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성북동걷기 한성대입구역-길상사-수연산방
이익우 걷기모임 유유자적회원
-총 걷는 거리: 6㎞
-총 걷는 시간: 1시간 25분(쉬는 시간 포함하지 않음)
서울 성북구 성북동은 서울의 어느 곳보다도 옛 사람의 흔적과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곳으로 골목길을 고샅고샅 누비다 보면 옛 사람들이 살던 모습과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1. 한성대 입구역~최순우 옛집(0.8㎞/10분)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입구로 나와 편의점 ‘훼미리 마트’를 지나 곧장 앞으로 간다. ‘한마음 동물병원’ ‘성북1동사무소’에 이어 ‘신한은행’을 지나면 왼쪽으로 골목길이 두 개 보인다. 오른쪽 골목(‘제일 크리닝’과 ‘원희패션’ 사잇길)으로 50m 들어가면 ‘최순우 옛집’이다. 혜곡 최순우 선생은 이곳에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집필했다고 한다.
※ 개방시간: 4~11월, 화~토, 오전 10시~오후 4시 / 기간 내 매월 넷째 주 일요일 오후 2~5시 특별개방(9월은 다섯째 주 개방, 넷째 주 휴무) / 추석 당일(25일) 휴무 / 문의 (02)3675-3401
2. 최순우 옛집~성락원(0.7㎞/10분)
다시 큰 길로 나가 ‘보성마트’ 쪽으로 길을 건너 왼쪽으로 쭉 가면 선잠단지(先蠶壇址)가 나온다. 선잠단지는 양잠의 창시자인 중국의 서릉(西陵) 씨를 모셔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선잠단지를 오른쪽으로 끼고 올라가면 ‘세븐일레븐’이 있는 사거리다. ‘세븐일레븐’ ‘서울부동산’ 사잇길로 200m 정도 가면 느티나무 뒤로 성락원 입구가 보인다. 성락원(城樂園)은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었다. 서울에 남아 있는 민간의 원림으로는 거의 유일하며 자연과 인공이 조화롭게 어울린 조경이 빼어나다.
아름다운 정원 '성락원'
대기업의 사유지로 일반인이 들어가려면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조용히 둘러보는 정도의 출입은 가능하므로 양해를 구할 것
3. 성락원~길상사(1㎞/15분)
다시 ‘세븐일레븐’까지 내려와 ‘세븐일레븐’을 끼고 오른쪽으로 간다. 천주교 성북동 성당을 지나 계속 걷다 보면 갈림길이다. 길 앞에 ‘육화사’라고 커다랗게 쓴 표지가 있고 그 옆 전신주에 작은 ‘길상사’ 표지가 보인다. 표지를 따라 왼쪽으로 올라가 ‘북악슈퍼’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길상사(吉祥寺)다.
길상사 02-3672-5945~6, www.kilsangsa.or.kr
70년대 잘나가던 요정에서 1997년 도심 속 사찰로 새롭게 태어났다. 성북동을 찾는 모든 이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매력은 여느 절 같지 않다는 것. 주요 전각의 처마에 화려한 단청을 쓰지 않았고, 나무 결을 살려 편한 느낌을 준다. 관세음보살상에도 신자·비신자 가리지 않는 도심 절의 넉넉함이 느껴진다. 관세음보살이라기보다 성모마리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이 조각상은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서울대 미대 교수의 작품. 방에 앉아 명상하는 ‘침묵의 집’은 오전 10시~오후 5시 이용할 수 있다. 절 입장은 오전 4시~오후 8시
4. 길상사~심우장(1.5㎞/20분)
길상사 앞에서 길을 건너 150m 정도 오르막을 따라가면 갈림길이다. 왼쪽 삼청터널 방향으로 간다. 처음 만나는 사거리에서 왼쪽 성북동길 쪽으로 간다. 1111번 버스 종점을 지나 왼쪽 일식집 ‘비양도’ 맞은편에 ‘심우장’ 표지판이 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계단을 올라가면 심우장이다. 심우장(尋牛莊)은 만해 한용운 선생이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지은 자그마한 집이다.
