면 두 번째 푯말(←깊이울 2.0km, 정상 2.1km→)이 나온다. 이 푯말을 지나 4~5분 가면 왼쪽 계류가에 두께 1m, 지름 4m인 떡바위가 보인다. 이어 햇볕이 들지 않는 숲길로 8~9분 가면 붉은 색 경고판(위험지역 경기소방)이 나오고, 4~5분 거리인 합수점을 지나 7~8분 더 들어서면 푯말(깊이울 유원지→)에 닿는다.

 

푯말을 지나 왼쪽으로 계류를 건너는 지점에 삼거리가 나온다. 어느 길로 가든 약 100m 상류에서 다시 만난다. 이어 3~4분 더 들어서면 조수보호구역 푯말이 선 합수점 삼거리에 닿는다. 오른쪽 계곡길은 통재비고개로, 왼쪽 직진 길은 깊이울고개로 이어진다. 왕방산 정상은 깊이울고개 방면 길이 지름길이다.

 

 

합수점에서 왼쪽 계곡길로 13분 가량 오르면 쓰러진 나무 앞 푯말(←깊이울저수지 3.5km, 왕방산 정상 1.7km→)이 나오면서 이후로는 물소리가 씻은 듯 사라진다. 가파는 산길로 25분 오르면 깊이울고개에 닿고, 왼쪽 왕방산 북서릉길로 약 30분 오르면 정상이다.

 

조수보호구역 푯말 삼거리에서 오른쪽 통재비고개로 경유해 국사봉으로 갈 수도 있다. 통재비고개는 국사봉에서 왕방산 방면, 또는 왕방산에서 국사봉으로 종주하다가 시간에 쫓기거나 힘이 부치면 깊이울계곡으로 하산할 때 주로 이용된다.

 

깊이울 유원지 입구 정류소를 출발해 깊이울계곡~심곡저수지 상부주차장~절골 갈림길~떡바위~통재비고개 갈림길~깊이울고개를 경유해 정상에 이르는 산행거리는 약 7 km로, 4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 박영래 객원기자

 

숙식

○깊이울계곡 유원지 방면
숙박은 오리마을 식당가에 있는 깊이울민박(031-532-0121), 뜨락민박(031-533-5168), 통나무 펜션인 계곡의 아침(031-533-7750), 저수지 끝머리 매점을 겸한 머물고 싶은 곳((031-531-2215) 등 이용.
식사는 깊이울 유원지 식당가에 있는 오리숯불구이(031-534-6162),  안장골(031-531-5292), 청기와(031-532-3359), 고향나들이(031-533-5292), 대추나무집(031-532-6015), 마늘오리(031-531-5248), 깊이울두부촌(031-532-6581), 한방오리 031-533-8182), 북경불타는 오리(031-532-3200), 메아리산장(031-533-0982) 등 이용.  


○무럭고개 방면
약수터매점(031-535-8515), 약수골산장(031-535-5209) 등 이용.


○호병골 방면
한옥집(031-535-4985), 서울추어탕(031-535-9346), 호수산장(031-535-6698), 밤나무집(031-535-5800), 물맑골식당(031-535-3301), 산하(031-536-6395) 등 이용.


○오지재 고개
이동매점(주인 박수분·011-9947-3436)에서 잔치국수(3,000원), 우동·라면(2,000원), 칡즙(3,000원), 마두즙(2,000원), 커피(1,000원) 등을 판다. 


○왕방이 방면
왕방이 마을에서 동두천 방면 설렁탕 전문 진미옥(031-865-3626), 평남초계탕 막국수(031-861-2413), 떡갈비 전문 송월관(031-865-2428)과 예지원(031-869-9323), 삼계탕·수육·부대찌개 전문 은행나무집(031-862-9040), 왕방이 마을에서 왕방폭포 방면 폭포휴게소(031-867-3554), 귀거래식당(031-867-9792), 산마루집(031-867-8426) 등 이용.

 

자가농장의 닭으로 백숙 호방골 한옥집

왕산사 가는 길목 마을을 호병골이라 부른다. 마을 지형이 병(甁) 같다고 해서 호병골, 또 한편으로는 술을 무척이나 즐기던 한 노인의 이야기에서 연유된 회병(廻甁)골이라는 이름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그 노인은 술이 담긴 호리병을 항상 허리에 차고 다니면서 술을 마셨다고 한다. 어쩌다 술에 취해 호리병을 잃어 버려도 마을사람들은 그 술병의 주인을 알고 돌려주었다는 뜻으로 회병(廻甁)이라는 골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또 태조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병사들이 호위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태조와 얽힌 설도 있다. 지금은 호랑이 병사라는 호병(虎兵)골로도 쓰고 있다. 이 호병골에는 ‘호병골한옥집(031-535-4985)’이라는 닭고기집이 있다. 포천의 업소 중 명업소로 알고 찾아간 집이다.

 

닭요리 솜씨로 포천 일대에 크게 소문이 난 김영숙씨는 자가 농장에서 5개월간 기른 닭을 잡아 밤 대추 황기 엄나무 오갈피를 넣어 백숙을 끓인다. 집에서 기른 닭인 만큼 음식 값과 질(맛)에서 다른 업소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 여러 사람의 한결같은 추천의 말이었다.

 

단체손님들은 처음에는 순두부보리밥(5,000원)으로 예약하지만, 닭백숙(30,000원) 맛의 유혹을 참아내지 못하고 결국 추가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80명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규모에 주차공간도 안주인 인정처럼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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