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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의성 79번국지도 사촌마을

by 구석구석 2007.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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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통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사촌마을'

고려 충렬공 김방경의 후예인 감목공 김자첨이 1392년에 안동 회곡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중국 사진촌(沙眞村)을 본떠 사촌(沙村)이라 불렀다는 사촌마을. 송은 김광수, 서애 유성룡, 천사 김종덕 등 많은 유현들이 태어난 마을이다. 1750년 무렵에는 병촌 유태춘도 이곳으로 이주를 하여 수백 년 동안 안동김씨, 풍산유씨 등이 대대로 살았던 곳이다.

사촌마을은 전통 옛집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더러는 새롭게 고치거나 짓기도 했지만 마을 전체가 옛날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마을 들머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누런 흙길로 마을 전체를 흙길로 해 놓은 곳은 이곳뿐이 없을 듯하며 차도 1톤이 넘으면 못 들어가는 곳이다.

 

 

누런흙길과 전통가옥들 / 오마이뉴스

 

집집이 앞에는 텃밭이 있고, 상추랑 고추, 마늘 따위를 심어 놓았다. 나무로 엮어 만든 사립문도 있고, 문 안에는 변소가 따로 있고 집은 마루가 가운데로 앞뒤가 트여 있어 여름에 거기 누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저절로 잠이 들 거 같다.

만취당 / 김연옥

마을 한가운데에는 '만취당(경북유형문화재 169호)'이 있는데, 퇴계 이황 선생의 제자였던 김사원이 선조 15년(1582)부터 세 해에 걸쳐 만들고 자기 호를 따서 이름 붙인 대청으로 집이 매우 크고 이 마을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또 나이가 500살이나 된 '사촌리 향나무(경상북도 기념물 107호)'가 꽤 멋스럽다.

 

 

흙돌담과 만취당전경 / 오마이뉴스

 

마을을 벗어나 끄트머리에 있는 볼거리로 '사촌마을 가로숲(천연기념물 405호)'이 있다. 지난날 마을로 불어 닥치는 샛바람을 막아 이곳 사람들 삶터를 보호하려고 심었다는데 이 나무들은 모두 400~500살쯤 되었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405호인 '사촌마을가로숲'/손현희 

매봉산 기슭에서 시작하여 남쪽 하천변으로 길게 뻗어 있는 바람막이 숲은 높이 15-20m 정도 되는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10여 종의 나무 500여 그루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마을 서편에 있다 하여 서림(西林)이라 부르는 그곳은 무더운 여름에는 마을 사람들과 지나는 길손의 시원한 쉼터가 되어 주는 곳이기도 하다.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우리 선조들의 놀라운 지혜를 엿볼 수 있었던 사촌리가로숲. 문득 300여 년 전에 해안을 따라 조성된 남해군 물건리 방조어부림(천연기념물 제150호)의 풍경도 떠올랐다. 강한 바닷바람과 해일을 막고 물고기 떼를 끌어들이기 위해 물건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어 낸 것이다. 

 

비가 내리면 숲 사이로 물이 흘러내려 더욱 운치가 있을 것 같은 사촌리가로숲에는 서애 유성룡(1542〜1607)의 출생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예부터 사촌마을 터가 명당이라 그곳서 삼정승이 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신라 때 이미 정승이 한 분 나왔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두 분의 정승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선(先)안동김씨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사촌마을 출신으로 송은 김광수의 딸이었던 유성룡의 어머니가 그를 배었을 때 태몽으로 용꿈을 꾸게 되자 크게 될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승이 나는 터로 알려진 친정에서 아이를 낳기 위해 사촌마을로 갔다. 그러나 친정아버지가 집안의 기운을 외손에게 줄 수 없다며 딸을 내쳐 버렸다.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시댁이 있는 풍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촌리가로숲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바로 유성룡이었다는 거다. 그는 조선 선조 때 영의정까지 오른 분이니 사촌마을에 전해져 내려온 전설이 그대로 딱 들어맞은 셈이다.


 자료 - 오마이뉴스 손현희/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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