조선총독부를 등진 북향 집 '심우장'
좁은 골목 안으로 꽤 많이 올라가야 볼 수 있다. 사람이 거주하는 개인 주택과 함께 있다. 어색해하지 말고 들어가서 구경하면 된다.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의 유택. 1933년에 지은 집으로 남향을 선호하는 한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북향 집이다. 이는 조선총독부와 마주보는 것이 싫었던 한용운의 애국심 때문.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 규모의 팔작지붕 집인 심우장에는 그의 초상화와 글씨, 연구 논문집, 옥중 공판 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5. 심우장~수연산방(0.5㎞/10분)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 다시 큰길로 나간다. 큰길에서 길을 건너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성북2동사무소’가 있고 동사무소 왼쪽에 ‘수연산방(壽硯山房)’이라는 전통찻집이 있는데 이곳이 상허 이태준 선생의 옛집이다. 작은 문으로 들면 그리 넓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마당이 있고 마당 오른쪽에 안채와 사랑채를 한데 모아 만든 아담한 한옥이 있다. 지금은 이태준 선생의 후손이 전통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태준 선생은 이곳 수연산방에서 1933년부터 14년간 머물렀다. 이 집에서 단편 ‘달밤’과 ‘돌다리’를 썼고 중편 ‘코스모스 피는 정원’, 장편 ‘황진이’와 ‘왕자호동’을 썼다고 한다.
고가의 멋스러움 '이태준가'
24시간 문이 열려 있어 언제 어느 때고 구경이 가능하다.
근대 순수문학의 기수인 상허 이태준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살면서 많은 문학 작품을 집필했던 가옥이다. 이태준은 <달밤> <돌다리> 등 주옥 같은 단편집과 여러 장편소설, 수필집을 남겼으며 해방 후에 월북하였으나 '퇴폐적 부르주아 문학가'로 몰려 숙청됐다. 앞에 내를 두고 뒤에 동산을 낀 터에 서남향으로 자리 잡은 이태준 가는 현재 '수연산방'이라는 찻집으로 쓰이고 있다.
매월 둘째·넷째 주 토요일엔 이 곳에서 직접 다도를 배워볼 수 있다. 1인당 2만5000원을 내면 약 1시간 동안 전문가가 다도를 가르쳐 준다. 전통 다과와 과일, 케이크도 차와 함께 맛볼 수 있다. 손님은 매일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 받는다. 문의 (02)764-1736
산방은 산 속에 있는 집을 이르는 옛말로, 동시에 서재를 뜻하기도 한다. 이태준 선생이 〈수연산방〉이라 이름지을 당시 성북동은 거의 ‘산 속’에 가까웠고 또 그이가 이 집에서 집필을 하고 문인들과 교류했기에 이래저래 산방의 두 가지 의미를 다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많은 기록들에, 1933년부터 1946년까지 14년간 살며 문학작품을 쓴 곳이라고 되어 있는데, 제가 어머니께 전해듣기로는 1943년부터 1946년 월북하기 직전까지 사셨다고 합니다. 빈집을 선생의 큰누님 딸인 저희 어머니가 맡게 되었고, 저에게로 이어진 거지요.”
〈수연산방〉의 주인이자 이태준 선생의 종손녀인 조상명 씨의 말이다. 그녀는 탯자리이기도 한 이 집에서 이태준 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감나무, 사철나무들과 함께 나이테를 키우고 결혼을 해서 살림을 꾸렸다. 월북작가라는 점 때문에 ‘이태헌가’라는 가명을 붙였을 만큼 ‘쉬쉬’하며 살아야 했던 시절을 지나, 해금과 함께 사람들이 그녀의 살림집으로 찾아들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이태준가’라는 점 때문에,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용케도 보존된 민속자료 제11호를 보기 위해, 또는 지나다 말고 막돌로 쌓은 화장담이 호박잎을 이고 있는 정경이 신기해 빼꼼이 문을 열고 들여다보는 사람까지. 결국 조상명 씨는 이 ‘의미 있는 집’을 공개하기로 했다. 누구나 찾아들어 집 구경도 하고 차 한잔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곳으로.
손님들이 가장 즐겨 앉기 원하는 곳은 누마루. 방과 연결된 한 면을 빼고는 삼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다. 이상, 김유정, 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의 멤버로 활약했으니, 그 문우들이 찾아와 문학과 세상을 이야기 한 곳도 이 자리가 아닐까 생각하면 쉬이 틀고 앉은자리가 예사롭지 않다.
다시 거실에 해당하는 방을 지나 맞은편 방으로 향하면 문 앞에 이태준 선생이 사용했던 고가구에 도자기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어 눈길을 머물게 한다. 방에 들어서면 맞은편 벽에 ‘눈꼽재기창’이라고 불리는 작은 창호지 쪽창문이 보인다. 유리창이 없던 시절, 인기척이 들리면 살짝 열고 넌지시 바깥마당을 내다보던 창이다.
창가 차탁 앞에 앉으니, 누군가가 ‘계셔요?’ 하며 부를 것만 같다. 상허의 단편 「달밤」에 나오는, 순하다 못해 반편이 소리를 듣는 주인공 황수건이 노란 참외 세 알을 들고서 말이다.
눈꼽재기창 옆으로는 아(亞)자 무늬 창살로 된 미닫이창도 있다. 창살 가운데 네모난 부분에 유리를 덧댄 것은 전통의 것에 당시 신문물의 실용성을 더한 것인데, 간유리 밖으로 내다보는 맛이 창호지에 나뭇잎을 붙인 정서와 어우러져 은근하다. 문을 밀어 열고 쪽마루 난간을 지나 수국과 백일홍, 패랭이꽃과 들국화 흐드러진 정원을 시선으로 좇다 보면 마음에도 이내 꽃물이 든다. 거기에 솔잎 향기 은은한 송차라도 한잔 곁들이면, 지금 있는 곳이 과연 서울 시내인가 의심케 된다.
집 자체가 볼거리, 이야깃거리 많은 곳이라 하여, 마실 거리, 먹거리는 아무렇지 않게 두었느냐 하면 그게 아니다. 녹차ㆍ대추차ㆍ쌍화차ㆍ매실차 등 전통찻집에 있을 법한 종류는 다 있는데, 대개가 주인 조상명 씨가 직접 담근 것들이라 맛이 별나다. 또 신세대 따님들이 개발한 녹차쉐이크는 〈수연산방〉을 찾는 젊은 손님들의 단골메뉴다.
방안에서 미닫이창으로 풍경을 내다보며 마시는 일이 갑갑하면, 아예 찻잔을 들고 정원으로 나설 수도 있다. 옛 상심루가 있던 주변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정원에도 작은 야외용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다. 그 자리에서 날씬한 누마루의 처마선을 바라보거나 상허가 직접 심었다는 사철나무와 문학비를 보면서 차를 마시는 것도 색다른 감상을 준다.
도심 속에 자리한 산방, 〈수연산방〉. 상허를 알지 못하고, 한옥의 건축양식을 모를지라도 한번 찾아가볼 일이다. 햇살이 화사한 날이든 혹은 비 오거나 눈 내리는 날이든 두 팔을 벌려 반기는 듯한 자세로 열린 일각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아 든 때처럼 마음이 흔연해질 것이다. 차 한잔 값을 치르고 돌아나올 때에는, 댓돌 위에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모을 때와 매한가지로 마음이 내남없이 정갈해질 것이다.
6. 수연산방~한성대 입구역(1.5㎞/20분)
성북2동사무소 앞으로 나와 가던 내리막 큰 길로 계속 간다. 성북파출소를 지나면 선잠단지가 있고, 계속 직진하면 한성대입구역 6번 출입구다.
한용운과 심우장
서울 동소문동 네거리에서 성북동으로 들어서서 삼청동으로 통하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옛 북장골 골짜기. 성북2동사무소를 지나 200여 미터에 왼쪽으로 심우장 안내판이 나타나고, 다시 산비탈 골목길을 50여 미터 올라가면 심우장이니, 위치는 심우장길 16호, 성북동 222번지에 해당한다.
성북동은 도성 바깥의 대표적 서민층 마을로 현재에도 낡은 구옥들이 오밀조밀 몰려있어, 차량은 고사하고 보행인이나 겨우 통행할 정도의 옹색한 동네다. 총독부를 바라보기가 싫어 등을 돌려 북향으로 자리했다 하니, 만해의 꼿꼿한 기개를 짐작할 수 있겠다. 백 평 남짓한 좁은 터엔 정면 4칸의 일자형 심우장 건물이 전부이고, 담장 가엔 무궁화와 소나무로 둘레를 삼았고, 만해가 심었다는 향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잘린 채 마당 모서리에 힘겹게 버티고 있다.
서울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된 심우장은 당시 금서(禁書)로 묶였던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부도 속에 넣어 단재탑을 만들려다 발각된 곳이며, 김동삼 의사가 서대문 구치소에서 돌아가셨을 때 만해가 그의 시신을 인도받아 5일장을 치룬 곳으로서 민족혼이 살아있던 조선 땅의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또한 <흑풍(黑風).1935> <후회(後悔). 1936> <박명(薄命).1938> 등의 신문 연재소설을 집필했던, 만해가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의 유일한 고택이었다.
만해는 평소 세 가지의 소원이 있다 했는데, 부처의 정신으로 살고자 부처님의 땅을 가보는 것이 첫째고, 둘째는 중생제도를 위해 신문이나 잡지 등 언론매체를 경영하는 것이요, 셋째는 백두산 천지에 올라보는 것이라 했다.
또한 3.1운동으로 옥중에서 3년을 있으면서 스스로 투쟁 3원칙을 세워 철저히 실행했다. 내 나라를 찾는 떳떳한 일을 했으니 변호사를 대지 말 것이며, 자신만이 호의호식할 수 없다 하여 사식을 금했으며,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으니 보석을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함께 독립 만세를 불렀던 많은 이들이 각서를 쓰거나 병보석을 빌미로 출옥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일로, 만해의 강인한 신념을 가히 헤아릴 만한 일화가 아닐 수 없다.
민족지도자, 불교사상가, 민족시인으로 호칭되는 만해는 독립된 조국에서 민족의 극락정토실현을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44년 6월 29일, 세수 66세를 일기로 심우장에서 입적했다. 일제의 학병 징용에 반대하여 일체의 배급을 거부하고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적 양심을 지키다가 영양실조가 되어 그로 인해 건강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그는 겨울날 어느 하루 마당의 눈을 쓸다가 졸도한 후, 이내 반신불수로 혼수상태를 거듭하다가 결국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시신은 미아리 화장장에서 다비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후손이 번듯한 묘소는 단장도 잘되었다만, 만해의 묘소는 여늬 것에도 비할 바가 못 된다. 사진 한 장조차 제대로 찍기에도 비좁을 정도다. 돈 좀 있고 권세 나부랭이나 있으면 별 것도 아닌 제 조상 묘 덩어리는 호화분묘 만들어 놓고, 역사의 인물들은 후손 변변치 못하다고 내던져 둔 것이나 아닌지?
넓은 자리에 석물 화려한 모습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양지바른 곳에 잔디라도 제대로 자라고, 찾아오는 이들이 걸터앉을 자리라도 있다면 이렇게 비감하지는 않을 텐데, 그토록 고대하던 광복도 벌써 반세기가 넘었지만 어느 누구도 국립현충원 독립지사 묘역으로 모시자 하는 이가 없나 보다. 호사스런 분묘로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이나 받느니보다, 용마산 꼭대기 대여섯 평 비탈면에 겨우 매달려 있어도, 만해의 속마음은 차라리 더 편할 지도 모를 일이다. 동네 이름도 ‘망우(忘憂)’라 했으니, 여기 곧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라 짐짓 위로를 삼아 본다.
[와우트래블 이기순의문학기행]
산책하기에 딱 좋은 곳 '서울성곽'
'우리밀국시' 맞은편에서 올라간다. 끝까지 오르면 경사가 매우 가파른 편. 구두를 신었다면 중간까지만 올라가는 것이 좋다.
조선시대에 쌓아올린 석축 성벽으로 4대문과 4소문을 둘러싸고 있다. 식민지 시대에 상당 부분이 헐려 몇 곳에만 남아 있는데, 성북동 성곽은 그중 보존이 제일 잘 된 곳. 능선을 따라 둘러친 성곽 옆으로 운치 있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데이트 코스로도 그만이다. 밤에는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경이 아름답다.
돈가스·칼국수…소문난 먹자골목
성북동의 관문은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버스정류장 ‘쌍다리앞’과 ‘동방대학원대학교’ 사이는 식당 30여 곳이 있는 맛 골목이다. 터줏대감 격인 기사식당들과 돈가스집에 만두집·한정식·칼국수집 등이 합류했고, 한옥도 많다. 간판도 가지가지. 깔끔한 현대식부터 족히 30년은 됐음직한 낡은 간판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공통점은 모두가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는 점. 사실은 다들 그럴 만한 사연을 가진 터여서, 고르는 일이 즐거운 고민이다.
성북동1가 9번지 국시집 02-762-1924
한성대 입구 5번출구(간송가는길 맞은편)-혜화동방면으로400m가다 첫 번골목 우회전 100m 좌측
성북2동 간송맞은편 돼지갈비 02-764-2420
이집은 맛과 스피드로 35년간 택시기사들의 입맛을 잡아온 성북동 터줏대감이다. 주문하고 3분이면 갓 구운 돼지갈비 백반 한 상이 뚝딱차려진다. 연탄불에 두 번 구워 한 입 크기로 잘라낸 돼지갈비와 조개젓. 상추쌈. 시원한 조갯국이면 밥 한공기가 게눈 감추듯 사라진다.
주메뉴-돼지불백 5,000, 돼지주물럭백반
성북2동 124-7 용마루 02-763-6363
서울과학고뒷편, 성북초등 건너편에 위치한 SBS에서 2008.10.22일 맛집으로 소개된 집으로 황태구이백반(6,000)과 황태전(10,000)이 맛있는 황태요리전문점이다.
성북동 237-1 성북동집 02-747-6234
삼청동에서 성북동 넘어가는 길 좌측 금왕돈가스평에 위치하며 중앙일보에 소개된 맛집으로 만두가 먹고싶을때 생각나는 집으로 수제 만두·칼국수 전문점이다. 직접 빚어 만든 만두는 속이 꽉 차다 못해 미어터질 듯 하다.
궁중요리의 진수 '이향'
임금님 수라상에서나 볼 수 있는 궁중음식을 코스별로 맛볼 수 있다. 조선 말기의 화려한 전통 요리를 그대로 재현하여 먹기 아까울 정도. 자연송이로 만든 신선로, 깔끔한 떡산적과 갈비구이, 궁중 별미인 새우전복잣즙무침은 이곳의 특별 요리.
data 02-743-2540 11:30~22:00 (연중 무휴) 가능 코스 (A) 5만원, (B) 4만원, (C) 3만원
성북동 메밀수제비
한성대에서 성북동방향으로 음식점거리 끝부분 / 메밀요리 전문점이지만 누룽지닭백숙이 인기
세트로 주문하면 항상 제일 먼저 메밀전이 나온다. 얇고 바삭하게 익힌 위에 초고추장이 뿌려진 메밀싹과 돌나물이 가운데 함께 나오는데 메밀전과 함께 씹으면 전의 쫄깃함에 아삭함에 더해진다. 맛은 좋지만 강원도 본토의 메밀전과는 조금 다르다. 이 집이 얇게 잘 부쳐낸 파전과 다르지 않은형식이라면 강원도에서는 메밀전을 전병처럼 얇게 부쳐서 야채는 들어가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여러 겹 겹쳐 낸다. 그렇게 여러 번 겹쳐야 전다워 질만큼 한 장 한 장을 매우 얇게 부치는데 요걸 분리해가면 먹는 재미가 쏠쏠했던 기억이 난다.
깔끔한 외관과 실내도 맘에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릴 때 미리 주문을 받아주는 것도 좋다. 보통 누룽지 닭백숙 세트를 많이 드시는데 메밀전 하나, 닭백숙 한 마리, 커다란 항아리에 들은 누룽지 가득이 메인 요리이다. 네 명 정도 먹어야 딱 좋은 양이지 싶다. 둘이 갔을 때는 음식이 나오기 전에 미리 반은 포장으로 해 달라고 하면 깔끔하게 포장해주고 누룽지 반, 닭백숙 반 마리만 내준다. 같이 간 동행과 배불리 먹고도 집에도 가져갈 수 있고 일석 이조다. [출처 - where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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